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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량(62) 신안군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신안의 환경과 식재료에 대해 깊은 애정을 보이면서 ”같은 친환경 제품이라도 ‘신안 것’은 A+ 세 개는 더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안이란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나온 지역 물산에 대한 그의 사랑은 차고 넘쳤다. 다 차려 놓은 밥상을 앞에 두고 30분간 속으로 침만 삼키면서 ‘음식고문’(?)을 당해야 했을 정도였으니.
지난 16일 박 군수와 식사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침나절 서둘러 광주행 비행기를 탔다. 이륙 전 공항에서는 소믈리에 나이프(샴페인 오프너)로 인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와인세트를 들고 가는 과정에서 소믈리에 나이프가 들어 있었는데 보안검색대에서 위험물로 간주돼 반입을 저지당했다. 소믈리에 나이프에는 와인의 밀봉된 캡을 제거하기 위해 칼날처럼 생긴 블레이드가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신분증 확인, 보안검색대 등 들어온 길을 되돌아가 볼펜 크기의 소믈리에 나이프를 수화물로 부치고 나서야 출발 탑승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신분증명, 보안검색을 한 차례 더 받은 것은 물론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행 중 한사람은 손톱깎이에 달린 손톱 줄이 위험하단 이유로 제지당했는데 아예 날을 부러트려서 버리고 들어 왔다고 했다.
소믈리에 나이프 에피소드를 몇 마디 나누는 동안 비행기는 벌써 광주공항에 내려앉고 있었다. 공항에는 유영업 신안건정 대표가 마중 나와 있었다. 점심 식사 장소는 신안이 아닌 목포에 있는 한 일식집이다. 민어가 제철인지라 회 맛과 신안군이 의욕적으로 마케팅하고 있는 지역특산품인 건정민어 찜을 쪄 내와야 했기 때문이다.
정통 내무행정관료 출신 신안서만 무소속으로 군수 3회 당선
이번 식사 손님인 박 군수는 정통 내무관료 출신이다. 90년대 후반 강운태, 조해녕 두 내무부장관과 김정길 행자부장관 비서관을 지냈다. 행자부 자치운영과장과 행정제도과장 등 지방자치 행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요직을 거쳐 경기도 하남시 행정부시장과 서기관을 2000년대 중반까지 지내는 등 행정전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06년 전 신안군수의 불명예 퇴진으로 치러진 10‧25 재보궐 선거에서 이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승리했다. 본선거가 다섯 달 전인 5‧31이었으니 4기 군정을 거의 도맡은 셈이다. 이어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나서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2014년 민주당에 입당 세 번째 선거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암 투병 중인 부인 간병을 위해 선거를 포기했다. 민주당은 이를 문제 삼아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박 군수를 공천하지 않았다. 심지어 박 군수를 배제하기 위해 경선 컷오프 자격심사 조항을 원 포인트 개정해 아예 경선 참여를 막았다고 한다.
군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박 군수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결국 3선에 성공했다. 이 지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성이지만 ‘민주당=당선’이라는 정치공학이 먹히지 않는 곳이다. 2002년부터 이번 지방선거까지 20년 동안 다섯 차례 군수선거에서 민주당이 무소속에게 전패한 독특한 선거지형을 가진 곳이다.
불사조 같은 그의 불패 전적 뒤에는 3선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의 조력이 컸다. 일본 오사카대 법학대학원 유학 뒷바라지에서부터 수많은 선거를 치르기까지 그림자처럼 헌신했고 그 내조가 지금의 박 군수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들었다는 게 주위 전언이다.
풍부한 신안 식재료 활용한 로컬 푸드 식당 관광자원화 열망
신안 지역은 수산자원 흑산홍어, 우럭, 병어, 전복, 간재미, 민어, 숭어 등이 많이 잡힌다. 갯벌과 내륙, 근해 양식 사업으로 뻘낙지, 왕새우, 김 등이 있다. 뻘이 다른 곳에 비해 부드럽고 미네랄이 풍부해 산낙지, 세발낙지 품질이 뛰어나다.
그러나 타지역에서 선점하는 바람에 무안뻘낙지, 목포세발낙지 같은 별명이 없다. 간재미축제로 간신히 마음을 다스렸지만 박 군수는 이를 여전히 아쉬워하고 있다. 식전 30분 동안 설명이 부족했는지 그는 식사 중에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북쪽지역 임자도에서는 민어 머리만 가지고 젓갈을 담갔는데 맛이 기가 막힙니다. 팔금도 한 식당에서는 숭어속젓을 먹어보라 내놓았는데 바다 생선에서 참기름 같이 고소한 맛이 납니다. 신안은 천일염의 주산지라서 기본적으로 손맛이 있습니다. 이 분들이 각 섬에서 식당 한 두 곳을 내서 관광객을 맞으면 좋겠단 생각입니다.”
