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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생활명상 즐기기

마음 공부를 하면 마음이 좋아지는가

습관 덩어리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9-14 17:55:49

▲김성수 작가·마음과학연구소 대표
 소위 마음공부를 하면 갑자기 인생이 평화로워지고 선해지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좋겠다. 하지만 일조일석에 그렇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내 몸과 마음의 습관이 세포 하나하나에 배어있어서이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거나 애쓰지 않아도 내 몸과 마음을 통해 자동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학자들은 사람의 몸동작이나 태도, 생각, 감정 사용 등의 행위 중 구십 퍼센트가 그런 자동 시스템에 의해 움직인다고 본다. 말이 구십이지, 우리 몸의 두뇌 신경과 몸 신경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볼 때 ‘나’라는 존재는 사실상 습관 덩어리 유기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습관 덩어리인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 명상이다. 세계적 명상학자 존 카밧진은 이 객관성을 탈 자동화라고 표현한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자동화된 컨베이어 벨트와 같은데 그것에서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마음의 내용물을 볼 수 있어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 어느 책에선가 듣거나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거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머리를 이리저리 비틀어서 눈으로 내 몸을 본다면 나는 내 몸을 육십 퍼센트쯤 볼 수 있으려나. 생각으로 내 몸을 보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결국 내 몸의 이미지를 보는 것이니, 사진 속 나를 보는 것보다 해상도는 낮잖아? 코로 내 몸이나 마음을 냄새 맡기도 어렵고, 혀로 내 몸을 핥아보면서, 이게 나야, 라고 할 만한 부위가 얼마나 될까.
 
명상, 자신의 삶을 입체적 차원으로 회복하는 일
 
며칠 전에는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에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건으로 단체장 주민소환 운운하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시장을 주민소환해야 한다는 결기에 찬 글과 댓글들을 읽어가는 도중 내 안에서 문득 불쾌 감정이 고개를 디밀었다. ‘이거, 너무하는 거 아냐?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다지만.’ 그래서 한마디 올렸다. ‘이런 행동은 객관적으로 분명한 문제가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시장 또한 이 도시를 대표하는 사람이기 전에, 그저 우리와 다름없는 감정이나 생각을 소유한 이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중하게 표현함으로써 되치기 당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내 마음은 깨진 병조각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댓글 창에 글을 올린 후 나는 즉시 그 방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30분도 되지 못해 다시 들어갔다. 내 댓글에 대한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런 궁금증에 끌려다니기 싫어서 커뮤니티에 글 올리지 않기로 했잖아? 나를 힐난하는 음성이 내면에서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에는 내 글을 비판하거나 희롱하는 듯한 글들이 대여섯 개 달려 있었다. 그 중에는 나의 답변을 요구하는 글도 있었다.
 
익명의 숲속에서 총알처럼 나를 저격한 타인의 글에 대해 내 첫 반응은 신랄한 욕지기였다. 거친 욕지기와 불쾌한 감각이 폐포를 거칠게 쥐락펴락했다. 이게 뭐지? 음, 돌이켜보면 나는 반사적으로 내 생각에 불쾌 감정을 버무려서 댓글을 썼다. 그것도 이미 굳어져서 자동화된 내 생각이나 판단의 벨트 위에 말이다. 만약 내가 그러는 내 생각이나 감정을 타인의 물건처럼 볼 수 있었다면?
 
≪몸은 기억한다≫를 쓴 데셀 반 베어 콜크는 몸 전체가 곧 두뇌임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사람 두뇌의 역할과 기능이 목 윗부분 둥근 뼈단지 속에 위치한 말랑말랑한 물체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100조 개의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의 저장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의 모든 습관 또한 그 세포기억의 반응에 다름 아니다.
 
당신은 하루 종일 뭔가를 판단하고 해석한다. 기억이라는 생명의 기반이 작동한 탓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판단과 해석은 기억이라는 거울을 치고 올라오면서 꺾이거나 변형된 마음의 움직임이다. 이미 판이 이렇게 짜인 이 시스템을 이제 와서 전면 리모델링할 수도 없다. 유전자나 가계, 신념, 윤리의식과 같은 기초공사의 연륜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수시로 빠져나올 수는 있다. 말했다시피 나를 제3자처럼 대하면 된다. 나를 그렇게 객관화하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 있다.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쉬운가? 아니다. 쉽지 않다. 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을 보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하는데, 마음공부 좀 하신 분들은 너무 쉽게 얘기한다. 생각 폭탄이 전쟁터처럼 횡행하고, 마음 어디에선가 폭발 굉음이 수시로 들려오는 우리들 속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발언 좀 그만 해달라.
 
물론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당신과 솥단지 속 누룽지처럼 동일시돼 있는 생각이나 신념, 감정 따위를 당장에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으니 펜과 종이를 꺼내보라. 휴대전화기의 노트 메모장도 좋다. 꺼냈다면 두 사람의 등장인물을 적으라. 한 사람에게는 나의 닉네임이나 ‘마음’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다른 등장인물에게는 지금의 이름을 쓴다. 그런 후 적어가는 것이다. 적어갈 때 첫 번째 요령은 ‘지금 이 순간’의 생각이나 감정을 중심으로 적는다.
 
마음 : 머리가 딩딩거려 죽겠어.
철수 : 왜 딩딩거려?
마음 : 글쎄, 점심 먹고 사무실로 돌아온 후에 갑자기.
철수 : 점심? 누구랑 먹었는데?
마음 : 이과장님하고 김 팀장…. 이렇게 동태찌개 먹었지.
철수 : 점심하면서 얘기도 나눴겠네?
 
생각으로 나를 객관화시키는 작업은 말이 쉽지 실천은 어렵다. 하지만 이런 경험 시나리오를 적는 일은 생각이 어렵지 실천은 쉽다. 적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집중력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생각은 그와 동급의 생각 에너지들이 허공 속의 공중전처럼 난무하기 십상이다. 뭔가를 적는다는 것은 그에 비하면,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일시에 동원하는, 차원이 다른 집중 행위다. 생각이 모기라면 글쓰기는 독수리 급이다. 그래서 글쓰기다.
 
두 사람의 등장인물과 그것을 시나리오로 작성하는 사람. 잘 보자. ‘등장인물 두 사람’과 ‘적는 이’의 위치는 같은가 다른가. ‘적는 이’는 그야말로 탈 동일시 돼 있지 않은가. 시쳇말로, 노는 물이 다른 곳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 누구를? 나 자신을! 당신의 삶은 이런 순간에 입체적 차원을 회복한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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