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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가장 위대한 이름 어머니(上-워킹맘①)

사장님·회장님 된 슈퍼우먼의 성공방정식 결혼·출산

연 수십억 매출 기업 일군 주부들…“가족의 존재 자체가 성공 비결”

이철규기자(sicsicman@skyedaily.com)

기사입력 2018-10-01 00: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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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은 당당히 가족의 한축을 이루는 존재였으며 당당히 자신의 성을 가지고 살았다. 재산을 분배함에 있어서도 동등했으며 당당히 호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유교 사상이 채택되면서 여성은 단순히 남편의 배우자로, 가족을 아우르는 희생의 존재로만 인식돼 왔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남녀평등이 강조되고 여성인권도 크게 신장되면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재정립되고 있다. 과거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일과 가정을 모두 돌보는 사회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무게중심이 기울어 일에 치중하는 여성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기존에 없던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출산율 저하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인구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과 가정, 소위 말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여성들의 존재는 주변에 귀감이 되고 있다. 이른바 ‘슈퍼맘’이라 불리는 이들은 오히려 결혼과 출산이 일을 함에 있어 중요한 계기 혹은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아내이며 엄마인 이 특급 여성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정은 물론 회사를 꾸려가며 지금도 당당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고용평등의 달’을 맞아 금주 이슈포커스 주제로 ‘위대한 이름 어머니’를 선정하고 성공한 워킹맘의 성공과정과 자신만의 양육방식으로 훌륭한 자녀들을 키워낸 엄마들의 사연을 세 편에 걸쳐 보도한다.

▲ 현대바우알엔디 김미선(사진) 회장은 최근 대부도에 외식문화와 레저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원스텝 시스템 휴식센터 오션시티어시장을 만들었다. 김 회장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잘나가던 남편의 말레이시아 벌목 사업이 실패하며 사무실 관리비도 못내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
[특별취재팀=이철규 부장|조성우·강주현 기자] 최근 일과 가족이란 두 가지 테두리 안에서 모두 성공한 여성들의 존재가 주변에 귀감이 되고 있다. 일을 핑계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풍토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들의 사연은 가족이야 말로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확실한 무기라는 사실을 증명해보이기 때문이다.
 
소위 ‘슈퍼맘’이라 불리는 이들 중에서도 여성 CEO들은 가정과 회사, 두 공동체를 꾸려가며 사회의 주축으로 당당히 우뚝 선 위대한 여성들로 평가된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으로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그들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회장님이 된 평범한 주부…“50억 매출 기업 성공 비결은 소중한 가족 존재죠”
 
성공한 기업가들은 공통적으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결코 공짜로 이뤄지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얼마 전 대부도에 외식문화와 레저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원스텝 시스템 휴식센터 오션시티어시장을 만든 현대바우알엔디 김미선 회장(65세·여) 또한 같은 생각이다. 김 회장이 이끄는 현대바우알엔디는 아파트와 건물 건축 및 분양 업체로 연 매출 50억 규모를 자랑한다.
 
김 회장은 40대 초반까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이런 김 회장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잘나가던 남편의 말레이시아 벌목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정에 경제적 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처음엔 정말 망막하기만 했어요. 그래서 40대 초반에 부동산학원을 등록하고 부동산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리곤 겁도 없이 시화신도시로 달려가 그 지역에서 가장 중심지에 있는 상가를 계약했죠. 다소 겁도 났지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밀어붙인 결과였죠. 365일 일에만 몰두 했어요. 다만 일 때문에 아이들에게 소홀해질까 싶어 아침식사는 직접 차려주고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보내곤 했죠. 집과 일,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 김미선(사진) 회장에게도 전혀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위기는 북한과의 교류를 계기로 시작한 파주전원주택단지의 개발 실패였다. 부동산에 대한 정보는 전문가였지만 토목이나 시행 등 건축에 대한 부분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획된 기간보다 일정이 늦춰지고 남북관계가 소원해지면 결국 30억이 넘는 돈을 날리고 말았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김 회장은 일이 바쁠수록 더욱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 썼다.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학교 행사나 모임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학교로 발걸음을 돌렸다. 또한 학교 육성회장과 학부모들로 구성된 어머니회 회장을 맡으며 아이들을 뒷바라지 했다.
 
“그나마 아이들이 정말 잘 커줘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이젠 대기업의 회사원과 경찰이 돼 사회에서 맡은 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그건 아이들이 스스로 열심히 했고 잘 따라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이런 김 회장에게도 전혀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위기는 북한과의 교류를 계기로 시작한 파주전원주택단지 개발 실패였다. 부동산에 대한 정보는 밝았지만 토목이나 시행 등 건축에 대한 부분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맞닥뜨린 결과였다. 계획된 기간보다 일정이 늦춰지고 남북관계가 소원해지면 결국 30억이 넘는 돈을 날리고 말았다.
 
하지만 실패는 김 회장이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곤 자신이 가장 자신이 있는 사업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이후 경매로 공장 부지를 매입해 아파트를 짓고 펜션과 빌라 등을 지으며 차근차근 사업을 확장해갔다.
 
두 번째 위기는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든 최근에 일어났다. 매일 같이 대부도와 서울을 오가다 보니 피곤이 쌓여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김 회장은 신장이 터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 끝에 건강을 회복했다. 그 때 그를 지켜준 이들은 바로 가족이었다.
 
