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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대한민국 민족유산 한글, 창제인가 모방인가

옛 글자 모방·개량했다는 기록 많아…약 4200년 전 글자 세종대왕이 개량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10-19 23:01:20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10월 9일은 우리의 문화유산인 한글을 창제·반포한 세종대왕의 위업을 선양하고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널리 알려 문화민족으로서 자긍심을 일깨우려는 목적으로 제정된 국경일로 법정공휴일이다. 그런데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창제(발명)했다기보다는 옛날부터 전해오던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개량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글, 창제인가 모방인가
 
훈민정음이 모방·개량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은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1443년 계해년) 12월 30일 기사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일렀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세종 28년(1446년 병인년) 9월 29일 훈민정음 연구에 참여했던 예조판서 정인지가 쓴 서문(序文)에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니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자가 있다. 그래서 옛 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천·지·인)의 도를 심었으므로 후세에도 능히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나눠져 다르게 되니 소리의 기운도 역시 달라졌다.(중략)”
 
“계해년(1443년) 겨울에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해 음은 칠조(七調)에 합해 삼극(三極=천·지·인)의 뜻과 이기(二氣=음양)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해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위 정인지의 서문에서도 “옛 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천·지·인)의 도를 심었으므로 후세에도 능히 바뀌지 아니했다”고 해 옛날부터 쓰던 소리글자가 있었고 또한 “훈민정음은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했다”고 말하고 있어 훈민정음은 옛날에 있던 전자를 모방해 글자를 만든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또한 세종 26년(1444년) 2월 20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는 임금에게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스럽게 대국을 섬기어 한결 같이 중화의 제도를 준행했는데 이제 글을 같이하고 법도를 같이하는 때를 당하여 언문을 창작하신 것은 보고 듣기에 놀라움이 있습니다. 설혹 말씀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다’고 하시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 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데가 없사옵니다”며 훈민정음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자 그 상소에 대해 임금은 “너희들이 이르기를 ‘음을 사용하고 글자를 합한 것이 모두 옛 글에 위반된다’고 했는데 설총의 이두 역시 음이 다르지 않으냐? 또 이두를 제작한 본뜻이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 함이 아니겠느냐. 만일 이두가 백성을 편리하게 했다면 지금의 언문도 백성을 편리하게 할 것이다”고 답했다.
 
▲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 해례본 [사진=필자제공]
 
최만리의 상소와 그에 답하는 세종대왕의 말에도 ‘훈민정음은 옛 글자를 모방한 것’이라고 했다. 위 기록들로 미루어 볼 때 훈민정음은 옛 글자인 전자(篆字)를 모방한 소리글자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새로운 창제(발명)가 아니라 옛날 글자를 개량·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모체가 되는 옛 글자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훈민정음이 모방한 모체는 무엇인가.
 
먼저 백과사전에는 전자(篆字)에 대해 “한자(漢字) 서체의 하나로 예서(隸書) 이후에 여러 체가 발명되기 전의 가장 오랜 서체로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의 두 가지가 있는데 대전은 주나라 때에 행해진 것이고 소전은 진시황 때에 이사(李斯)가 대전을 간략화한 것이라고 함. 전서라 하면 흔히 소전을 말한다”고 설명돼 있는데 한자의 서체의 하나인 전자와 위에서 언급한 훈민정음의 모체인 소리글자 전자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의 모체가 되는 전자는 과연 무엇일까.
 
근거는 유일하게 단군세기 3세 가륵 단군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경자 2년 (B.C 2181년) 아직 풍속이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다르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참글(眞書)가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 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해 정음(正音)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土)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
 
단군세기 에 기록된 정음 38자에 관한 기록은 훈민정음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 다음과 같은 세종대왕의 어제서문(御製序文)’과 대동소이하다. “나라의 말과 음이 중국과 달라 문자로는 서로 잘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함이 많았다.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한다”
 
▲ 가림토문자와 비슷한 모양의 훈민정음과 일본 신대문자 [사진=필자 제공]
 
훈민정음의 모체가 되는 전자는 바로 3세 가륵 단군 때 을보륵이 만든 38자의 가림토 문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음은 소리글자이면서 만물과 물건의 형상을 나타내는 글자이기도 하다. 하늘(天), 땅(地), 사람(人)을 상징하는 • ㅡ ㅣ를 결합한 여러 모음에 이 모양을 본뜬 아(牙)음과 치(齒)음, 혀 모양을 본뜬 설(舌)음, 입술 모양을 본뜬 순(脣)음, 목구멍 모양을 본뜬 후(喉)음 등의 자음과 결합해 글자가 이루어진다.
 
전 세계 문자 중 컴퓨터 사용에 가장 편리한 언어인 한글은 이미 약 4200년 전에 만들어졌다가 565년 전인 세종대왕 때 개량돼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글이 전 세계인의 발음을 가장 유사하게 표기할 수 있는 이유는 조선이 아시아를 통치했던 연방대제국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종 당시에만 해도 뭔가 전해진 관련 자료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가림토 문자가 현재 이 땅에 유물로 남아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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