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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반성 없는 일본(上-근로정신대)
민족영혼 짓밟은 일본의 야만적 만행 아직 안 끝났다
日공장노역에 10대 여성 300여명 강제징용…대법 판결에도 여전히 불복
임현범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9-03-18 00:06:00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극우 성향 정치적 행보 탓에 한일 관계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월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최근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를 신청한 것과 관련해 “매우 유감이다”며 “국제법에 따른 의연한 대응을 위해 구체적 조치에 대한 검토를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자국 내 지지율 하락세 속에 한국 관련 현안에 강경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보수우익 성향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속셈으로 분석된다. 일본 정부는 과거 저질렀던 만행을 정당화시키며 제국주의 야욕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군사 도발까지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정부의 도발 행위 수위가 높아지는 데 대해 우리 국민들은 강한 반감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사과 요구에 그치지 않고 국력을 키워 더 이상 일본이 우리나라를 넘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의도 드러내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금주 이슈포커스 주제로 ‘반성 없는 일본’을 선정하고 관련 내용을 세 편에 걸쳐 보도한다.

▲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올해 광복 74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법정투쟁을 시작한 지 19년 만인 지난해 최초로 대법원 승소판결까지 받았음에도 일본정부와 전범기업들은 반성 없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진은 일본으로 끌려간 근로정신대 [사진=근로정신대 시민모임]
 
▲ ⓒ스카이데일리
[특별취재팀=임현범 차장|문용균·나광국 기자]올해 광복 74주년을 맞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원한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법정투쟁을 시작한 지 19년만인 지난해 최초로 대법원 승소 판결까지 받았지만 정작 일본 정부와 기업은 반성 없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정신대’는 태평양전쟁 말기 패색이 짙어진 일본이 부족한 노동력을 조달하기 위해 한국의 10대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 가 만든 조직이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일본기업 공장으로 끌려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몸이 망가질 정도로 혹독한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조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삶은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근로정신대는 일본공장에 끌려가 노동력을 착취당했다는 점에서 성노예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와는 다르지만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멸시와 핍박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일본인 교사에 속아 근로정신대 강제징용된 14세 소녀 “평생 고통스런 삶”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김성주(90·여) 씨는 평생 잠도 제대로 못잘 정도로 한 많은 삶을 살았다. 과거 14세 꽃다운 어린 시절 ‘근로정신대’란 이름으로 일본에 끌려가 혹독한 노역에 시달렸다. 귀국한 이후에도 주변의 오해로 멸시와 눈총을 받아야 했다. 김 씨에게 삶은 그야말로 악몽의 연속이었다.
 
전남 순천 출신인 김 씨는 초등학교 졸업 직후인 1944년 5월 일본인 담임교사의 말에 속아 나고야에 위치한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제작소에 강제동원 됐다. 일본에 가면 여자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는 꾐에 넘어간 것이다.
 
그가 마주친 현실은 전혀 달랐다. 높은 철조망에 둘러싸인 채 공장과 기숙사를 오가는 노예같은 삶의 연속이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밥을 먹고 끌려가다시피 공장으로 가서 하루 종일 노역에 시달렸다. 이동 중에는 일본 군가를 불러야했으며 머리에는 항상 ‘가미카제’라고 적힌 머리끈을 메야 했다.
 
▲ 전남 순천 출신인 김성주(90·여·사진) 씨는 1944년 14살 꽃다운 어린나이에 근로정신대란 이름으로 일본에 끌려가 혹독한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높은 철조망에 둘러싸인 채 공장과 기숙사를 오가며 노예같은 삶을 살았다. 당시 손가락과 다리를 다쳐 평생 불편을 겪어야 했다. [사진=빅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14살 어린 나이에 항공기제작소 공장에 끌려가 프레스로 쇠 자르는 일을 하루 종일 했습니다. 일본인들의 폭언과 폭행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키가 작아 항상 까치발을 들고 일해야 했는데, 쇠로 된 무거운 판을 억지로 들어 올리려다 보니 온몸이 성할 날이 없었습니다”
 
근로정신대로 끌려온 한국 소녀들 중에는 쇠 자르는 기계에 의해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도 비일비재했다. 장갑 한 장 없이 노역을 하던 김 씨도 왼손 검지가 한마디 가량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했지만 당시 일본인들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을 수 없었다.
 
