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수 
▲ 김종우(자유기고가)
어렵게 만난 그는 분명 모발이식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두주자, 아니 기라성(綺羅星)같은 베테랑이었다.
또한 대단한 역발상의 소유자, 실천자였다. 그는 이렇게 화두(話頭)를 던졌다.
“역발상이 무엇인가? 단언컨대 ‘어떤 생각과는 반대로 또는 거꾸로 생각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라고.
그렇다. 역발상은 ‘당연함’을 ‘당연하지 않음’으로, ‘당연하지 않음’을 ‘당연함’으로 뒤집어 보는 일일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문득 18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요즈음. 요지경(瑤池鏡)인 대선 주자들의 행보를 보니 한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이발대수(以髮代首)’이다. ‘머리카락으로서 머리를 대신한다’는 의미이다. 삼국지의 조조(曹操)와 관련된 성어로 원전을 보면 이렇다.
‘…건안(建安) 3년(198년). 조조가 토벌하기 위해 나섰다. 그런데 행군 도중 조조는 전쟁이 끊이지 않아 군대의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데다 민심까지 흉흉해 군대가 온다는 소리만 들리면 백성들이 겁에 질려 벌벌 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조는 군대에 명령을 내렸다.
“나는 천자의 영을 받들어 군사를 일으켰다. 이는 역적을 쳐 백성들을 해롭게 하는 무리를 없애려 함이다. 바야흐로 보리가 익어가는 때에 부득이하게 군사를 일으켰지만 나의 장졸들이 보리밭을 지나다가 보리를 밟으면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두 그 목을 벨 것이다.군법이 엄하니 백성들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명령이 하달되자 병사들은 보리밭을 지날 때는 모두 말에서 내려 손으로 보리를 헤치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조조 자신에게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조조가 말을 탄 채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행동에 흡족해하고 있을 때였다.
밭 가운데서 갑자기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자 조조가 탄 말이 놀라서 길길이 날뛰다가 보리밭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손을 쓸 겨를도 없이 보리밭 한 구석이 말발굽에 처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조조는 몹시 당황했지만 그 와중에도 꾀를 내었다. 그는 곧 부하를 불러 보리밭을 밟은 자신을 벌하라고 했다.
하지만 부하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승상께 군령을 따져 죄를 물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조조는 “나 스스로 명령을 내려놓고 솔선하여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무리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라면서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베려고 했다. 그때 조조의 의중을 파악한 부하가 달려들어 만류하며 말했다.
“춘추에 이르기를 법도 존귀한 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승상께서는 대군을 이끄시는 존귀한 몸이신데 어찌하여 벌을 받으려 하십니까?”
이에 조조는 한동안을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춘추에 그런 말이 있다면 나는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내 머리칼로 목을 대신하리라!”
말을 마친 조조는 칼을 들어 머리카락을 자른 후 각 군영에 그 머리칼을 돌리며 이렇게 전하도록 했다.
“승상께서 보리를 밟으셨기에 이와 같이 머리칼을 잘라 목을 대신하였다”
그러자 장졸들이 모골이 송연하여 누구도 감히 군령을 어기지 못하니 군대의 기율이 바로 섰다.
조조는 자신의 머리칼을 잘라 바닥에 던짐으로써 스스로에게 곤형(髡刑)을 내렸음을 보여준 것이다. 곤형이란 ‘머리카락을 자르는 형벌’로 육형(肉刑)의 하나였다.
사실 옛날에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며 머리카락을 훼손하는 것을 불효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비록 머리카락을 잘랐지만 목을 벤 것과 진배없는 매서운 형벌이었던 것이다.
또 ‘사이후이(死而後已)’라는 성어도 생각난다.
역시 삼국지에 나오는 말로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위(魏)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한 말로 이렇게 전하고 있다.
제갈공명은 촉한(蜀漢) 유비(劉備)의 삼고초려(三顧焦廬)에 감명을 받고 그의 천하경략을 돕기 위해 온 힘을 쏟기로 결심했고, 이런 결심은 유비가 죽고 그의 아들 유선(劉禪)에게도 마찬가지로 충의를 다했다.
출사표 후편에서 제갈공명은 이렇게 말했다.
“한(漢)나라의 위업은 익주 같은 변경에 안주할 수가 없다. 반드시 위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하고 왕업을 중원에 확립해야 한다.
신은 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죽고 나서야 그만둔다는 사이후이(死而後已) 각오로 출정한다’라고.
결국 사이후이(死而後已)는 제갈공명이 왕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전력투구한다는 데서 유래했듯이 ‘어떤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동의어로 ‘폐이후이(斃而後已’라는 성어도 있다. 역시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고 힘쓴다’는 뜻이다.
다시 모발이식의 옥건 원장으로 돌아가자.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간이식과 모발이식은 의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모발은 형체가 있기 때문에 형체 그대로 살려야 한다. 간 이식을 수천 번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단 모발이 몸 밖으로 나오면 그 순간부터 죽어가기 때문에 하나하나 분리하는 과정과 어떻게 보관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아무에게나 맡길 일이 아니다.
탈모가 있는 사람에게는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목숨만큼 소중하다. 때문에 옥건 원장은 “병원도 머리카락을 절대로 가볍게 여길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또 그는 “환자의 마음을 내 것처럼 여겨야만 한다. 심파시(sympathy)를 동조(同調)라고 그리고 엠파시(empathy)를 공감(共感)으로 흔히들 부르지만 결코 ‘심파시’가 아닌 ‘엠파시’로 환자를 대우하는 게 신념이다”라고 외친다.
너무나 어수선한 대선 정국.
왜 ‘노력과 정성을 다하여 나랏일에 힘쓴다’는 의미의 ‘국궁진췌(鞠躬盡瘁)’과 공자의 제자 증자가 날마다 스스로를 세 가지로 반성했다는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이 떠오를까?
대선 주자 중 누구는 ‘신성대길(新星大吉)’하고 또 누구는 ‘욕비불기(慾飛不起)’하며 ‘영웅실쟁(英雄失爭)’하다는 데… 아무튼 말도 많고 탈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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