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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피플]-이용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총감독

“스켈레톤·봅슬레이 메달성과는 땀의 결실이죠”

썰매종목 1호 국가대표 선수…“윤성빈·봅슬레이팀 활약에 감격·오열”

김민아기자(jkimmina@skyedaily.com)

기사입력 2018-03-08 0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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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썰매 종목 국가대표 출신인 이용(사진)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은 우리나라를 썰매 강국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지금 우리나라는 썰매 종목의 강국으로 가는 문턱에 서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스포츠 인프라 구축이라고 생각하죠. 평창에 있는 경기장을 잘 유지해서 매년 열리는 세계 선수권, 월드컵 등 국제 대회를 유치하는데 활용해야 하죠. 동계 스포츠 저변이 확대 되면 우리나라는 반드시 썰매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예요”
 
이용(41·남)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은 얼마 전 막을 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스켈레톤 금메달, 봅슬레이 4인승 은메달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루지 종목으로 썰매 종목과 첫 인연을 맺은 이후 스켈레톤, 봅슬레이 국가대표로 나가노, 벤쿠버 올림픽에 출전한 이력을 지녔다. 2011년부터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씨름·레슬링 하던 시골 소년…썰매 종목 매력에 빠져 선수 생활 시작
 
전라북도 전주 출신인 이 감독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씨름을 하면서 스포츠에 발을 들이게 됐다. 전국대회 3관왕을 기록하는 등 씨름 유망주로 꼽혔지만 올림픽 출전을 바라는 아버지의 열망에 따라 고등학교 1학년때 레슬링으로 전향했다.
 
“올림픽의 꿈을 안고 레슬링을 시작했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어요. 씨름은 1분 안에 결판이 났지만 레슬링은 길면 5분 동안 엎치락뒤치락 해야 하기 때문에 적응하기가 어려웠죠. 운동을 그만둬야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감독님이 제게 ‘루지라는 동계 종목이 있으니 선발전을 나가보라’고 제안했죠”
 
립스틱을 말하는 ‘루주’로 오인할 만큼 국내에는 생소한 종목이던 루지를 이 감독도 이때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 감독은 3명을 선발하는 국가대표 테스트에서 3등에 오르며 루지 국가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처음 해 본 루지는 재밌었어요. 국내에서 훈련할 곳이 없어 길바닥에서 바퀴달린 것을 타고 연습했죠. 레슬링이나 씨름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하지만 캐나다로 첫 해외전지훈련을 갔다 온 후에 생각이 바뀌었죠. 처음으로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면서 너무 무서웠어요. 하기 싫을 정도였죠. 손가락이 찢어져 10바늘 이상 꿰매는 등 부상도 심했어요.”
 
공포심 때문에 루지를 포기하고 싶었던 이 감독을 붙잡은 것은 엄격한 성격의 아버지였다. 이 감독의 아버지는 ‘여기서 그만두면 앞으로 뭘 할 수 있겠느냐. 끝까지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연습을 거듭하면서 어느 정도 코스에 익숙해지고 두려움도 없앴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시간을 단축해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다가왔다. 
  
▲ 이용(사진) 감독은 어린 시절에는 씨름, 고등학교 때부터는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다. 한창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던 중 레슬링 팀 감독님의 제안으로 루지 종목을 처음 접했다. ⓒ스카이데일리
 
당시만 해도 썰매 종목에 대한 국민적 인식은 매우 낮았다. 자연히 지원 수준도 턱없이 부족했다. 훈련 시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국내에 연습장이 없어 해외 전지훈련을 가지 않으면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탈 수 조차 없었다.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도 없어서 사실상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훈련을 이어나갔다.
 
“부상을 항상 달고 살았어요. 이마가 찢어지고, 발가락, 발뒤꿈치 등도 다치기 일쑤였죠. 하지만 어렵사리 전지훈련이라도 가게 되면 부상을 핑계로 쉴 수 조차 없었어요. 눈썹이 찢어져 열다섯 바늘을 꿰맸지만 붕대를 감은 채 헬멧을 쓰고 훈련을 계속할 정도였죠. 루지는 여러 국제 대회를 통해 획득한 포인트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시스템이에요. 아프다고 시합을 포기하면 올림픽을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부상 중에도 대회를 치뤘어요.”
 
