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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아빠 엄마 이야기…낮에도 보이는 달②
임종 순간, 40년 전 죽은 자식 그리워한 아버지
사무치는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내 인생 커다란 의미 가졌던 분
대통합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7-16 18: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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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국민대통합위원회]
어느 날 언니에게 물었다. 왜 아버지는 장조림을 안 드시냐고? 언니는 ‘나는 참 억울해.’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가 태어나기 전 오빠가 한 명 태어났단다. 누구나 가버린 자식에게는 더욱 애틋하고 미련이 남겠지만, 그 오빠는 참으로 건강하고 잘 생겨서 귀티가 났다고 한다. 탄탄하고 건강한 다리로 건넌방에서 통통통 하고 달려오면 그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렸다고 늘 미소를 지으며 엄마는 회상하셨다.
 
마실을 나가면 웬 아이가 이리도 잘 생겼냐고 누구나 길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봤다고. 언니가 태어났을 때 오빠는 3살쯤 됐다고 한다. 언니의 백일 전날 엄마는 떡을 맞추러 방앗간에 가시고, 이웃집 아이의 돌이라며 가져온 떡을 오빠가 먹었는데 그 떡에 급체해서 응급실에서 밤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언니는 내 탓이 아닌데 그 뒤로 오빠의 죽음이 자기와 연관된 것처럼 찬밥 신세라고 하소연했다. 한동안 네가 백일이어서 떡을 하느라 집을 비워서 이렇게 됐다는 원망을 들어야 했고, 그 오빠가 좋아하던 음식이 장조림이라고.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기차를 타고 남원 쪽을 지나가는데 아버지께서 어느 야산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차가 방향을 틀어도 계속 그쪽을 바라보셨다. 나는 “아버지, 저기가 어디예요? 누가 살았어요?” 하자 어머니가 “너희 큰 오빠가 묻힌 곳이다. 이곳만 지나가면 눈을 못 떼 네. 그때가 언젠데...”하며 혀를 차셨다. 그때가 아버지 나이 60이 넘으셨으니 무려 40년 전에 떠난 자식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부모의 사무치는 마음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장조림을 절대 드시지 않던 아버지! 40년, 50년이 지난 뒤에도 아니 돌아가시던 순간까지도 먼저 가버린 자식을 그리워하며 잊지 않았던 아버지! 우리 형제들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그 오빠의 이름을 모두 다 알고 있다. 늘 귀에 익게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가 이제는 잊고 편하게 지내셨으면 하는 바람보다는 가슴 한 쪽에 그리도 사랑하는 자식을 간직하며 한숨 쉬고 슬퍼하는 모습이 더 인간적이고 다감하게 느껴졌다.
 
자식을 자기 죽음과도 바꿀 만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세월의 흐름 속에 희미해지고 무디어가는 슬픔이나 괴로움을 핑계로 쉽게 잊으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위선이 아닐까? 나는 어릴 때 공부를 제법 했다. 집에 돌아오면 책가방을 벗자마자 엎드려 숙제부터하고 나서 놀았다. 또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 줘서 1학기에는 반장, 2학기에는 부반장을 도맡아 했다(반장을 1, 2학기 계속할 수 없으므로).
 
내 기억으로 4학년 때였다. 당연히 반장에 뽑힌 나는 퇴근하고 돌아오실 아버지를 기다리며 칭찬받을 일에 부풀어있었다.
 
“오늘 반장 선거했다면서?”
 
아버지가 물으셨다. 나는 잔뜩 거들먹거리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럼요. 당연히 반장에 뽑혔지요.”
아버지는 내 말에는 별 반응이 없으셨다.
 
“그래? 네 표는 몇 표가 나왔든?”
“63명 중에서 60표요.”
“그럼 반대한 3표 중에 네 표도 있겠다.”
“당연하지. 에이~ 아빠는. 내가 나를 어떻게 뽑아.”
 
아버지의 표정은 어두웠다.
 
“우리 자식들은 그저 나 닮아서 융통성 없고 머리 회전이 팍팍 돌지도 않고...”
 
아버지는 한숨을 쉬시면서 돌아앉으셨다. 잔뜩 칭찬을 기대했던 나는 머쓱하고 김이 빠져, 앉아있던 밥상에서 슬그머니 물러났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화를 내셨다.
 
“아니, 당신 뭐하는 거예요? 얘가 오늘 반장 돼서 지금껏 아버지를 기다렸는데, 뭔소리를 하는 거예요, 지금?”
 
아버지의 얘기는 이러했다. 낮에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계시는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동료의 아들이 뛰어 들어왔단다.
 
“아버지, 나 오늘 반장 됐어”
 
그러자 주위 분들이 ‘아이고, 축하한다’며 박수를 쳐주었고.
 
“네 표는 몇 표나 나왔니?”
 
그 아이는 자기 아빠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이,
 
“몇 표는 무슨. 전부 다 내 표야.”
 
했다는 것이다.
 
“아니, 네 표는 어떻게 하고?”
“나 밖에 할 사람이 없는데 누구를 찍어? 나도 나를 찍었어.”
 
아이의 대답에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하고 ‘보통 놈이 아닐세’ 라며 모두 감탄했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3학년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삶에서 자식들이 벗어나기를 바라셨을까? 보통의 눈으로 바라보는 삶이 아닌 남보다 앞선 비상한 사고를 하는 자식이 되기를 바라셨을까? 물론 나쁜 방향으로 비상하기를 바라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유당 시절 많은 동료가 철도국의 물품을 빼돌리고 업자와 결속해서 공금을 횡령해도 아버지는 그 일에 가담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횡령으로 직장을 잃으면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가 없다고, 무슨 일이 생기면 뒤를 봐줄 배경도, 재산도 없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남들은 다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고 아버지를 무능하다고 놀리셨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가 든든하고 좋았고 존경스러웠다.
 
이렇듯 아버지는 장점도 단점도 있는, 다른 사람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열심히 사셨고 자식들에게 교육이라는 자산을 물려주려고 노력한 분이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큰 바위 얼굴처럼 내가 따르고 닮아야 할 이상이었고, 아버지의 그림자는 내 인생에 커다란 의미를 드리웠다.
 
나는 딸이지만 아버지를 닮아서 좋다. 직장에서 육상과 축구선수로 뛰었던 아버지를 닮은 튼튼한 종아리며, 부지런한 사람이 가진다는 토실토실한 손등과 통통하고 짧은 손가락 그리고 까무잡잡한 피부까지도.
 
오늘따라 더 보고 싶은 아버지!!
오늘따라 더 그리운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많이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내 인생의 선배요, 스승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런 말을 듣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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