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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수 완주우체국장
이승수씨(56, 완주우체국장)는 우체국장으로 그리고 주말엔 강사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공무원 36년차인 이 국장은 영화평론가로 또 심리치료 전문가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암을 이긴 시골 우체국장’으로 인간승리의 주인공인 이 국장은 영화 ‘약효’에 눈을 떴다가 내친 김에 평론가까지 됐다.
이 국장은 요즘 50대 중년은 ‘핫 에이지(Hot Age)’라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100세 인생을 제대로 설계하는 길”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2004년 ‘위암’선고…“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1976년 임실 우체국에서 우정공무원의 첫발을 내딛은 우체부 아저씨 이승수 국장은 1991년 전북 체신청 감사관실을 거쳐 2002년 행정사무관으로 임관했다.
2009년에는 진안 우체국장에 올랐고 완주 우체국장은 올 10월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이 국장은 1986년 장수 우체국 우편창구에서 일하던 시절 전북체신청(현 전북지방우정청) 청장이 직접 스카웃 해 수행비서 역할을 맡길 정도로 인재다. 그는 “9급 임용 10년 만에 7급으로 승진했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파격 인사였다. 주위로부터 부러움과 시샘을 동시에 받았다”고 겸연스레 회상했다.
그래서였을까? 본부 업무보고와 국정감사 총괄 등 체신청의 중요한 업무는 모두 이 국장의 몫이었다. 이후 새로 부임하는 청장들은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이 국장부터 찾았다고 한다.
이런 인재였던 탓에 이 국장은 2002년 전북관내 우정공무원 3600명 중 30명에게만 허락되는 영광의 자리, 사무관에 올라 명실상부한 ‘우체국의 특급 에이스(Ace)’ 역할을 했다.
그러나 8년전인 2004년, 정년퇴임이 10년 넘게 남은 이 국장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당시 마흔여덟 나이에 위암선고를 받은 것이다. 감기 한번 앓아본 적 없는 이 국장은 공무원 생활 28년 만에 처음으로 병가를 신청하고 수술을 받았다.
“전북대병원에서 위 절제 수술 후, 전남 여수요양병원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마치 ‘꽃의 터널’ 같았어요. 그렇게 예쁜 단풍 길을 달리는데도 서러워서 눈물밖에 안 나오더군요.”
이 국장은 요양병원을 “무서운 곳이다”고 회고했다. 그는 “몸은 쉴 수 있을지언정 마음을 기댈 곳은 결코 아니었다. ‘죽음의 그림자’를 풍기던 말기(末期) 암 환자들이 며칠 뒤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고 말했다.
▲ 전국에서 몰려오는 강연요청 중에서도 이승수 국장은 암병원 강연을 1순위로 하고 있다. <사진=이승수 국장 제공>
하지만 이 국장은 우연히 웃음치료법 강의 포스터를 보면서 인생이 바뀌게 됐다.
“크게, 길게, 온몸으로 웃으라는 강사의 말에 한참을 억지로 웃었습니다. 미친놈이 따로 없군 하면서요. 투덜대며 병실로 돌아왔지만 어느새 저는 거울 앞에서 입 꼬리를 올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죠. 이후 틈만 나면 마음을 다잡고 웃음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우습게 봤던 웃음치료의 효과를 톡톡히 본 이 국장은 입원 6개월 만에 퇴원해 사무실로 복귀한다.
웃음치료· 영화치료…‘울면 지는 거야’ 출간까지
사무실로 복귀한 이 국장은 웃음치료를 제대로 배우고자 마음을 먹었다. ‘웃음치료 과정’을 개설한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에 등록했는데, 이곳은 서울에 있는 학교였다.
“2년간 일주일에 두 번씩 전주에서 서울의 캠퍼스에 꼬박꼬박 통학했습니다. 이리저리 왕복 10시간이 걸렸지만 배움의 재미에 한번 빠지니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웃음치료 공부는 영화치료라는 새로운 분야에까지 이어졌다. 대학원 수업시간에 우연히 영화치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국장은 “이후 영화 1000편을 보고나면 감이 올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매일 밤마다 집에서 비디오를 끼고 살았다”고 말했다.
▲ 이승수 국장(가운데)과 함께 일하는 완주우체국 직원들.
대학원 졸업 후에는 심영섭 영화평론가가 운영하는 ‘영상응용연구소’에서 영화치료 전문가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또 전북도민일보 독자광장 란에 영화평을 투고하기도 했다.
이 국장의 투박하지만 신선한 글을 본 전북도민일보는 이 국장에게 연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평범한 우체국장이 웃음과 영화치료를 배우게 되고 이제 영화 평론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시골 우체국장의 영화에세이’는 2010년 7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총 68편 연재됐다. 또 이 국장은 올해 봄 전주 국제영화제 개막 당일에 개막작 ‘시스터(Sister)’의 공식 리뷰를 지역 신문에 싣는 영광까지 거머쥐게 된다.
올 4월에는 신문에 연재한 영화에세이를 묶어 ‘울면 지는 거야’라는 제목으로 펴내고, 영화제 비공식 행사로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 치료 특강을 열기도 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문, 활짝 열어 놓았다”
“56편의 영화를 골라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아픈 분들이) 책을 통해 자기조력에 다소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읽으시고 또 영화를 본다면 부족한 필력에 대한 보완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웃음치료와 영화 강의에 재주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강연 요청이 몰려든다는 이 국장에게 당연 암 관련 병원의 특강 요청은 ‘1순위’다. 원광대병원, 충남대병원, 서울대병원 등이 주요 무대다.
▲ 이승수 국장은 신문에 기고한 영화에세이를 모아 책을 펴냇다.
뿐만 아니라 지식경제부를 비롯해 행정안전부, 삼성전자, 농협, 전북은행, 우석대 평생교육원 등 주말마다 전국 기업체와 주요 기관 등을 돌며 특강을 하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웃음과 영화로 사람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줄 때 제일 보람을 느낍니다. 영화는 문학, 음악, 미술 등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죠. 그래서 스토리나 등장인물의 성격, 심리뿐만 아니라 스크린에 나타난 장면 하나하나, 배경음악 등도 감성자의 심리를 자극합니다. 영화가 총체적 감각 체험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극들은 영화 감상자의 표면의식은 물론 내면의식까지 침잠(沈潛)하게 합니다. 그래서 무의식에 어떤 변화를 줍니다”
영화에세이 ‘울면 지는 거야’로 ‘세상과 소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이 국장은 이 문을 통해 많은 이들이 내면에 억압된 자기를 일깨워 세상을 향해 활달하게 나서며 환하게 미소 짓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취재/글]=김종우(자유기고가, 스카이데일리 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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