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못한다면 이제 국회가 나서라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은행이 못한다면 이제 국회가 나서라

금융소비자 외면하는 금융자본, 금융공공성 강화해야

손채윤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2-10-08 03:17:55

지방의 한 중학교 교사인 A씨는 급한 돈이 필요했지만 업무시간에 은행을 가기가 부담스러워 손쉽게 카드론으로 급전을 해결한 일이 있다. 이자가 높은 줄은 알았지만 급한 마음에 12개월에 걸쳐 갚기로 하고 300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A씨는 카드론을 사용해 자신의 신용등급이 내려간다는 사실은 몰랐다. 카드론을 갚아 가고 있던 중 다시 대출이 필요해 은행을 찾았다가 거절을 받고 나서야 카드론을 사용한 것을 후회하게 됐다고 한다.

특별히 신용상 문제가 없었고 기존 대출규모 역시 크지 않았던 A씨의 경우 은행에서 몇 백만원의 돈을 빌리는데 문제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카드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자영업을 운영하던 B씨도 급전이 필요해 은행을 찾았다가 대출이 어렵다는 말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B씨는 사업을 하면서 이곳 저곳에서 받은 대출이 문제였다.

비록 소액 대출인데다 그동안 연체도 없었지만 대출 건수가 너무 많아 추가 대출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B씨는 할 수 없이 은행 대신 저축은행을 찾았다.

B씨에 따르면 그가 현재 빚더미에 허덕이게 된 단초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해 제2금융권을 이용한 것이다. 높은 금리의 저축은행 대출을 받고 보니 더 이상 정상적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다른 저축은행에서 조차도 신용위험자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는 매출이 줄어 이자 내기가 벅차지면서 마침내 고금리의 대부업체까지 이용하게 됐다.

처음에 신용상 특별한 문제가 없어도 제1금융권 즉 은행에서 정상적으로 대출받기가 쉽지 않다. 대출잔액이 있으면 담보를 요구하거나, 아니면 신용등급이 낮다는 등의 이유로 은행이 거절하기 때문이다. 또 최근 가계대출이 1000조에 육박, 부실화 우려가 제기되면서 금융권이 대출을 죈 것도 일반 금융소비자의 대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은행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돈 떼일 가능성이 높은데 선뜻 돈을 빌려준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 돈이라도 떼이게 되면 부실심사의 원인이 될 것이고, 은행의 악성채권으로 남게 된다. 이것이 쌓이게 되면 은행 역시 부실화될 게 뻔하다. 수익성만을 쫒는 주주들에 의해 은행 CEO는 경영부실화에 대한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

은행 입장에서는 그런 위험을 안으면서 까지 대출을 해줄 이유가 없다. 당장 돈이 급한 사람이나 기업은 그래서 은행으로부터 외면받기 일쑤다.

현 정부들어 각종 서민금융 지원책을 내놓게 된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지만 햇살론, 미소금융 역시 자격요건의 제한 등으로 막상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당장 돈은 급한데 정상적으로 적절한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없다면, 급한 사람 입장에선 높은 이자라도 대출만 해준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고리대출의 유혹에 넘어 가 빚더미를 떠안게 되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이자가 높아 상환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결국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기 위해 ‘빚을 내 빚을 갚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정상적인 금융소비자들 마저 빚더미에 앉게 되고, 서민 등 금융소외자들을 은행이 외면한다는 여론이 악화되자 각 은행들이 앞다퉈 자정결의를 하고 사회안전망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일례로 금융소비자 보호 전담부서 설립, 중소기업 및 서민금융 지원, 가계부채 안정적 관리, 금융소비자 보호 그리고 금융권 신뢰 회복 등이다.

하지만 곳곳이 허점 투성이고 대부분이 나왔던 대책들로, 이런 방안들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은행들이 금융소비자들을 위한 대책을 세웠다기 보다는 여론의 악화를 일단 피해보겠다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만 든다. 또 수익성만 내세운 금융자본이 이익을 저버린 채 금융소비자를 위한 공공성에 초점을 둘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고리의 대출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금융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당장 어려움에 처한 서민 뿐 만 아니라 은행의 외면으로 미래에 신용위험자에 빠질 수도 있는 일반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나와야 한다. 지금까지 이들은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었다.

때마침 정치권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정훈 위원장(새누리당)은 스카이데일리와의 대담을 통해 금융공공성을 강화하고, 서민금융을 전담하는 서민금융공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또 금융권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운영하도록 입법 발의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민주통합당 김기준 의원(정무위) 역시 “금융기관의 사회적 공헌활동은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다”며 “근본적으로 공공성을 강화하도록 금융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은행이 제 잇속만 챙기고, 어려울 때 세금으로 은행을 도왔던 금융소비자들을 외면한다면 이젠 법과 제도로 다룰 수 밖에 없다.

손채윤 기자 scy7320@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