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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재가 21일 국회 총리 지명선거에서 승리하며 일본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에 올랐다. 자민당과 제2야당 일본유신회가 손을 잡으면서 보수색이 짙은 내각이 출범하게 됐다. 강경한 역사 인식과 우경화 정책을 고수해 온 다카이치 총리의 등장으로, 한일 관계에도 새로운 파장이 예상된다.
이날 중의원(하원) 총리 지명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전체 465표 중 237표를 얻어 과반(233표)을 넘기며 제104대 총리로 선출됐다. 참의원(상원) 투표에서도 123표를 얻어 1차 투표에서는 과반에 한 석 모자랐으나, 결선에서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를 제치고 최종 승리했다. 일본 헌정사에서 여성이 총리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885년 내각제 도입 이후 140년 만의 일이다.
다카이치는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26년간 연정을 유지하던 공명당이 10일 돌연 이탈을 선언하면서 정권 운영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자민당 단독으로는 중·참의원 모두 과반 의석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보수 야당인 일본유신회(35석)와 연립 정권 수립에 합의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넘겼다. 다만 유신회는 당분간 각료를 파견하지 않는 ‘각외(閣外) 협력’ 방식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민당과 유신회 간 연정이 “의석수 부족으로 불안한 소수 여당 체제”라고 지적하면서, 향후 법안 처리 과정에서 야당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다카이치는 중의원 10선의 베테랑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총무상·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냈다. 비세습 정치인으로 ‘유리천장’을 깬 인물로 평가받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책을 계승한 우익 성향의 ‘여자 아베’로 불린다. 그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꾸준히 참배해 왔으며,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온 대표적 보수 정치인이다. 지난달 자민당 총재 후보 토론회에서도 “독도 관련 행사에 장관급이 당당히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저녁 나루히토 일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정식으로 내각을 출범시킨다. 새 정부의 핵심 인선은 ‘아베 라인업’에 가깝다. 기하라 미노루 전 방위상이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이 외무상,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방위상, 하야시 요시마사 현 관방장관이 총무상으로 내정됐다. 이날 오전 이시바 시게루 내각은 전원 사임하면서 정권 교체가 공식화됐다.
자민당·유신회 연정은 공명당과 달리 개헌과 방위력 강화에 적극적인 만큼, 다카이치 내각은 전임 이시바 내각보다 한층 강경한 보수 노선을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사히신문은 “새 연정은 한반도 안보 이슈와 역사 문제에 보다 매파적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다카이치 총리의 취임을 공식 축하하면서도, 한일관계의 ‘긴장과 기회가 공존하는 시기’로 보고 신중하게 접근할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축하 메시지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다카이치 총리의 과거사 인식은 우려스럽지만, 그는 동시에 한미일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인물”이라며 “관계 경색 속에서도 실용적 협력의 여지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30일부터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함께 참석하는 자리로,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외교적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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