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열의 스파이 세계] <3> 소련 내 美 첩보망을 팔아 넘긴 CIA 요원 에임스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23 06:31:00

1994년 2월21일,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버지니아주 교외에 있는 한 집 밖에서 중앙정보국(CIA) 현직 간부인 알드리치 에임스(Aldrich Hazen Ames, 당시 52세)를 스파이 활동 혐의로 체포했다. 에임스는 CIA의 방첩관으로 구 소련과 러시아를 위해 1985년부터 9년간 스파이 활동을 하다가 1994년 검거됐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그를 ‘가장 악랄한 배신자’(the most notorious traitor)로 평가했다. 에임스는 이념이 아니라 돈 때문에 스파이 활동을 했다.

에임스는 1941년 미국 위스콘신 리버폴스에서 태어났다. 시카고대학에 입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했고,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CIA 요원이었던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1960년 CIA에 들어가 일하다 1962년부터 정직원으로 채용되어 체포될 때까지 31년간 근무했다. 1969년 같은 CIA 요원인 낸시 세제바스(Nancy Segebarth)와 결혼했는데 부인은 요원 간의 연애를 금지한 CIA 규정에 의해 사직하게 된다.

1981년 멕시코에서 근무하던 시기, CIA 멕시코 지부 정보원인 로사리오(Rosario)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져 동거하면서 부인과 이혼했다. 이후 위자료 등으로 상당한 재정적 압박을 받게 되자 국가 기밀을 팔아넘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임스는 1983년 CIA의 핵심 부서인 대(對)소련 방첩관에 보임되며 소련 관련 공작 기록 등 주요 기밀문서를 다루어 거의 모든 중요 자료에 접근이 가능했다.

에임스는 1985년 4월16일 워싱턴에 있는 소련 대사관으로 대담하게 들어가 당직관에게 봉인된 봉투를 건넸다. 이 봉투 속에는 미국 스파이로 암약 중인 KGB 요원 2명의 명단과 CIA 내에서의 자신의 직책을 밝힌 메모와 함께 5만 달러를 요구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후 콜롬비아 보고타와 로마 등 해외 근무지에서도 소련 대사관 KGB 요원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25명 이상의 소련 내 미국 스파이 명단과 100건이 넘는 CIA의 대소련 공작 기밀문서를 KGB에 넘겼다. 그 대가로 에임스는 구 소련 및 러시아로부터 무려 270만 달러(약 21억6000만 원)의 거금을 받아 챙겼다. 이 돈으로 에임스는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에 호화 주택을 사들였고 고급승용차 재규어를 구입하는 등 자신의 연봉(6만~7만 달러)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호화생활을 해 왔다. 이는 결국 에임스가 의심을 받게 되는 단서가 된다.

1985년 이후로 첩보 작전이 100여 번이나 실패하고 비밀 요원도 10명 넘게 체포되어 처형당하는 일어 벌어지자 CIA가 발칵 뒤집혔다. 에임스가 소련(후에 러시아)에 미국 스파이 명단을 넘겨주는 바람에 소련 내에 어렵게 구축한 CIA의 첩보망이 한순간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 것이다. 자체 조사를 하던 CIA와 FBI는 1991년 조직 내부에 소련 스파이가 있다고 확신하고, 국가방첩센터(CIC) 내 CIA 및 FBI 요원들로 구성된 특별팀(SIU·Special Investigations Unit)을 결성하고 스파이 색출작업에 돌입한다.

결국 각종 첨단 장비를 동원해 도청과 사진 촬영·비밀 가택수색을 벌이고 심지어 쓰레기통을 뒤져 사용하고 버린 컴퓨터 프린터 리본을 입수·분석해 그가 작성한 문서의 내용을 알아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FBI는 법원의 비밀영장을 받아 에임스의 사무실에서 러시아 관련 비밀서류 114건을 찾아냄으로써 그가 1991년 대러시아 업무를 그만둔 이후에도 계속 러시아에 정보를 팔아넘겨 왔음을 밝혀냈다. 1992년 10월에 에임스가 130만 달러를 예치해 놓은 스위스 은행의 계좌가 발견되고, 스파이 활동의 결정적 증거들이 확보되어 결국 1994년 2월21일 에임스와 그의 아내가 검거됐다. 1994년 4월28일 에임스는 유죄를 인정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아내는 탈세와 간첩 공모 혐의로 63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방첩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방첩센터(CIC)를 국가방첩실(The Office of National Counterintelligence Executive)로 확대·개편했다. 의회는 해외정보감시법원(Foreign Intelligence Surveillance Court)에 특별 권한을 부여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FBI는 에임스 간첩사건 발생하고 3년이 지난 1997년 4월15일, 무려 400쪽에 달하는 ‘에임스 스파이 활동 검토 보고서’를 의회와 CIA 국장·FBI 국장·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FBI와 CIA가 1985~86년 자산 손실(대소 첩보망 와해)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FBI와 CIA가 공동 조사를 추진하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중앙정보국장(DCI)이 FBI·CIA 및 기타 정보 커뮤니티 구성원과 적절하게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후에도 각 정보기관 간 해묵은 갈등과 정보공유 부재로 2001년 9.11 테러를 당하고서야 16개 정보기관을 조정·통합하는 국가정보장(DNI)이라는 정보공동체를 구축하게 된다.

한편 에임스를 소재로 영화 ‘올드리치 에임스: 내부의 배신자(Aldrich Ames: Traitor Within)’(1998)와 ABC 방송의 미니시리즈 드라마 ‘디 애세츠(The Assets)’(2014)가 제작되어 인기를 끈 바 있다.

유동열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