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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신조 은어 ‘룬르’(潤日)란 중국인들의 일본 이민을 가리킨다. ‘윤택할 윤潤’자를 넣어 이들 중국인들이 부유층임을 적시한 것이다. ‘潤’의 발음기호(병음) ‘run’이 영어의 ‘달아나다’ 철자와 일치해 중국 부자들의 탈출 욕망이 담긴 조어이기도 하다. 1월 일본에서 출간된 ‘룬르-일본으로 대탈출하는 중국인 부유층 추적’이 이런 실태를 자세히 보고하고 있다. 중국·동남아시아 전문 저널리스트(마수토모 타케히로)의 이 단행본은 4개월 미만에 4세를 찍을 만큼 큰 반향을 불렀다.
저출산과 경기침체 극복 등을 위해 일본 사회가 스스로 비자 문호를 넓혔다. 또한 부자들이 이주해 오는 게 나쁠 바 없다. 다만 단기간 내 너무 많이 밀려든 점, 중국인 특유의 네트워킹 등 여느 이민집단과 다른 차원의 고민을 일본에 안긴 모양새다.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공동부유론 등 사회주의 경제 노선이 강조되면서 중국 부유층 내지 중산층은 자산을 처분해 해외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춤했던 이민붐이 제로코로나(완전 봉쇄) 정책 종료 직후인 2023년 다시 불붙은 가운데, 보안법 시행(2020) 이후 홍콩과 마카오가 사실상 중국 대륙에 통합되자 일본 이민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저자 마수토모에 따르면 일본 수도권 최고급 초고층 아파트 지역인 도쿄만(灣) 연안 도요수(豊洲) 지역이나 도심 1등지들이 지난 5년간 5배 늘었난 중국인들에게 인기다. 일본 법무성 자료엔 작년 말 기준 일본 거주 중국인이 87만3286명으로 재일교포 포함 한국인 인구의 2배를 넘었다. 재일 외국인 중 1위로 전체(376만9000명)의 23.2%가 중국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선 현 추세라면 재일 중국인이 올해 말 93만, 내년 말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내 호텔 여러곳을 인수해 운영 중인 한 중국인 자산가는 중국에선 불가능한 ‘자기 명의 토지 매입’과 함께 “가격도 좋아 장기 투자처로 더 유리하다”며 일본 이주의 매력을 닛케이에 털어놨다. 중국에서 토지란 국가 소유이며 개인에게 허용된 것은 최장 70년 장기사용권뿐이다. 공산당과 관계가 틀어지면 재벌도 하루 아침에 몰락하는 내용의 뉴스에 모두 익숙하다. 시진핑 정권 아래 사유재산권이 한층 위축되면서 심화된 이런 탈중국 분위기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2023년 기준 일본의 주요 보안 지역 인근 토지·건물 등을 사들인 외국인의 최대 비중이 중국인(약 55%)이었다.
3월 닛케이 보도에선 일본 지방 관광도시 내 중국 자본의 영향력이 소개됐다. 거품경제 붕괴와 인구감소 속에 쇠락한 이들 수도권 관광·휴양도시 숙박시설의 25% 이상이 중국계 자본에 인수된 상황이다(일본 전역 39개 지자체 67곳). 도쿄 도심에서 신칸센으로 약 2시간 거리의 야마나시현 이사와 온천마을의 경우 아예 중국인 전용 관광지에 가까워졌다.
“차이나타운이 되더라도 유령도시보단 낫다”며 현지 주민들은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중국인 경영자에 중국인 이용객들 등 중국인들만으로 (공급·수요) 완결된 독립 경제권이 일본 전국에 퍼지고 있다”는 위기 의식을 닛케이가 짚었다. 부동산만이 아니다. 거대한 전통시장이자 관광명소이기도 한 도쿄의 아메요코는 현 점포의 약 80%가 중국인 경영자로 바뀌었으며 오사카의 대표 관광지 도톤보리 역시 중국어 간판과 중국인들 운영 점포가 늘었다. 정치적 발언권도 자연스레 커지고 있다.
작년 5월 기준 일본 주요 예술 관련 대학 재학 중인 중국인 학생 수 비중이 대부분 70% 이상이라는 닛케이아시아 3월9일 기사도 눈길을 끈다. 졸업 후 애니메이션·게임·디자인 관련 회사 취업으로 영주권 취득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인 지원자가 증가해 예술대 입시학원까지 성업 중이다. 도쿄 도심의 하나인 시부야의 코치아카데미는 명문대 입학을 원하는 중국 학생들 대상의 일본어 어학원인데 2015년부터 예술대 입학반을 따로 운영한다. 초기 10명 정도였던 이 특별반이 200명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심지어 일본 명문대의 상징인 도쿄대 작년 중국인 유학생 수가 최근 10년새 약 3배 늘어 70%에 육박했다. 도쿄대 학부·대학원 합쳐 2만7500명 학생 중 중국인이 3396명(13.6%)이다. 중국인들의 교육열과 진학열이 주요 대학 외국인특별전형을 싹쓸이할 기세인 현실에 불편한 눈초리가 없을 수 없다. 일본은 인구 감소에 따른 인력 부족과 경기 회복을 위해 2012년 고도인재 비자 제도를 도입했다. 현지 석·박사 학위와 기업 근무연수·연수입·연령 등에 따른 점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일본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영주권 신청 자격 연한이 기존의 ‘5년 이상 거주’에서 ‘1~3년 거주’가 됐다. 3월9일 닛케이아시아는 “정체된 일본에 변화와 새로운 에너지·역동성을 가져다 줄 계기”로 기대를 표했으나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몽골 출신의 귀화인 오노 아키라 시즈오카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인류학)는 3월11일 월간 프레지던트 인터뷰에서 “중국인구 유입 영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오노 교수는 “중국공산당 교육 아래 자라난 학생들”이 중국에서 배운 것과 어긋난 교수 발언을 문제 삼아 대학 당국에 신고하는 사례마저 있다며 “국제사회의 보편적 역사관, 새 의견이나 다른 시각에 귀기울이지 않는 청년들”이라고 꼬집었다. 중국 MZ는 고도성장기 이후 유복하게 자란 세대이며 애국적 자부심이 높다. 야마우치 마사유키 도쿄대 명예교수(역사학)는 1월 대만 중앙사 인터뷰에서 “일본 최첨단 연구기관이자 국가 안보 관련 연구도 많은 도쿄대 내 중국인 유학생 급증의 잠재적 위험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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