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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24일까지 서울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이 작품은 제26회 전격소설 대상 ‘미디어워크스 문고상’을 수상한 이치조 미사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2022년 일본에서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작품은 기억을 잃어가는 한 소녀와 무채색 일상에 머물던 소년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고등학생 ‘가미야 도루’는 왕따를 당하던 ‘히노 마오리’를 보호하기 위해 “나랑 사귈래?”라는 거짓 고백을 제안한다. 마오리는 말 걸지 말고 연락을 최소화하고 좋아하지 말라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도루와 마오리는 점차 가까워진다.
마오리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밤에 잘 때마다 기억을 잃는 마오리. 그녀는 일기를 통해 기억을 되살린다. 이런 사실을 알아챈 도루는 반복된 행동으로 마오리 곁을 지킨다.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을 이어가는 둘의 이야기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작품은 겉으로는 10대의 순수한 첫사랑을 그리지만 본질적으로는 기억과 상실 그리고 사랑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담는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억을 마주한다. 도루는 기억하는 사람이고 마오리는 기록하는 사람이다. 이즈미는 지우는 사람이고 켄토는 복원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마오리가 기억을 잃었다가 되살리는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관객에게 존재의 의미를 보여준다.
켄토는 원작에는 없는 인물이다. 뮤지컬로 각색하면서 등장한 켄토는 서사의 폭을 확장시켰다. 이처럼 이야기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삶과 기억에 대한 의미를 섬세하게 짚어준다.
서사 구조 또한 주목할 만하다. 1막은 도루가 결핍의 일상 속에서 마오리를 만나 사랑으로 삶을 회복하는 과정을 다루며 2막은 도루의 죽음 이후 마오리가 그를 기억해 내는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동일한 사건을 각기 다른 감정선으로 그려낸 구성은 옴니버스처럼 시간과 감정을 입체적으로 확장한다.
무대 연출은 기억의 흐릿함과 감정의 잔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다양한 레이아웃의 LED 디스플레이와 중첩된 이미지, 흐릿한 투사 효과는 명확한 기억과 잊힌 잔상이 충돌하는 순간을 은유한다. 장면에 따라 변화하는 색감과 영상의 질감과 색채, 프레임 구성은 감정의 밀도를 높이며 시각적 내러티브로 기능한다.
의상과 소품은 이야기의 감성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뒷받침한다. 도루와 마오리의 파스텔톤 의상은 두 인물의 맑고 섬세한 내면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장면의 여운을 더욱 길게 남긴다.
음악은 K-POP의 다양한 장르를 기반으로 각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캐릭터의 성격과 서사에 맞춰 배치된 넘버들은 청춘의 감성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대중성과 서정성을 동시에 갖춘 음악적 구성을 선보인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가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어. 그러니까 가장 좋은 기억들로 매일을 채워가자.” 도루가 마오리에게 건넨 말은 하루의 기억이 반복해 지워지는 마오리와 삶의 유한성을 자각한 도루의 사랑을 집약적으로 상징한다.
기억 속에서 가장 찬란한 존재가 된 도루 그리고 그의 사랑을 통해 자신을 회복해 가는 마오리. 이들의 서사는 기억이라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감정이 어떻게 완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각자의 결핍으로 흩어졌던 존재들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되는 순간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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