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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열리면 만수와 미리 부부가 두 자녀와 함께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그네들이 사는 교외의 단독주택이 너무 이국적이어서 샌프란시스코나 LA쯤 되는 것 같다.
한국의 어떤 대공장 노동자가 25년 동안 재직해서 저렇게 그럴듯한 교외의 대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면, 한국은 일하는 사람들의 낙원쯤 되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된다. 만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태양제지’라는 종이 만드는 공장에서 계속 일해서 아버지 대에 잃어버렸던 이 집을 되찾았다.
행복 끝 불행 시작이다. 미국 자본이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감원 태풍이 몰아친다. 반장인 만수도 뜻밖에 감원 대상이 되어 해고되는 처지에 빠진다. 왜 하필 미국 자본이 사들이는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생각난다. 이 인상 깊은 영화도 시작은 미군 부대가 독극물 든 폐수를 몰래 한강에 방류하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잘 살 것을 공장을 인수하고 환경을 오염시켜 ‘한국’의 불행이 시작되었다는 걸까. 봉준호와 박찬욱은 이창동 함께 21세기 한국 영화의 전위들이다. 그런데 ‘기생충’이나 ‘어쩔 수가 없다’ 같은 최근의 영화들은 이 문제작들을 가능케 한 ‘세계관적’ 기반이 너무 경제주의적인 것은, 물질주의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계급이 다르면, 사는 곳이 다르고, 먹는 게 달라서 풍기는 냄새조차 다른 것이 사실일 테고, 궁핍한 이는 가난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기는 할 것이다.
박찬욱 영화의 ‘원점’이라 할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는 사회가 정의를 실현해 줄 수 없는 사회적 풍토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자기를 구제할 수 있는가를 그렸다. 이 ‘연작’의 마지막 작품의 내레이터 말이 생각난다. 정확한지 모르겠다. 복수를 마치고도 금자 씨는 그토록 원하던 영혼의 구원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
영혼의 구원이야말로 육체의 구원을 넘어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친절한 금자씨’가 두부 스테이크에 얼굴을 묻고 흐느낄 때, 왜 이 사회는 저 가엾은 존재의 영혼을 저토록 헐벗게 만들었더냐고 감동할 수 있었다.
이제 ‘어쩔 수가 없다’에서 만수는 해고로 인한 체납 등과 집을 내놓아야 하는 위기 앞에서 자신의 예비 경쟁자들을 차례로 없애려는 계략을 실행에 옮긴다. 사회가, 오로지, 가족과 함께 평온한 삶을 누리면 그뿐인 이 욕심 ‘적은’ 가장을 공장 바깥으로 내몰았을 때, 이 가장은 행복을 되찾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이 블랙코미디 속에서 결국 만수는 너무나 운 좋게 자신의 범죄를 완전하게 꾸미고 자동화된 신공장의, ‘타자’ 없는, 동료 없는 단 한 사람뿐인 반장으로 복귀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만수의 영혼은 구제받지 못한다. 사회가 너무나 소박한 꿈의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제 필자는 이런 문법이 부담스럽다. 인간은 가장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 영혼의 구원을 추구해야 한다. 거장의 새 문제작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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