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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영원한 동요엄마로 남고 싶어요”

‘그대로 멈춰라’ 등 500여 동요 만든 김방옥 이사(음악저작권협회)

김진수기자(jinsuac@skyedaily.com)

기사입력 2012-06-10 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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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방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우리나라에 ‘아파트’, ‘남행열차’ 등의 국민가요가 있다면 국민동요가 있다. ‘그대로 멈춰라’란 곡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동요다.
 
하지만 이 노래가 탄생한 배경을 보면 의외로 뜻밖이다.
 
계산기를 누를 때 키에서 나오는 멜로디 음 소리를 조합한 것이 노래로 탄생됐기 때문이다.
 
노래를 작곡·작사한 김방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는 아이들을 위해 수많은 동요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동요로는 ‘그대로 멈춰라’, ‘둘이 살짝’, ‘모두다 뛰놀자’ 등이 있다. 김 이사는 이처럼 향수를 일으키는 주옥같은 동요를 500여곡이나 작곡했다.
 
작곡과 함께 그녀는 우리나라 방송인 1세대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 미술에도 소질을 보여 개인 전시회도 다수 개최하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김 이사가 작곡한 ‘그대로 멈춰라’ 악보

김 이사는 1939년 서울태생이다. 광복을 맞이하기 전에 그녀는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의사였습니다. 시대상 아주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배를 굶으며 살지는 않은 듯 합니다. 어릴 때 성격은 쾌활했으며 명량한 유년시절을 보냈었죠”
 
청운초등학교 3년 시절, 그녀는 건강이 악화돼 장기 일부를 떼어내는 등 대 수술을 했다. 이 후 안정을 찾아 다시 친구들과 함께 정상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안정된 생활은 길지 않았다. 1950년 6.25 전쟁으로 그의 가족은 불행의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6.25가 발발해 저희 가족은 피난을 준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친이 납치를 당해 생이별을 했습니다”
 
“동네 이웃주민들이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납치된 광경을 보았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은 이웃 주민이 잘못 본 것으로 생각하고 아버지를 계속 기다렸습니다”
 
어린나이에 그녀는 아버지를 찾으려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끝내 아버지를 찾지 못했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 한국전쟁으로 가족은 피난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녀가 피난을 가기 전 서울에 머물었던 장소는 다행히 전쟁이 미치지 않았던 지역이었다. 
 
어린나이라 그녀는 정확한 사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치마 속 복주머니에 돈 몇 푼 들고 가족과 함께 경상북도 영주로 내려가 피난생활을 했다.
 
경북 영주 큰아버지 댁서 피난생활
 
영주는 김 이사의 큰 아버지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른 친척 집으로 이사를 했다. 시간이 지나 전쟁은 휴전으로 막을 내리고 다시 김 이사 가족은 영주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저희를 이끌고 피난을 내려갔는데 저는 어린나이라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고 애만 태웠던 기억이 납니다”
 
김 이사는 6학년을 영주에서 보내고 중학교 들어갈 무렵 강원도로 이사를 했다.
 
그녀는 태백산 인근에 있는 상동중학교로 입학했고 공부를 잘했다. 무엇보다 음악적 소질이 뛰어났다.
 
당시 강원도는 텅스텐 채굴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정이 많아 대부분이 잘 살던 시절이었다.
 
 ▲ 강원도 주민들은 텅스텐 채굴로 생계를 이어갔다.

“텅스텐은 백열전구에 사용되는 광물입니다. 그 시절 굉장히 비싼 가격이 형성돼 주위 사람들이 잘 살았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광부 합숙소가 있는 음식점에서 일을 했다. 일이 끝나면 산에서 내려오는 텅스텐 조각들이 냇가로 흘러 이것을 정제해 팔기도 하는 등 생계를 이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이 지역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에는 훌륭한 성생님들이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유능한 선생님을 스카웃 했었죠. 다른 학교 선생보다 월급도 많이 주었기 때문에 못 올 이유가 없었죠”
 
중학교 졸업 후 그녀는 상경해 서울사범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중학교와는 달리 고등학교 생활은 공부가 아닌 노래와 춤, 미술 등에 관심이 많았다.
 
