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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끝난 후 보민은 재동과 함께 해주댁 아줌마의 집으로 향했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면서 잎들의 색깔이 변해가는 계절이었다. 아이들은 한동안 아줌마에게 가지 못했다. 가을의 선선한 날씨를 이용하여 선생님들이 숙제도 많이 내주고 소풍도 가고 활동도 끊임없었던 탓이다.
해주댁은 양손에 두 아이의 손을 꼭 쥐고 집으로 향했다. 짧아진 가을 해가 어느덧 기울어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아이들은 마당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하고 해주댁은 부지런히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들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앗! 아저씨는 누구세요?”
보민이 벌떡 일어나 놀라서 물었다. 하얀 꽃이 수 놓인 검정색 모자를 쓰고 감청색 상의를 입은 키 큰 남자가 앞에 서 있었다. 재동도 얼결에 일어났다.
“쪼그만 놈들이 지금이 어느 땐데 마당에서 손에 흙 묻히고 놀고 있는 거냐?”
남자가 호령을 했다. 남자의 소리에 부엌에 있던 해주댁이 밖으로 나왔다. 남자는 해주댁을 보더니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어서 오너라.”
해주댁이 잔잔한 목소리로 반겼다.
“와! 오빠다. 오빠야!”
보민이 뛰어올라 원익의 허리에 매달렸다. 원익이 보민을 높이 들어 올려 빙빙 돌았다.
“어지러워요. 어지러워~”
“그만하고 내려줄까?”
“아니, 재미있는 걸. 더 돌려줘요!”
“나, 참… 영영 안 내려준다.”
원익은 이렇게 말하며 보민을 툇마루에 내려주고는 재동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재동이 그동안 많이 컸는 걸?”
재동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잠시 후 해주댁이 저녁상을 내어 왔다. 원익은 콩나물국을 단숨에 마셨다.
“원익 오빠, 오빠가 군인이 된 거예요?”
원익의 모습이 신기한 보민이 물었다.
“딩동댕! 어떠니? 오빠 멋지지 않아? 오빠는 임금님이 만드신 군사학교의 학생이야.”
“원익아, 너 군복 벗고 퇴근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해주댁이 꾸짖듯 물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허락받았습니다. 어머니! 여기 귀빈 두 분이 오는 날이니까요.”
원익이 눈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해주댁은 무어라 말을 못 하고 혀를 찼다.
“형! 이 모자는 군대 모자예요? 여기 수놓은 이 꽃은 뭐에요?”
꼼꼼한 재동이 군모를 세심하게 보더니 물었다.
“아, 이 꽃은 오얏꽃 이란다.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꽃이지.”
“러시아에서 교관이 왔다고 사람들이 난리다. 너희들도 거기에 소속되어서 훈련을 받게 되겠지?”
해주댁이 말했다.
“11월이 되면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어머니. 폐하께서는 200명의 군사교관을 요청하셨는데 러시아는 푸차타 대령을 포함한 장교 4명과 하사관 10명만 보냈습니다. 아쉬운 대로 800명 정도를 뽑아 훈련에 들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군부대신 민영환 대감이 원한 건 2200명이었는데 교관 숫자가 적으니 그 정도로 만족해야지요. 들리는 말로는 민영환 대감이 폐하께 칭찬을 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이번 사절단 결과에 못마땅한 것이 많아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합니다.”
“그렇다고 하시더냐? 반 년에 걸쳐 그 먼 길을 다녀왔으니 힘들기도 하시겠지. 러시아는 상당히 넓고 기후도 사납다고 하더구나. 너는 폐하를 지키는 귀한 임무를 맡을 것이니 각별히 조심하고 성실하게 훈련받도록 하거라.”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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