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제약업계가 맞닥뜨린 수사어는 ‘밀가루약’, ‘약가거품’, ‘리베이트’ 로 세 개에 이른다. 제약업계는 1960년대 불량 항생제 사건으로 언론이 만든 수사어인 ‘밀가루약’의 덫에 걸려들었다. 이후 40년이 넘게 제약회사의 생산기술이 발전했고 정부의 규제 및 감시가 강화되었다. ‘밀가루약’은 더 이상 대중에 회자될 수 없는 용어로 보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두 차례 불거진 생물학적동등성시험 파문은 제약업계를 여전히 ‘밀가루약’이나 생산하는 산업으로 추락시켰다. 제약업계는 생물학적동등성과 밀가루약과의 커다란 간극을 대중에게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제약업계의 어떠한 논리적 반론도 ‘밀가루약’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밀가루약’이란 용어가 잠복기에 들어간 사이 제약업계는 지금 ‘약가거품’과 ‘리베이트’란 용어와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패색이 짙어 보인다. 제약업계에 불리한 제도가 도입되고, 약가가 연이어 인하되고, 조사관이 제약기업을 다녀간 뒤에는 과징금과 벌금이 날아든다. 이럴 때마다 위기의 본질을 잘못된 대중과의 소통 방법과 부족한 산업의 홍보로 돌려 버리는 것이 제약업계의 습성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소통 전략이 있다고 해도 마술을 부릴 수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수사학 Rhetoric》에서 “수사학이란 주어진 상황에 가장 적합한 설득 수단을 발견하는 예술”이라며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로고스(이성), 파토스(감성), 에토스(평판)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우선 전달하는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나아가 상대방의 감성에 호소할 줄 알아야 하며, 메시지에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의 평판이 좋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견주어 볼 때 제약업계는 설득의 3대 요소 중 투명성과 관련이 깊은 평판 부분이 너무 취약하다. 리베이트 때문이다. 감성적 호소 부분도 부족해 보인다. 화장품 업계는 ‘화장품’이 아닌 ‘아름다움’을 파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제약업계는 의약품이 아닌 ‘건강’을 파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이를 보완하지 않고 대중을 설득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 시도하는 것은 무모에 가깝다. 지금은 제약업계와 대중 사이에 쌍방향의 균형 잡힌 소통의 길을 열어 갈등과 분쟁의 소지를 줄여 나가야 할 때다.

제약업계가 위기의 원인과 돌파할 방법을 산업 홍보에서 찾는 것도 문제가 있다. 물론 제약업계가 이룬 성과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면서 비즈니스 방식에 대해서는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산업을 옥죄는 정부와 언론에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PR이 만능이 아니고 나아가 진실을 창조할 수는 없다. ‘약가거품’과 ‘리베이트’ 산업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려면 제약업계 스스로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제약산업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적절히 방어할 수 있다. 제약산업의 가치와 역할 알리기는 효과적인 소재와 방법을 새로 발굴하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한 제약산업 때리기에 대응해 온 기존의 무시, 반격, 반박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 제약산업의 장점은 물론 결점과 한계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면역 전략이 필요하다. 자신의 단점을 인간적 호감의 대상으로 역전시키는 사람과 같이 제약산업의 부족함과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나간다면, 이로 인해 적어도 제약업계에 불리한 상황이 초래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쟁점관리에 전념해야 한다. 규제 강화 등 제약산업의 쟁점을 예견하고 쟁점이 발전하여 위기가 뒤따르기 전에 사전에 막는 PR 기능이 요구된다. 특정 집단의 압력과 법규 제정 단계에 이르기 전에 그 압력을 완화시키는 노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