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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가 벼랑 끝에서 졸지에 기사회생을 했다. 그것도 독일이라는 최고의 대어(大漁)를 잡으면서 일거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이자 세계 랭킹 1위인 전차 군단 독일을 역사상 처음으로 16강 진출을 저지한 것이다.
그것도 독일을 조 4위로 밀어내면서 사상최대의 치욕을 안겼다. 지구촌을 들끓게 하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는 이처럼 이변이 감초처럼 따라붙기 마련이다. 5% 이하에 불과한 확률이 현실화됐다는 점에서 그 충격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 세계 축구에도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이 더 이상 없고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지난 두 게임과는 달리 3전 전패로 귀국할 수 없다는 태극전사들의 투혼들이 유난히 더 돋보였다. 마치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걸은 것 같기도 했다.
반면 독일은 상대를 다소 얕잡아 보다가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지는 현상이 역력하게 나타났다. 급기야 지나친 공세를 펴다가 추가 시간에 역습으로 두 골을 허용하면서 속절없이 허물어진 것이다. 운도 독일에게 따르지 않았지만 우리 골키퍼의 잇따른 선방이 그들의 의지를 무력화시켰다.
태극전사들의 투지와 그들이 만들어낸 쾌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보여준 축구 행정의 문제점과 무능함이 가려질 수는 없다. 세계 축구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는 안일함과 소통 부재 등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최강 독일을 꺾었다고 모든 잘못이 면죄되는 것이 아니다.
선수 기량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선수들도 데체로 인정한다. 문제는 체력 부족과 우리 체질에 맞는 전술의 부재이다. 기본적으로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술 개발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홈그라운드의 이점도 있었지만 2002년 대표 팀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있었기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볼 점유율은 낮지만 우리 선수들이 상대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뛴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성 없는 축구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본 축구가 우리보다 FIFA 랭킹이 높고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은 그들에게 적합한 전술의 축구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혁신 성장’과 관련한 지난 과정을 돌아보고 향후 방향을 점검하는 대통령 주재 회의가 당일 무산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각 부처들의 성과가 지지부진하고 이 정도의 대책으로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역대 모든 정권들이 규제 혁파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하나 같이 실패로 끝난 이유는 의지가 철저하지 못하고, 지식과 노하우가 부족한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5년 단임 정부의 특성 상 규제를 틀어쥐고 있는 눈공(늘 공무원)을 집권 초기부터 일관적으로 세게 밀어 붙이지 않으면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고 만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부처 수장에 대부분 캠프 출신이나 코드가 같은 인사인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의례적으로 자리를 차지한다. 어공이 현란한(?) 늘공을 움직여 정책적 목적을 달성해 보고자 하는 좋은 의지가 포함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공들의 전문지식이나 경험이 턱없이 부족해 늘공이 어공을 무시하거나 적당히 시간만 넘기려는 경우를 쉽지 않게 목격한다.
‘혁신성장’이 뿌리를 내리려면 우선 반(反)시장·기업 기조에서 벗어나야
원천적으로 눈공은 규제를 갖고 있어야 힘 있는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고집에 집착한다. 특히 핵심 규제는 부처의 명예와 본인의 직을 걸고서라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규제들이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부처에 얽혀져 만연하고 있는 바로 부처 이기주의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선진 민주주의를 하는 모든 나라들이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도 공무원의 해묵은 관행과 무사안일을 타파하기 위해 마침내 이 카드를 꺼내들고 있기도 하다. 하물며 지금 정부의 기본적 시각을 보면 시장은 불공정하고, 기업은 탐욕적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관련 부처들이 이를 시정하기 위해 진력을 쏟고 있다. 여기에 가 있는 어공 수장들의 면면을 보면 개혁 지향적 인사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인사들이다. 자연스럽게 설익은 규제는 더 생겨나고, 시간이 갈수록 시장과 기업은 정부의 연이은 새로운 정책에 멍이 든다. 설상가상으로 공무원을 더 뽑는다고 하니 사람이 늘어나면 일이 생겨나야 하고, 결과적으로 규제 양산 쪽으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새로운 정부도 출범한 지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지난 지방·보궐선거의 승리로 정부와 집권 야당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하지만 경제가 나빠지면 여론이 일시에 싸늘해지기 마련이며, 한 때의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날 여지도 많다. 늘공을 탓하기보다 어공이 더 전문적이고 실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전에 ‘혁신주도’ 성장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필연적이다. 시장을 의심하고, 기업을 부도덕적으로 몰아가는 상황 하에서는 절대 혁신이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규제 혁파에 가장 목이 마른 쪽은 바로 기업들이다.
기업이 기(氣)를 펴지 못하고 움츠려들기만 하는 상황 하에서 혁신이라는 구호가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붐에 편승해 국가 간의 혁신 경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 경쟁의 전면에는 선장(船長) 역할을 하는 미국의 트럼프·일본의 아베·프랑스의 마크롱·중국의 시진핑 등의 국가 지도자들이 즐비하다. 월드컵은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우리 축구는 끝났다. 또 다시 냄비근성에 빠질까 우려된다. 한국 축구도, 그리고 규제 개혁도 제대로 한번 시동이 걸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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