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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끝난 국제축구연맹(FIFA) 2022 카타르월드컵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결승전은 8만8966명의 관중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15억 명이 중계를 통해 지켜본 것으로 집계됐다.
FIFA의 집계에 따르면 A~H조 8개 조별리그와 토너먼트 등 64경기에 약 38억 명이 지켜봤다. 가히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라는 수식어에 걸맞다. FIFA는 6개 대륙 연맹에 가입국만 해도 유엔보다 훨씬 많은 211개국에 이르는 최대 스포츠 단체이기도 하다.
열사의 나라에서 사상 최초로 겨울에 개최된 2022 카타르월드컵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에는 ‘야구 월드컵’이라는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이 다음 달 8일부터 3주간 열린다. 물론 WBC는 월드컵과 규모나 흥행면에서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하지만 프로야구가 연 1000만 명이 경기장을 찾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덕분에 이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야구를 즐기는 나라가 미국·멕시코 등 북·중미와 한국·일본 등으로 국한돼 있어 WBC의 인기나 규모를 월드컵과 비교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야구 최강을 가리는 WBC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거들이 출전하는 유일한 대회다. 국제야구연맹(IBAF)이 아닌 메이저리그(MLB) 사무국과 MLB 선수 노조가 주도해 만든 대회다. FIFA가 주관하는 월드컵과 달리 IBAF가 주최하는 야구 월드컵에는 메이저 리거들이 참가하지 않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야구가 올림픽에서 퇴출되자 야구 인기를 드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게 WBC였다.
눈에 띄게 야구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던 한국은 WBC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았고,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WBC는 2000년대 초반 추락하던 한국 프로야구 KBO리그의 인기를 살린 대회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모두 나서 국제 대회에서 한국 야구의 경쟁력을 뽐내고 감동의 승부를 만들었다.
김인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박찬호를 위시해 ‘국민 타자’ 이승엽이 가세했던 게 2006년 원년 대회였다. 국내파도 이종범·이병규 등 최정예 멤버로 꾸렸다. 하지만 독특한 대회 방식 탓에 1·2라운드에서 숙적 일본을 두 번씩이나 이기고도 세 번째 준결승에서는 패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멤버들이 주축을 이룬 한국 야구는 2009년 2회 대회에선 한·일전이 무려 다섯 번이나 성사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맞기도 했다. 2라운드 승자전에서 일본을 꺾고 4강에 진출한 뒤 일본 야구의 심장인 도쿄 돔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세리머니를 펼친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한국보다 늘 우위에 있다고 알려진 일본 야구를 무릎 꿇린 순간이었다.
이날 일본 타선을 잠재우고 승리 투수가 된 봉중근은 ‘하얼삔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 이름을 따 ‘봉의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한국은 결승에서 연장전 끝에 일본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한국 야구가 보여 준 저력은 국민의 마음에 큰 감동을 심어 줬다.
베이징 올림픽과 WBC에서의 선전을 통해 새로운 팬들이 대거 유입됐고, 이른 바 ‘베이징 키즈’로 불리는 고사리 손들이 배트와 글러브를 잡았다. 야구 인기 상승은 제9구단인 NC 다이노스, 수원을 연고로 하는 제10구단 KT 위즈의 창단으로까지 이어졌다. KBO 리그가 현재 10개 구단이 된 배경이다.
하지만 WBC에서의 선전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최근 두 번의 대회에서는 실망스러운 결과뿐이었다. 2013년 3회 대회에선 조 3위로 탈락한 데 이어 2017년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4회 대회 1라운드에서도 마이너 리거들로 구성된 이스라엘에게 패했고, 네덜란드와의 2차전 역시 완패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처럼 WBC는 한국 야구에 환희와 아픔을 동시에 선물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탓에 6년 만에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 야구대표팀의 출전 선수들은 화려하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혼혈 선수인 토미 현수 에드먼도 선발했다. WBC는 월드컵과 달리 부모의 국적에 따라 팀을 정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야구 종주국인 미국과 우승 후보로 꼽히는 도미니카공화국·일본 등의 팀들도 스타급 선수들로 구성되기는 마찬가지다.
20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 1라운드에서 한국은 호주·일본, 그리고 1인당 연봉이 2000만 원도 채 안 되는 사회인 야구 수준인 체코·중국과 차례로 맞붙는다. 2라운드 진출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듯하다.
2023 WBC는 이미 시작됐다. 대표팀은 팬들의 기대가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도 남는다. 그들의 선전 여부가 2023 시즌 국내 프로야구 흥행의 변수가 되기 마련이다.
KBO 리그의 실력을 입증하고 왕년에 활약했던 선수들을 더는 생각나지 않게 해야 할 일이다. 대표팀이 대회 개막 40여 일을 앞두고 일찌감치 미국으로 떠나 담금질에 돌입한 이유다. 한국이 6년 전 홈에서 당한 치욕을 씻어 내고 옛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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