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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사정’이라는 말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부조리나 더러운 면을 일컫는 말이다. 자라나는 어린이는 모르는, 말하기 힘든 사정이라는 의미에서 어른의 사정이라고 한다. ‘업계 사정’ ‘개인 사정’ ‘갑질’ 같은 단어가 다 자매품이다.
업계마다 무수한 사람이 변화시키려고 했으나 도무지 꿈쩍하지 않는 고질적이고 특수한 병폐가 있다. 특허권이나 저작권에 얽힌, 일일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많은 일부터 ‘하청-재하청’ ‘전세-전전세’ 같은 불법적인 거래도 업계 사정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설명된다.
정치권에서 행해지는 언론플레이(언플)는 대표적인 어른의 사정에 속한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언론은 정치인의 공식적인 소통 창구다. 하지만 많은 정치인이 언론을 이용해 날조·세뇌·여론몰이·선동·과장·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누가 언플을 잘하느냐에 따라 정치인의 이미지가 180도 달라지며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알면서도 막을 수 없고, 진위가 밝혀졌을 땐 이미 때가 늦어 버리는 게 언플이다.
직장에도 어른의 사정이 있다. 회사에서 거의 잘리는 수준으로 퇴사해도 그는 표면적으로는 ‘개인 사정으로 그만둔다’는 내용의 사표를 제출한다. 그래야 소문이 나쁘게 나지 않아 동종업체에 취직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회사는 조용히 ‘해고’ 처분을 내려 준다. 퇴사 당사자가 6개월간 ‘실업급여’를 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고소 건을 준비하던 퇴사자도 실업급여 혜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송사를 포기한다.
“회사 고소한다더니 어떻게 잘 해결됐어?”
“응, 그렇게 됐어.”
그의 대답을 들은 친구는 ‘어른의 사정이 있었구나!’ 하고 더 캐묻지 않는다.
어른의 사정은 없어져야 할 병폐가 맞지만 일면 풍파를 잠재우는 기능도 있다. 주변의 더러운 사정을 알고 나서 흥분하여 SNS에 올린다면 마음이 아직 아이 같은 사람이다. ‘세상이 그렇지 뭐!’ 하고 넘어간다면 어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련되어진다는 뜻이기도 하고 타락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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