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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피플]-신현웅 독도시킴이 세계연합 총재

“韓·美 양국 대통령과 교감하는 독도지킴이죠”

워싱턴 총격사건 계기로 시민운동 첫 발…일본 정치공세 맞서 독도 지켜내

길해성기자(hsgil@skyedaily.com)

기사입력 2018-02-09 01: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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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독도지킴이 세계연합 신현웅(75) 총재는 전 세계적인 일본의 정치적 공세 속에서 독도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외에도 미국 내 거주하는 한인들의 권익을 위해서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오래전부터 일본은 독도는 자기 땅이라고 전 세계를 상대로 해서 모든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어떻습니까. 조용한 외교나 무대응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독도를 지키고 있으니까 여론화 시키면 오히려 더 소문이 나는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가만히 있자는 거죠. 하지만 그건 분명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재)독도지킴이 세계연합 신현웅(75) 총재는 독도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신 총재는 현재 일본의 정치적 공세로부터 독도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를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신 총재는 그동안 미국 사회에서 한인 동포들의 권익을 위해 시민운동가로도 활동해 왔다. 지금도 미국 워싱턴에서 백악관과 미연방 국회, 공화당, UN본부 등과 교류하며 한·미 관계 개선에 힘쓰고 있다.
 
특히 그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참여해 당선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미국 내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꼽힌다. 현재 ‘재미 한국계 시민연맹 전국의장’, ‘한-미 FTA 전국후원회 회장’, ‘美, 아태공화당 한국국가 전국의장’, ‘국제외교안보포럼 해외협력이사’ 등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다.
 
한인들 피해 입힌 총격사건에 충격…사회변화 위해 시민운동 참여
 
신 총재는 미국에 처음 발 디딜 때만 해도 유학생이자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한양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자녀들의 권유로 미국에 정착하게 됐다. 하지만 자식들을 키우면서 학업을 이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그는 전공을 살려 건설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설회사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건축법률이 까다로운 워싱턴에서 개인주택 건축부터 시작해 차츰 이름을 알렸습니다. 업계에서도 인정 받으니 군부대 막사, 트레이닝센터 등 많은 수주기회가 생겼습니다. 이후 한국대사관을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이집트, 오스트리아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대사관도 직접 지었습니다”
 
건설회사 사장으로 성공한 신 총재가 미국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25년 전 한인 사회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들 때문이었다. 1992~1993년 LA폭동 이후 미국에서는 전 지역 걸쳐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특히 한인들이 많이 살던 워싱턴은 총격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한 해에만 27명이 총을 맞아 13명이 사망했고 7명이 반신불수가 됐다.
 
“총격사건으로 인해 장례식을 치른 후에도 일주일 만에 가게 문을 여는 동포들을 목격하니 내가 직접 당한 것 같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 주류사회에는 범죄 추방에 대해 한마디 얘기해주는 사람도 건의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시장실, 경찰서 등을 찾아가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누구 하나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신 총재는 한인사회뿐 아니라 미국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한 총격사건을 여론화시키기로 결심했다. 피해자의 시체를 담은 관을 들고 가게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당시 현장에 공화당, 시의회 의원, 국회의원, 흑인, 한인 등 220여명이 모이면서 사건이 공론화 됐다. 워싱턴에 있는 TV방송뿐만 아니라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등도 한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기사화하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신 총재는 1992년 미국 워싱턴에서 일어난 총격사건 때문에 많은 한인들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시민인권운동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한인안전대책위원회가 발족 되는 등 미국 내 한인들의 인권도 향상됐다. ⓒ스카이데일리
 
“만장기를 만들고 차량 450대를 동원해 6개월 동안 장례행렬을 이어갔습니다. 국회의사당, 시청, 백악관 등에서 10분 동안 침묵시위도 했습니다. 사안이 점차 확대되니 시장도 장례식에 참여했고 조사를 약속했습니다. 경찰국장도 함께 참여하면서 150명이 장례행렬을 에스코트하는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이후 워싱턴 경찰국과 함께 한미안전대책위원회를 발족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시민인권 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신 총재는 시민들의 추대로 1998년에 재미한국계 시민연맹 전국의장이 됐다. 시민연맹은 미국 내 한국계 시민권자들이 주축이 돼 설립된 단체다. 처음 2개주(버지니아, 메릴렌드)에 불과했던 시민연맹은 26개 주까지 확산됐다. 현재 시민연맹에 소속된 한인의 숫자는 약 85만명 정도 된다.
 
