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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치매를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한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화두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노인대국 진입을 눈앞에 둔 우리나라는 치매대란이 쓰나미처럼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태로 치매문제를 방치했다가는 국가위기로 번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적지 않다.
치매는 환자 개인의 질병이기 이전에 우리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가족의 문제다. 치매가 한 가정의 파탄을 불러오는 가족붕괴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탓이다. 치매는 누구나 가능성이 있는 질환이고 또한 누구나 그런 치매환자의 가족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고령사회가 되면서 치매로 인해 고통 받는 가족이 급격이 늘어나는 것에 국민 누구나 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치매가 개인과 가족의 문제를 떠나 국가현안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 대통령의 ‘치매 국가책임제’는 반드시 시행해야 할 국운이 걸린 정책과제다. 치매는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질환이라는 인식개선부터 선행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치매엔 효자가 있을 수 없다는 공공연한 말들이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이 되고 있는 만큼 국가가 이를 보다듬어 우리사회의 건강한 가족들을 지켜내야 한다.
가족 중 치매환자가 나오면 그 가족은 그날 이후 모든 게 변한다. 치매지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고통이 가족 전체를 눈물짓게 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단 1분1초도 치매환자 곁을 떠날 수 없는 가족들의 눈물과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냉정하고 살벌한 불효자를 만드는 씨앗이 되기 일쑤다. 때로는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심지어 유명을 달리하게 하는 극한의 패륜까지 심심치 않게 벌인다.
경증의 치매단계에서 충분히 중증진행을 멈추거나 최소한 늦출 수 있음에도 이를 포기하는 가족들이 늘면서 사실상 패륜 그 이상의 인명경시 풍조까지 확산되고 있다. 전국의 요양원 또는 요양병원들로 보내지는 치매환자들은 이른바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로 회자된다. 요양기관에서 치매환자를 치료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오히려 치매환자를 강제로 관리하다보니 치매가 급속히 진행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 끝내 요양기관도 손을 들고 가족들도 포기하는 사례가 흔하게 목도된다.
일부에서는 치매환자가 자의든 타의든 정신병원으로 보내지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가족들도 있고 알면서 불가피하게 방치하는 가족들도 있다. 치매환자를 가둬두는 것은 개미지옥 같은 감옥에 넣는 일이다. 치매가 악화되면 잠을 인위적으로 재우거나 사지를 묶어 놓기까지 해야 한다. 결국 없던 질환까지 발병해 합병증이 나타나면 끝내 최악의 사태로 이어진다.
치매는 개인의 불행 이전에 이처럼 가족, 사회, 복지기관 등 우리사회 전반에 나쁜 선례를 남기고 있다. 병든 부모를 포기하고 버리는 일이 확산되고 또 당연시 된다면 그것은 가장 큰 독버섯이 우리 사회에서 자라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72만명에 달하는 치매환자가 있다. 이들 치매환자에 4인 가족 있다는 기준을 적용하면 약 300만명의 가족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인데, 거꾸로 이들 중 적지 않은 가족들이 바로 ‘악마의 선택’을 해야 할 처지에 있다.
치매환자는 비단 지금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쓰나미라는 것이 더 큰 이슈다. 현재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 정도가 치매환자이지만 당장 2024년이면 치매환자가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2050년 경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약 38%에 달하고 치매환자는 무려 27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인구의 약 1/4이 치매가족이 되는 환경이다.
이에 대한 대비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 국운조차 쇠락할 위기상황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도 치매비용으로 혈세 수십조원이 쓰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국가지출분을 합한 총 치매관리 비용은 13조원이 넘었다. 이 비용이 2020년 19조원, 2030년 34조원, 2040년 64조원, 2050년 106조원으로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의 부담을 뺀 최소한의 국가지출이 이 정도다. 결국 문제는 천문학적인 혈세를 지출해도 치매환자를 줄이지 못한 채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데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개인도, 국가도 헛돈을 쓴다는 얘기다. 국가가 치매환자에 대한 지원을 적당히 발을 걸치는 식의 지원이 문제인 것이다. 국가가 치매를 공공의 질병으로 선포하고 전면적인 관리에 나서야 하는 것은 이런 당위성에 있다.
물론 앞선 정부에서 국가가 치매관리에 나서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보건복지부는 제1차 국가치매관리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어 제2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3~2015년),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6~2020년)이 추진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가시적이기는 해도 이도저도 아닌 정책의 모호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국가가 책임지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책임진다는 장기설계가 없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사례도 잘 살펴봐야 한다. 이미 일본과 영국이 우리보다 빨리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국가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주요 선진국들도 국가가 치매관리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 국가의 선례들을 벤치마킹하고 우리의 환경변수들을 고려해 한국형 치매와의 전쟁 플랜을 밀도 있게 짜야 한다.
무엇보다 노인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노인이 사회의 부담을 지우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노인들에 대한 지출을 결코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연명치료 비용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이를 경제적 비효율로 봐서도 안 된다. 노인과 연명치료 등을 경제성의 기준으로 본다면 치매노인은 가장 경제성이 없는 무가치한 생명이 되고 만다. 속된말로 치매환자들이 무더기 용도 폐기될 사람이란 말인가.
노인과 치매환자들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고 지탱해 온 버팀목이었다. 그들의 생명을 끝까지 보호하고 책임지는 마음이 있을 때 올바른 국운의 씨앗이 뿌려진다. 패륜과 생명경시의 기운이 퍼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차라리 국민적 정신질환이 확산되고 있는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사회적 질병이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는 것은 치매환자를 반드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웅변한다. 누구나 노인이 되고 연명의 삶을 살 수 있으며 치매환자가 될 수 있는데, 이를 책임지지 않는 국가는 가장 약한 자를 비열하게 버리는 악마적 선택이기에 결코 번영을 기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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