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영화 ‘연가시’는 신약 상상력도 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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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순 필진페이지 + 입력 2012-07-30 02:48:01

▲ 장우순 의약전문 칼럼니스트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통상 100만부 이상 팔린 책, 연간 1000억~4000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린 영화, 연간 1000억~1조 원 이상 팔리는 약을 일컫는다. 출판사와 영화제작자, 그리고 제약기업은 블록버스터에 사활을 건다. 이들에게 블록버스터는 꿈의 현실화요 성공의 지름길이자 성장의 분수령이다. 그야말로 한 구역(block)을 날려버릴(buster) 위력을 가진 슈퍼 제품을 보유하는 것이니 말이다.

출판·영화산업의 경쟁력

출판·영화산업의 경쟁력은 물적 자원이 아니라 무형의 지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4억 5000만부가 팔린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와 2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영화 ‘타이타닉’이 대표적 예다. 우리나라 출판물과 영화들도 속속 세계시장을 향하고 있다. 특히 신경숙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쉬리’에서 비롯된 한국 영화의 상업적 성공과 발전 역시 눈부시다. 그러나 부가가치 창출 면에서 볼 때 아직은 외국 블록버스터 작품과 견주기 어렵다.

국내 출판산업과 영화산업의 글로벌화에 놓인 과제는 ‘세계인과 공감할 스토리’를 만드는데 있다. 스토리의 본질은 허구다. 작가가 역사와 신화, 사건과 사고, 지식과 경험을 매개로 표현하는 상상의 영역인 것이다. 따라서 세계인이 공감할 스토리는 기발한 발상이 존중되고, 현실 풍자에 관대하며,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에서 더 많이 나올 것이다.

‘연가시’에 묘사된 의약업계

영화 ‘연가시’는 여름 특수를 겨냥한 전형적인 재난 영화다. 400만 관객을 불러 모아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주인공의 직업은 제약회사 영업사원, 도입부에 그려진 주인공의 일상은 ‘병원장 가족의 놀이공원 도우미’에서 ‘의사들과의 접대성 골프’로 이어지는 피곤의 연속이다. 영화의 전개와 함께 드러나는 제약회사의 실체는 더 충격적이다. 리베이트를 업으로 삼고 기업주와 연구원들은 외국 자본과 결탁하여 크게 한탕 해먹고 튀려는 ‘먹튀’들이다.

영화를 본 의사들은 ‘연가시’ 제작에 관여한 제약회사 제품을 상대로 불매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약업계 역시 해당 제약회사에 진의를 묻고, 영화 제작사에 항의라도 해야 한다는 성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뜩이나 리베이트를 일삼는 잠재적 범죄자 집단으로 몰려 연일 질타와 처벌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영화의 내용에 아량을 베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적 상상력과 현실 풍자

그러나 ‘연가시’에 그려진 의약계의 일면은 허구이거나 현실에 대한 풍자이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한다. 이 영화의 장면 장면에 진의와 사실여부를 들이대려면 우리는 정치권력의 음모와 종교계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영화들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포기해야 한다. 극단적으로는 다큐 영화를 제외한 어떠한 영화도 만들어지지 못할 것이다.

영화 ‘연가시’는 주인공이 기생충에 감염된 자신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치료제를 찾아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다. 아주 저렴하고, 만들기 쉽고, 구하기도 쉬운 구충제가 판데믹(Pandemic) 같은 국가 재난 상황에서 얼마나 절실히 필요할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의약계의 어떠한 홍보물도 이처럼 ‘약의 가치’ 잘 부각시키지 못했다.

특히 ‘Gordius aquaticus’라는 학명의 기생충이 여치나 귀뚜라미 같은 곤충에 기생하며 숙주인 곤충의 뇌를 조종해 물가로 뛰어들어 자살하게 만든다는 연구보고서를 바탕으로 전개시킨 작가의 지적 상상력에 커다란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문학적 상상력이 과학의 진보를 이끈다고 했던가. 영화 ‘연가시’는 다양한 기생충의 세계를 연구 관찰하며 이를 감염병 치료와 치료약 개발로 연결시키려는 의과학자들에게 결정적 영감을 줄 수도 있는 일이다.

논픽션 신약개발

제약산업은 출판이나 영화산업의 부가가치 창출 규모를 압도한다. 고지혈증치료제 리피토는 연간 13조원, 혈전용해제 플라빅스는 연간 10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반면 국내 제약기업은 연간 1000억원의 매출실적을 올리는 국산 신약을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기업과 국내 제약기업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간극이야말로 국내 제약산업의 가능성의 폭이 얼마나 무궁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국내 제약산업이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은 세계시장에 통용되는 창조적 신약을 개발하는 일이다. 물론 신약개발의 장르는 논픽션이다. 인체와 질병과 약물에 대한 과학적 연구결과를 첨단 제조기술과 결합시키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이 결합 작업에 필요한 것은 신약개발 연구·개발자들의 수많은 아이디어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디어의 원천은 지적 상상력에 크게 의존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의약지식과 의약계 현실을 소재로 무한 상상의 나래를 편 작품들이 많아질수록 신약개발의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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