이 시절 그녀는 이처럼 음악과 미술 등에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 불렀으며 그림도 잘 그려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중학교는 공부에 관심이 있어 열심히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음악과 미술 등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녀가 본격적인 방송생활을 한 계기는 고3 시절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콩쿠르에 나가 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입상 경험으로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라디오 방송을 처음 접했습니다. 저는 방송이 좋았습니다. 집안 형편은 대학을 보낼 만큼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기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보다는 합창단에 가입해 노래도 했으며 미술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었죠”
 
그녀는 이 시절 방송생활을 하면서 음악과 미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1959년 ‘이 주일의 동요’란 KBS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을 시작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EBS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조금씩 방송시간이 늘기 시작했다.
 
첫 직장 초등학교 선생, 박근혜 전 비상위원장과 대면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김 이사가 사회에 진출한 직업은 방송이 아니었다. 졸업 후 20대에 첫 직장은 청운 초등학교의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사연을 전했다.
 
 ▲ 어린시절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손잡고 운동장을 뛰고 있다. 김 이사는 당시 근혜 학생이 성실하고 모범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제가 직접 담임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당시 4학년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 근혜 학생은 경호원이 있었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학생들과 나눠먹기도 하며 심지어 고층 유리창도 닦는 등 솔선수범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어린나이에 주위 관심을 많이 받은 상황이라 쉽지 않았을 텐데 학교생활을 참 잘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녀는 학교에 다니면서 방송생활을 가끔씩 했다. 이어 동료 선생님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28살에 결혼을 했다.
 
“남편 집안이 잘 사는 편이었습니다. 저는 결혼과 동시에 학교생활을 접고 전업주부로 생활을 했습니다. 7년 동안 선생님으로서 생활을 했는데 아쉬움은 많이 남았죠. 하지만 방송생활은 결혼 이후에도 일주일에 한번정도 꾸준히 했습니다”
 
본격적인 방송생활 시작, 500여곡 동요 만들어
 
“아이를 낳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하던 방송생활이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밥을 챙겨먹는 나이가 되자 방송을 통해 저의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김 이사는 KBS 방송뿐만 아니라 EBS에서도 방송활동을 해 나갔다. 또 라디오에서 본격적인 TV 방송시대를 맞으며 EBS ‘딩동댕 유치원’  MC로 진행을 맡았다. 이어 KBS1 TV 유치원 MC로도 활동범위를 넓혔다.
 
 ▲ 김 이사(원)는 TV유치원 초대 멤버로 안무 창작,  노래 작곡, 대본까지 쓰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을 넓혔다.

“그 시절은 MC가 대본도 쓰고 노래도 만들고 프로그램기획까지 다 하던 시절이었어요. 이후 TV 유치원 작가로 활동을 하게 됐죠”
 
그녀는 1982년 KBS1 TV 유치원 초대멤버로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갔다. 동요와, 무용, 심지어 뮤지컬 음악까지 활동을 펼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TV 유치원 첫 방송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 모든 게 생방송이었습니다. 한 치의 실수를 없게 하기 위해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여관에서 밤을 지새우며 프로그램 기획에 대해 아이디를 짜 내었죠”
 
“그 시절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한 듯 합니다”
 
그녀는 TV유치원 MC를 시작으로 조금씩 얼굴이 알려지자 타 방송에서도 스카웃 제의가 많이 들어와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이 시절 그녀는 수많은 동요를 작곡했다.
 
“제가 진행한 프로그램은 아이들을 위한 방송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요에도 관심이 많았고 ‘둘이 살짝’, ‘그대로 멈춰라’ 등 지금까지 500여 곡의 동요를 작곡했습니다. 특히 ‘그대로 멈춰라’는 곡은 계산기를 누르면 나오는 음을 장난치다가 동요로 만들게 됐습니다”
 
김 이사는 70이 넘은 나이지만 마음만큼은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그대로였다.
 
그녀는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관람객이 김방옥 선생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그녀는 미술 개인 전시회도 열고 있으며 아울러 KBS TV 유치원, EBS ‘꼬마요리사’ 코너의 미니어처 제작 등을 맡고 있다.
 
“생활이 즐겁습니다. 생활동요를 꾸준히 접해보니 마음도 젊어지는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날 까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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