체계적 선수육성 위해 지도자의 길 선택…열악한 장비 탓에 외국인 선수 비웃음 굴욕도
 
이 감독은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특전사 부사관으로 군 복무를 한 후 스켈레톤 선수로 전향했다. 후배 루지 선수들이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응 훈련이 수월한 스켈레톤을 택한 것이다. 그는 스켈레톤 선수로 전향한지 1년여 만인 2005년 유니버시아 대회에서 20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했다.
 
이 감독이 지도자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그는 국제 대회를 출전하면서 만난 여러 외국인 선수들이 자국의 지원 하에 훈련을 받고 경기에 출전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컸다. 현재 우리나라 썰매 종목 선수 육성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수 때 대회를 나가면서 ‘내가 지도자가 되면 이런 것은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장비, 훈련 시스템, 음식 등 부족한 것도 너무 많았죠”
 
벤쿠버 올림픽 직후 은퇴한 이 감독은 휘문중·고등학교 봅슬레이·스켈레톤팀 초대 감독을 맡았다. 이듬해 1월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의 제안을 받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처음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받고 많이 망설였어요. 제안을 받기 전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더욱 그랬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성연택 사무국장님이 연락을 해 왔어요. ‘너라면 가능 하겠다’는 말을 듣고 감독직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어요.”
 
▲ 이용(왼쪽) 감독은 윤성빈 스켈레톤 선수가 금메달을 따던 당시 그동안의 힘든 순간이 기억나 오열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2022년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제2의 평창’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진은 윤성빈 선수가 이용 감독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는 모습 [사진=올댓스포츠 인스타그램 캡처]
 
이 감독의 지도자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훈련 장비를 마련하는 것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 감독은 무작정 전지훈련을 떠난 후 현지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장비를 빌리는 등 힘겹게 선수들을 이끌어 나갔다.
 
“사람들이 많이 비웃었어요. ‘올림픽을 유치한 국가가 저런 썰매를 타느냐’고 많이 웃었죠. 2011년에 치른 경기에서 1997년에 타던 썰매를 사용했죠. 사실 당시에는 웃음의 의미도 몰랐어요. 한참 지나서야 웃은 이유를 알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반박을 못했어요. 열악한 것이 사실이었으니까요. 묵묵히 하나하나 해나가자고 마음을 먹었죠. 하나, 둘 해 나가다 보니 셋, 넷이 보이고 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니 마침내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죠”
 
“평창 경기장 사후관리·활용 중요…·저변확대 지속되면 썰매강국 될 것”
 
소치 올림픽을 앞둔 2011년 대표팀 감독에 올랐지만 이 감독이 처음부터 노린 것은 소치올림픽이 아니었다. 그는 선수들과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훈련을 해나갔다.
 
“7년을 바라보며 강도 높은 훈련을 해 나갔어요.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죠. 대부분의 선수들이 고된 훈련을 힘들어하면서도 성적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죠”
 
평창 동계올림픽은 국내에서 열리는 첫 동계올림픽이라는 점에서 그가 느끼는 부담감은 상당했다. 그는 부담감을 떨치기 위해 금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목표로 잡았다. 부담 대신 목표를 보겠다는 의미에서였다. 선수들 역시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투지를 불태웠다. 그래서인지 봅슬레이 2인승 경기를 이틀 앞두고는 부담감 때문에 대표님 내에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리면서도 메달에 대한 확신은 항상 있었어요. 윤성빈 선수 같은 경우는 총 4번의 경기를 치루며 모두 1등을 거머쥐었지만 금메달 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4차 때였죠. 마의 코스인 9번을 지나는 순간 이미 눈물이 쏟아졌어요”
 
“봅슬레이 4인승 은메달은 더 감회가 새로웠죠. 2인승 메달 획득에 좌절된 후 원윤종 선수가 숙소에서 통곡을 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에요. 은메달이 선수들에게 보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리까지 지르면서 울었어요”
 
이 감독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일회성에 그치는 깜짝 성적이 아니라 매 동계 올림픽 마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썰매 강국으로 키워내고 싶은 목표 때문이다. 그는 진정한 썰매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경기장 사후 관리와 선수 저변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22년에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제2의 평창’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나라와 시차도 같아 평창과 똑같은 시스템으로 갈 수 있는 환경이죠. 중국을 제외하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지만 아직까진 우리나라가 일본에 앞서 있어서 평창 이상의 성적도 가능하죠. 베이징을 목표로 꾸준히 앞으로 전진 할 생각이에요”
 
[김민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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