“하루는 일하던 중 프레스기에 왼손 검지가 한마디 가량 잘리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와중에 떨어진 손가락이 굴러가는 걸 보고 줍기 위해 다가갔는데 한 일본인이 잘린 손가락을 줍더니 공중에 던졌다 받으면서 비아냥거렸습니다. 너무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기억이라 아직까지 잊혀 지지 않습니다”
 
1944년 도난카이 대지진 발생으로 김 씨는 멀쩡하던 다리를 다쳐 평생 불편을 겪고 있다. 지진으로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급히 대피하는 과정에서 한국인 근로정신대의 안전은 뒷전이었다. 혼란스런 상황에서 일본인들에게 밟힌 김 씨는 넘어져서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고 평생 절게 됐다.
 
1945년 광복 이후 10월경 김 씨는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동생인 김정주 씨(88·여)가 일본인 교사로부터 “언니를 만날 수 있다”고 속아 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 됐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접했다.
 
김 씨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같은 한국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출신이라 손가락질하며 멸시어린 시선을 보내기 일쑤였다. 결혼 후에는 일본에 다녀온 것을 빌미로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야 했고 평생을 대로가 아닌 어두운 골목길로만 다닐 정도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박희라] ⓒ스카이데일리
 
“일본에 끌려간 이후 평생 고통스럽게 살아왔습니다. 노예 취급을 받으면서 일했는데 제대로 된 임금조차 못 받았고 귀국한 이후에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식들에게 죄스럽고 고마울 뿐입니다. 제가 죽기 전에 지금이라도 일본은 제대로 된 보상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합니다”
 
74년 만에 이뤄진 대법원 승소에도 적반하장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똑같이 돌려줘야”
 
최근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은 판결을 외면한 채 오히려 한국을 상대로 맞대응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과오를 뉘우치지 못한 채 오히려 적반하장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0월30일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승소했다. 이어 11월 29일 대법원은 10대 나이에 일본에 끌려갔던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강제로 일본에 끌려간 지 74년, 법정투쟁을 시작한 지 19년 만에 이뤄진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다.
 
하지만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기업은 한국인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거부한 채 시간만 끌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외교문제를 일부러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아베 정권이 일본 기업의 개별 대응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쓰비시중공업은 근로정신대 피해자 시민모임이 제안한 문제해결 교섭을 끝내 거부했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에 미쓰비시 자산에 대한 압류를 신청했다. 압류 신청 대상은 미쓰비시가 소유한 국내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이다.
 
현재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신청한 압류 자산을 매각할 경우 일본 정부 차원에서 보복에 나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언론을 통해 “한국 내 압류자산이 매각되면 일본 정부는 관세 인상 외에 일본산 제품 공급을 중단하거나 비자 발급을 제안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고 밝혔다.
 
▲전남 나주 출신인 양금덕(90·여·사진) 씨는 초등학교 6년 재학 시절 근로정신대에 징집돼 미쓰비시중공업에서 강제노역했다. 해방으로 귀국한 이후에도 일본군 위안부로 오인받아 평생을 주변의 멸시어린 시선을 받으며 한 많은 삶을 살아야 했다. ⓒ스카이데일리
 
시민단체 및 피해자들 사이에선 만행을 저지른 일본의 반성없는 모습에 무책임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74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을 핑계로 제대로 된 사죄나 배상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 사이에선 일본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근로정신대 동원된 피해자들에겐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실제 미쓰비시가 대법원 판결 이행을 거부하는 사이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1차 원고인 고 김중곤(95·남) 씨는 지난 1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억울하게 죽은 여동생과 강제노동 피해를 입은 부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20년 세월을 바쳤지만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못 받은 채 생을 마감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이자 미쓰비시중공업 2차 소송 원고였던 고 심선애(89·여) 씨도 지난 2월 투병 중 별세했다. 강제징용 당시 “배고픔과 매질로 인한 고통이 가장 힘들었다”고 증언했던 심 씨는 지난해 12월 광주고법 승소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미쓰비시 측의 항소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끝내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지난 14일 열린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창립 10주년 행사에 참석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90·여) 씨는 “그동안 쏟은 눈물만 해도 배 한 척은 띄우고도 남는다”며 “돈보단 진정성 있는 사과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도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선 양심적인 사과부터 이뤄져야 양국 간 화해도 이뤄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국언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대표는 “처음 근로정신대 할머니를 위해 시민모임을 결성한 이후 시민들의 도움으로 10년 만에 대법원 승소를 이끌어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강제집행 절차에 이르게 된 미쓰비시에 유감스럽고 하루빨리 진정성있는 자성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임현범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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