일본의 독도 침탈 대규모 정치공세 맞서 독도지킴이 세계연합 출범
 
미국에서 한인 시민운동을 하던 그가 독도지킴이 세계연합의 총재가 된 계기는 2008년 한인들의 우연한 제보로 인해서다. 당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연방 국회도서관의 도서관 검색어에는 ‘DOKDO’(독도)가 없어지고 ‘리앙쿠르록스(미국 내에서 독도를 지칭할 때 쓰는 단어)’만 나오도록 시스템이 변경됐다. 독도 주변 바다명칭은 대부분 ‘동해’(East Sea)가 아닌 ‘일본해’(Sea of Japan)로만 표기됐다. 그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미연방 국회도서관은 정보량이 가장 많은 곳입니다. 그런데 당시 국회도서관에서 일하던 사서책임들이 한국인이었는데 그들에게 독도에 대한 자료를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일본 측의 부탁으로 도서관 검색어에서 독도라는 명칭이 빠진 것입니다. 이후 시민연맹에서 항의서를 만들어 각주 국회의원들에게 통보했고 이들이 도서관 관장에게 항의를 해줬습니다”
 
“26개주의 시민연맹 소속 한인들도 국회 도서관에 팩스·이메일 등을 보내며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국회도서관으로부터 변경을 취소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태식 미국대사관으로부터 직접 고맙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145만명의 전 세계 미군들이 사용하는 작전 지도에 우리나라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될 뻔 한 일도 있었다. 신 총재는 백악관 회의에 참여한 이태식 미국대사관에게 이와 관련된 내용을 듣게 된다. 그는 즉각 백악관에 표기 변경을 해달라는 항의 성명서를 보냈다.
 
“앞서 미연방 국회도서관 일도 있었고 때 마침 당시 부시 대통령이 10일 후 한국에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광우병 파동으로 시끄러울 때라 부시 대통령 역시 명분이 필요했을 겁니다. 부시 대통령의 지시로 명칭은 이틀 만에 ‘Sea of Korea’로 변경됐습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일본이 한국이 모르는 사이 전 세계 정부, 도서관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결국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각 나라의 시민권자들이 그 나라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캠페인을 활성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재미 시민위원회 내 특별위원회에서만 독도문제를 다루던 그가 독도지킴이 세계연합을 출범시키는 계기가 됐다. 신 총재에 따르면 전 세계 지도책에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고 표기한 경우는 극소수다. 불과 5년 전만해도 0.8%~1.8% 밖에 되지 않았다. 일본이 지도책을 만들어서 세계에 뿌리고 교육을 시킨 결과였다.
 
2016년 미국대선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인연…한·미 가교역할 할 인물로 꼽혀
 
신 총재는 2016년 미국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함께 일한 전력을 갖고 있다. 그는 대통령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선거활동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당시만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여론이 좋지 않아 중앙당(공화당)의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 신 총재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2016년 대선당시 선거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 후보의 선거활동을 도왔다.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유기적인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그는 한·미 외교의 가교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당시 미국에서는 누구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중앙당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 공화당 의원들도 자신들의 지역에 가면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 와중에 트럼프 선거캠프에서 저를 불렀습니다. 美 아태공화당 한국국가 대표로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트럼프타워 26층 선거사무실에서 트럼프를 만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열린 회의에서 각국의 아시아 국가 대표들에게 선거활동 지원을 요청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선거활동을 도왔던 이들의 영향력도 확대됐다. 신 총재는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한·미 관계의 가교 역할을 해 낼 수 있는 인물로 꼽히는 배경이다.
 
“어려울 때 같이 한 부분에 대해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한국에서도 연락이 많이 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미국에서 재미교포 간담회 때 저를 불렀습니다.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면담을 했습니다”
 
“당시 제안한 것이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에 참여했던 미국 화물선 레인 빅토리호의 매입이었습니다. 레인 빅토리호를 거제시로 예인해 전시하면 한·미 동맹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청소년에게 좋은 교육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실제로 열흘 후 한국 정부는 레인 빅토리호를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이 배는 2015년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나와 많은 미주 한인들과 한국전쟁 참전노병들을 눈물 흘리게 하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신 총재는 한·미 외교관계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한편, 일본의 독도 공세를 막아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인들에게 독도 문제는 언제나 최대 이슈로 꼽힙니다. 일본은 전 세계에 독도를 다케시마로 고치기 위한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각국의 한인들과 힘을 합쳐 이를 저지하는 이른바 ‘모멘텀’(momentum)을 형성하고 싶습니다. 이는 ‘제2의 민주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도 문제가 해결이 되면 다음에는 통일 운동을 해서 동북아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입니다”
 
[길해성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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