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燕)의 활동무대이자 고구리의 영토이기도 했던 요서(遼西)군은 <한서지리지>에 유주(幽州)에 속하는 군으로 기록돼 있다. 현재 북경 부근이 옛 유주로 알려져 있는데 이상한 점은 북경 동쪽 진황도시 노룡현에는 요서군과 관련된 수양산도 백이·숙제의 무덤도 없다는 사실이다.
수양산이 중요한 이유는 <사기 정의> 주에 “설문에 이르기를 수양산은 요서에 있다(說文云首陽山在遼西)”는 기록과 <한서지리지>에 유주의 요서군에 속한 영지현에 백이·숙제와 관련된 고죽성(孤竹城)이 있다고 기록돼 있어 수양산이 있는 곳이 바로 요서군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양산은 지금의 노룡현에는 없고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주 연재된 역사연혁에서 보듯 지금의 영평부와 노룡현은 명나라 초기에 역사왜곡을 위해 이동된 지명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 원래 수양산의 위치는 과연 어디일까.
그 위치를 확실하게 밝혀준 기록은 <사기 집해>의 “마융이 말하기를 수양산은 하동지방의 포판에 있는 화산의 북쪽에 있는데 황하가 꺾이는 지점이다(集解馬融曰 首陽山在河東蒲阪華山之北,河曲之中)”는 문구다. 하동(河東)은 산서성 남부며 하곡(河曲)은 남류하던 황하가 동류하려고 꺾이는 지점이고 영지(令支)현은 현 산서성 운성시의 서부 영제(永濟)시다.
대청광여도(大淸廣餘圖)에는 하곡지점 동쪽에 뇌수산(雷首山=수양산)과 포판과 백이·숙제의 묘라는 글자까지 명확하게 기재돼 있다. 아울러 하북성 진황도시 서쪽에도 영평부(永平府), 갈석(碣石), 창려(昌黎), 노룡새(盧龍塞), 고유주(古幽州) 등 명나라 때 지명이동된 흔적도 남아있다. 즉 요서군은 하곡지점에서 지금의 노룡현으로 옮겨진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고지도에 그려진 이제묘(夷齊墓)로 무덤의 실체를 찾는다는 것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만큼 어려운 일이었지만 다행히 그 위치가 그려진 현대지도를 구할 수 있어 2008년 답사해 산서성 서남단 하곡지점에서 백이·숙제의 무덤을 발견했던 것이다. 무덤의 관리자도 두 무덤 중 어느 무덤이 백이의 것인지는 모른다고 하면서 수양산의 위치도 알려줬다.
이어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명인 낙랑(樂浪)군에 속한 패수(浿水)의 위치가 <위서지형지>에 의해 하내(河內)군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로써 공자 이후 특히 명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중국이 정부차원에서 저질렀던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의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됐던 것이다.
즉 명나라 초기에 산서 남부와 황하 북부 하남성에 있던 유주를 북경부근으로 옮김으로써 중국은 옛날부터 큰 대륙을 다스렸던 대국이었다고 허세를 부렸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지명을 조작한 역사왜곡이었음이 낱낱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원래 기주(冀州)는 산서성 남부
원래 우공(禹貢)의 구주(九州)에는 기(冀), 연(兖), 청(青), 서(徐), 양(揚), 형(荆), 예(豫), 량(梁), 옹(雍) 등이 있었다. <상서 순전>에 순임금이 기주를 기(冀), 유(幽), 병(并), 영(營)주로 나눠 12주로 했다는 기록에서 처음으로 그 이름이 등장한다. 즉 유주는 우공의 기주 땅의 일부였던 것이다.
<대청광여도>에 산서남부 평양부(平陽府=임분) 부근에 ‘禹貢冀州地’가 명확하게 그려져 있다. 따라서 유주는 물론 <한서지리지>에 유주에 속해 있는 여러 군들 역시 이 부근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요서군을 이곳에서 멀고도 먼 진황도 노룡현에서 찾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니겠는가.
그나마 요서군은 언급되는 다른 군들에 비해 가까운 편이다. 우리 민족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요동군은 서만주로, 낙랑군은 한반도 북부 대동강 일대로, 현토군은 길림성 집안 부근으로 비정돼 유주가 한반도에서 북경까지 엄청난 크기의 행정구역이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유주는 산서성 남부와 북부 하남성 일대에 있었던 지명이다. 명나라에 의해 저질러진 유주의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이야말로 약 600년 전 국가가 개입해서 저지른 희대의 사기극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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