신안은 물량이 전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식재료가 제법 많다. 마늘, 고추, 양파, 대파, 시금치(섬초) 등이 강세를 보이고 쌀, 압해배, 포도, 브로콜리, 석류, 무화과, 백년초 등이 뭍에서 나는 주요 농산물이다.
수산물로는 정약전의 ‘자산어보’와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홍어 중의 홍어’ 흑산홍어가 대표적이고 병어, 우럭, 대하, 전복, 돌돔, 농어, 뻘낙지, 새우젓과 감태 등 미네랄이 풍부한 각종 해조류가 난다. 무엇보다 신안서 나는 천일염은 세계적인 브랜드에 가장 가까이 있는 명품 소금이다.
박 군수는 “정부가 냉장, 냉동창고를 여유 있게 짓는 것을 도와주면, 예를 들어 물김은 첫물을 따서 사시사철 무치고 국 끓여 먹을 수 있고 별별 요리를 다 해먹을 수 있다”며 “지역이 살려면 음식이 살아나야 한다”고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식료 개발, 식당 개발을 강조했다.
유난히 포구를 좋아하는 시인 곽재구는 ‘전장포 아리랑’이란 시를 통해 수없이 뿌려진 서해의 섬들을 ‘눈물’이라고 표현했다. 전장포는 신안 북부권 대표섬인 임자도에 있는 항구다. 새우젓이 많이 나는 동네다. 박 군수는 맛있는 새우젓 덕에 이 동네가 330개 섬마을 아낙네들 음식 솜씨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엄지를 세웠다.
신안은 바다는 물론 육지와 갯벌에서 나는 식료 자원도 풍부해 거대한 식재료 보물창고가 세 개나 있는 셈이다. 이 지역에서는 민어, 통치(민어새끼), 우럭, 참숭어, 조기, 농어 등을 자연풍에 말려 건정을 만든다. 이 중에서 민어는 건정의 대표선수 격이다. 박 군수는 신안건정민어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한편 3선 박 군수의 꿈은 궁극적으로 1004개의 섬, 일명 천사의 섬 신안에서 나는 질 좋은 식재를 이용해 음식 메뉴를 개발하고 이를 관광객들에게 맛보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섬 마다 특색 있는 로컬푸드 식당을 만들고 싶어 한다.
신안 앞바다에 ‘눈물’이 아닌 ‘구슬’처럼 흩뿌려져 있는 섬들의 관광자원을 한데로 엮어 ‘보배’ 같은 명소를 만들겠단 의지다. 이는 결국 자립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지역을 만들겠다는 지역 발전의 청사진이다. 바쁜 군정 속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지역 발전 청사진을 보여준 박 군수께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 명사의 맛 ‘신안건정민어’ |
이번 호는 명사의 맛집이 아니라 ‘맛’이다. 신안은 수산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특히 어족자원이 남다르다.
박우량 신안군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근해 어족자원 종류의 40% 가량이 이곳에서 잡힌다.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갯벌 연안으로 몰려든 산란기 물고기를 대거 잡아 올릴 수 있는 지역이다.
산란 직전 어족들이 모이는 이유는 아마도 갯벌 영양일 것이라는 것이 박 군수의 추론이다. 물고기는 이때가 영양이 좋아서 살이 기름지고 가장 맛있을 때다.
신안지역은 전국 갯벌 면적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유네스코생물권보호지역, 국제람사르갯벌습지보호지역, 갯벌도립공원 등으로 지정된 청정해안을 자랑한다.
제주서부터 여수 앞바다를 지나 신안 앞바다까지 거친 바닷물 속을 헤치고 올라온 민어는 신안의 대표적 특산물이다. 어민들은 이를 생물로 팔다 남으면 해풍에 말려서 찜을 해먹거나 고추장에 박아서 장아찌로 사철 먹었다.
이렇게 말린 생선을 이 지역 토속어로 ‘건정’이라고 한다. 민어건정은 3년간 간수를 뺀 신안 천일염으로 염장을 하고 청정 햇볕과 바람에 맡겨 만든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민어를 ‘맛이 담담하고 좋다. 날것이나 익힌 것이나 모두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고 기록했다. 1938년 8월 6일 발행된 매일신보를 보면 ‘쇠고기 대신으로도 고만’이라는 제목으로 ‘말린 민어를 먹으면 사람에게 극히 몸을 보하는 보약이 된다’고 민어 요리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신안 증도에 가면 신안건정 하늘물고기를 만드는 영농조합이 있다. 하늘물고기란 표현은 높이 매달아 말린다는 의미다. 이곳에서 민어를 비롯해 참숭어, 농어, 우럭 등 건정제품을 만들어 낸다.
한편 신안군은 민어를 비롯해 건정과 로컬 푸드에 대한 신메뉴개발과 식단 개발, 지역관광 자원 개발 등을 통해 명소 만들기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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