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유산 지킨 '옻칠'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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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산 지킨 '옻칠'의 신비

공주 공산성 갑옷 이어 부여 관북리에서도
한반도에서 5000년 전부터 사용 시작

엄재만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2-27 17:55:36

▲ 23일 최응천 문화재청장이 2호 수혈유구( 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에서 출토된 칠피갑옷을 살펴보고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땅이던 충청남도의 두 고도(古都)에서 잇따라 옻칠 유물이 발굴돼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2011년 공주 공산성에 이어 최근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도 출토된 옻칠 갑옷은 삼국시대 옻칠에 대한 연구를 한층 진척시킬 전망이다.

옻칠이란 옻나무를 흠집내 나온 진액 내지 그 진액을 바르는 일이다. 나전칠기(螺鈿漆器) 등 다양한 칠기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인체에 무해하고 아름다운 빛깔을 낼 수 있으며 내구성을 크게 높이는 등 장점이 많다. 고대 기술문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원주옻문화보존회 자료에 따르면 옻칠은 특유의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옻 바깥쪽의 우루시올 고분자가 수분 침투를 방지하고 안쪽의 다당류가 산소의 침투를 방지해 내부 산화를 막는다. 물·유기용매·강산 등에도 쉽게 부식하거나 썩지 않는 이유다. 옻칠은 형성 입자가 층층이 쌓여 있어 마지막 입자층까지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 한 원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한다. 접착제 역할도 한다.

국립김해박물관이 2019년 보관 중이던 신석기시대 토기의 적색 안료에서도 옻 성분인 우루시올 성분을 검출했다. 안료가 토기에 잘 붙도록 하기 위해 옻을 섞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신석기 유적에서 옻 성분이 발견됨에 따라 한반도 옻칠 역사가 약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백제 유적에서 옻칠한 갑옷이 발견된 것은 그만큼 옻의 수명을 말해준다. 이러한 장점으로 고대부터 옻을 이용해 왔다. 최근 백제 역사·문화권인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 내 왕궁 시설로 추정되는 건물터 일대의 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에서 칠피갑옷(옻칠된 가죽을 연결해 만든 갑옷)과 갑옷 흔적이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27일 “백제시대 문화층에서 칠피갑옷이 출토된 사례는 공주 공산성(2011년) 이래 부여 관북리 유적이 두 번째”라고 밝혔다.

이어 “두 곳 유적의 칠피갑옷 모두 발견 당시 주변에 폐기된 다량의 유물과 불에 탄 목탄이 함께 출토됐는데 백제 멸망 당시 혼란스러웠던 사회상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앞서 2011년·2014년 공주 공산성 내 마을에서 나온 옻칠 갑옷은 서기 645년 제작으로 판명된 중요한 유물이다. 당 태종 연호 ‘정관(貞觀) 19년’이라는 붉은색 명문이 새겨져 있다.

엄재만 기자 jmeo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