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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수많은 답이 나올 수 있겠으나 민주적 정체(政體)가 의견들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그것들이 표명될 자유를 보장해야 마땅하리라는 점은 웬만큼 합의될 수 있을 듯하다. 상대적 세계관에 기초한 민주제에서 사유와 발화의 자유 자체를 파괴할 자유는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파괴적 자유를 국왕에게만큼은 허용하는 군주제가 파괴된 2006년의 부탄에선 군왕의 자진 사퇴로 시민들은 생전 처음 민주정을 접하게 된다. 정치적 격변을 맞은 부탄 정부는 가상의 세 정당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를 학습시키고, 승려와 총기 수집상은 총의 소유권을 놓고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인다.
‘총을 든 스님’은 민주 정치의 생명이 ‘복수성(複數性)’에 있다는 교훈을 다채로운 상징적 이미지들로 묵중하게 전달하는 영화다. 지구에 서로 다른 생각과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정치의 조건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한나 아렌트의 말은 복수성의 뜻을 잘 담고 있다. 그런 복수성은 영화의 대사를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된다.
선거 관리 공무원은 부탄인에게 현명한 투표에 관한 것을 가르쳐야 현대화에 발맞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파는 전통 유지를 지지하는데, 여기서 전통이란 민주정과 정반대인 군주정을 포괄하는 의미일 터이다. 노승 ‘라마’에게서 총을 구해 오라는 명령을 받은 승려 ‘타시’는 불법(佛法)으로 검증되지 않은 민주주의가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 의심한다. 이 엇갈리는 대사들은 민주주의 체제가 사상과 언명의 자유를 보장하기에 통치 체계로서의 적합성에 관한 비판과 회의도 감당해야 함을 잘 일깨워 준다. 이 역설은 바람에 부드럽게 파도치는 황금빛 곡물들처럼 묘한 동요를 일으키기에 족하다.
이런 동요는 영화 제목에서부터 일렁이는 것 같다. 증오·갈등·폭력의 무기인 총과 자애·평화·진리의 구도자인 승려가 조합된 제목은 뚜렷한 상징적 대조를 통해 어떤 파문을 자아낸다. 부탄 정부가 가정한 세 당이 각각 파랑·빨강·노랑 색깔로 자유와 평등, 산업 발전, 보존의 가치를 구호화함을 상징하게 한 설정은 영화 밖 현실의 사회도 대립으로 동요시킬 뿐 아니라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는 정치적 자유가 사실 연습과 훈육으로 형성됐을지도 모른다는 관점을 열어 주기도 한다.
영화의 이미지는 색채의 차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총이 살육과 혈투의 흉기로서 지니는 강력한 상징성은 알기 쉬우나, 달의 상징성은 헤아리기 어렵다. 왜 검은 밤하늘의 달이 엔딩에서 떠올랐던 것일까? 정보통신 기기인 TV와 인터넷을 가장 늦게 수용한 부탄은 전통문화의 영향이 상당히 짙은 상황일 터이다. 이런 문화 환경을 고려하여 달이 순환적 변화의 원형임도 참고할 때, 낮 하늘에 뜬 흰 달과 농토에 서린 무지개는 공존의 다채로움을 명료하게 연출한 이미지로 충분히 해석될 만하다.
라마가 세우는 탑도 그래서 흥미롭다. 고승은 말한다, 예로부터 탑을 지어 무탈을 기원했다고. 그런 탑의 밑에 온갖 탈을 부르는 갖가지 총들이 매장되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탑은 붓다의 깨달음을 상징한다. 부처는 만인이 불성을 깨달아 성불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런 점에서 불제자인 승려가 세운 그 탑은 비아(非我)를 제거하는 총화(銃火)가 아니라 비아(非我) 혹은 아(我)의 총화(總和)로써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음을 설파하는 불탑에 값한다. ‘총을 든 스님’의 고요함이 선명한 사자후로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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