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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또다시 기로에 섰다. 최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시작부터 삐걱거렸지만 막상 회담장을 나설 때는 ‘동맹 균열’에 관한 우려는 해소되고 최소한의 통합 신호를 세상에 보낸 결과가 나온 셈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결과도 아닌 이번 만남은 한국 외교·안보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신냉전의 파고는 거세다. 북한·중국·러시아의 밀착은 이제 단순한 전술적 제스처가 아니라 서로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구조적 결속으로 발전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에 병력을 보내고, 그 대가로 군사위성·핵잠수함·미사일 등에 관한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받는다는 분석이 있다.
중국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국제무대에 세워 체제를 보장하고, 러시아는 중국과 에너지·무기 거래를 확대하며 서방의 제재를 뚫는다. 결국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거래’가 이들을 묶는 끈이다. 이런 삼각동맹의 강화는 북한에 “한국을 통하지 않고도 중국·러시아를 등에 업고 미국과 직거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고 있다.
이 구도는 한국에 불편한 진실을 던진다. 북한은 더 이상 한국을 거치지 않고도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한국은 과거처럼 ‘중재자’라는 모호한 위치에 머물 여유를 잃었다.
해법은 자명하다. 한국이 선택할 길은 한·미·일 3각 공조를 군사·외교를 넘어 경제·기술·에너지로 확장하며 제도화하는 것이다. 반도체·원자력·인공지능(AI) 등 전략산업을 매개로 한 협력은 단순한 경제동맹을 넘어 안보동맹을 떠받치는 기둥이 된다.
한·일 관계 역시 감정의 수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역사 문제를 덮자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위기 속에서 실용적 협력의 공간을 넓히자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이 ‘하청 국가’로 남을지 아니면 주체적 전략 행위자로 도약할지를 가르는 시험대다.
이 같은 맥락에서 미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동맹 현대화’를 내세웠다.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군사자산의 기동성 확대는 미국의 세계 전략 차원에선 자연스러운 요구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는 이것이 자칫 안보의 구멍으로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해법은 조건부 수용이다.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약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국이나 북한의 불필요한 대응을 유발하지 않는 선에서 조율해야 한다. 주한 미군의 운용은 미국의 전략적 필요가 아니라 한국의 주권적 이익이라는 최종 방파제를 담보하는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 문제는 회담의 숨은 쟁점이었다. 일본은 이미 농축·재처리에 관한 상당한 권한을 보장받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약에 묶여 있다. 세계적 원전 공급국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일본 수준의 권한 확보가 필수다.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동맹 내 위상의 문제다.
북핵 문제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동결’이 아닌 ‘중단’이라는 표현이 외교가에 등장했다. 이는 비핵화라는 이상을 당장 실현하기보다 현실적으로 관리 가능한 단계를 밟겠다는 의지다.
중단은 검증과 축소, 그리고 최종 폐기로 이어지는 현실적인 로드맵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이 과정에서 ‘운전자’를 자처하기보다는 ‘페이스메이커’로서 비핵화를 향한 국제사회의 속도를 조율하고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회담의 성과는 눈에 보이는 합의문이 아니라 정상 간 신뢰를 쌓았다는 점에 있다. 합의문이 없었던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한계를 보완하려면 약 3500억 달러(약 472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억 달러(약 13조5000억 원) 상당의 에너지 구매 약속을 투명하게 추진하고 그 국익 기여도를 철저히 재검증해야 한다.
외교의 본질은 균형과 현실 인식에 달려 있다. 북·중·러의 밀착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외면할 수도 없다. 동맹 현대화를 수용하되 국익의 최종선을 지켜 내야 한다. 원자력 주권은 단호히 요구하고, 북핵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관리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해방 이후 한국은 늘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기로에 서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냉철한 전략만이 우리의 마지막 방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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