▲ 바이오토프를 운영하는 백연옥(사진) 대표이사는 갑작스런 남편의 병으로 ‘슈퍼맘’으로 변신한 케이스다. 그가 운영하는 바이오오토프는 연 매출 25억원 규모로 전국에 과학실험실습 기자재 소모품을 납품하는 업체다. ⓒ스카이데일리
           
“사고 후 이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일이 있은 후론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고 있죠. 회사도 가정을 돌보듯 경영하려고 해요. 직원들을 내 가족들이라 생각하고 대하니 일의 시너지가 더욱 올라갔죠. 제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온 비결은 특별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굳이 꼽자면 열정과 부지런함, 그리고 정직이죠. 하지만 최고의 비결은 가족이에요. 대부도 분양이 다 끝나면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에요. 가족들과 함께 여행도 가고요”
 
뇌졸중 쓰러진 남편 대신 기업경영 주도…“가족같은 회사 만드는 게 목표”
 
바이오토프를 운영하는 백연옥 대표이사(50세·여)는 갑작스런 남편의 병으로 인해 ‘슈퍼맘’으로 변신한 케이스다. 연 매출 22억원 규모의 바이오토프는 전국에 과학실험실습 기자재 소모품을 납품하는 업체다.
 
“IMF가 터지면서 남편은 서울에서 선배와 하던 의료기기 사업 회사를 접고 속초로 내려가 당구장을 운영했죠. 하지만 당구장 운영도 역시 쉽지 않았어요. 결국 빚을 지고 춘천으로 돌아가야 했죠. 춘천에서 다시 시작한 의료 및 과학기기 유통 사업이 나날이 성장했어요. 돌고 돌아 전공을 찾아간 것이 제대로 적중한 것이었죠”
 
백 대표 가족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11년 12월 말 남편이 사무실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백 대표가 회사 경영을 맡게 됐다. 가족 부양의 짐을 온전히 떠안게 된 백 대표는 온전히 가족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회사 일에 전념했다.
 
“다행히 제가 이전부터 남편의 사업을 도와주고 있어서 어느 정도 관련 업체나 납품 처를 알고 있었기에 처음 대하는 일은 아니었어요. 게다가 저도 2010년부터 과학실험실 기자재 및 실험실 토털서비스를 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죠”
 
 
▲ 백연옥(사진) 대표는 3년의 기간 동안 하루 12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 스케줄을 짰다. 그리고 집과 병원에서 잠을 자는 시간을 줄여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그런 부지런함과 노력 덕분인지 회사와 남편 모두 이젠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스카이데일리
 
“주로 사무실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이젠 남편을 대신해 대외적인 활동까지 해야 하니 쉽지 않았죠. 아이들과 남편까지 보살펴야 하니 망막하기만 했어요. 하지만 그런 부분들이 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를 악물었죠”
 
백 대표는 3년의 기간 동안 하루 12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 스케줄을 잤다. 그리고 집과 병원에서 잠을 자는 시간을 줄여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그런 부지런함과 노력 덕분인지 회사와 남편 모두 이젠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백 대표의 남편은 3년 가까운 시간동안 휴식을 취한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고 회사에 복귀했지만 세부적인 회사 운영은 여전히 백 대표가 맡고 있다.
 
“아침에 나와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회사로 출근해 일을 한 후, 다시 학교 퇴교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태워서 서울로 학원을 보냈어요. 그리곤 막차를 타고 12시가 넘어 내려온 아이를 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죠. 그리곤 남편 병실에서 쪽잠으로 하루를 보냈어요”
 
“가족의 관계는 노력을 하면 회복이 가능하지만 회사는 그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더군요. 그래서 가정보다 회사가 더 보듬기 힘든 존재인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목표를 세웠죠. 이젠 가족과 같은 회사, 아침에 일어나면 나가고 싶어지는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15분 단위로 시간 쪼개며 바쁜 생활 끝에 일·가정 모두 성공한 ‘슈퍼맘’ 등극  
                   
▲ 1년 만에 연 매출 10억을 기록하는 중소기업을 경영 중인 김은희 대표(사진)는 여자가 아닌 여장부에 가까운 인물이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위메이크디자인은 BI 및 CI 디자인 판촉물, 홈페이지 제작 등을 하는 업체다. ⓒ스카이데일리
 
1년 만에 연 매출 10억을 기록하는 중소기업을 일궈낸 김은희 대표(51세·여)는 스스로를 여자가 아닌 여장부라 부른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위메이크디자인은 연 매출 13억 규모의 BI 및 CI 디자인 제작, 판촉물·홈페이지 제작 등을 주력으로 하는 업체다.
 
단기간 내 성공을 이뤄낸 김 대표의 성과는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온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 김 대표는 이화미디어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교육기획 회사에 입사해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서울디지털대학교에 입학해 공부와 학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가정을 꾸리고 공부도 하며 직장을 다녀야 했기에 김 대표는 매 시간은 15분 단위로 쪼개 살았다. 그는 전철로 이동하며 쪽잠을 자고 회사에서 업무를 마친 후에는 곧바로 학업에 몰두했다. 김 대표는 서울디지털대학을 3년 만에 조기 졸업했을 뿐 아니라 12000명의 학생 중 전체수석을 차지했다.
 
대학을 졸업 후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에 들어갔다. 대학원에선 총학생회 기획국장을 맡아 1박 2일 행사를 주관하는가하면 동호회 활동에 열중했다. 그러던 중 후배의 제안으로 위메이크디자인이란 회사를 창업했다.
 
▲ 김은희(사진) 대표가 대학원까지 입학하자 남편은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김 대표는 더욱더 시간을 쪼개 일과 집안일을 병행했다. 주문이 오면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기도 하고 모임이 끝난 후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혼자 일을 마치기도 했다. ⓒ스카이데일리
 
창업 후 본격적으로 바깥일에 몰두하다 보니 남편이 약간의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그런 남편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 더욱 시간을 쪼개 일과 집안일을 병행했다. 주문이 오면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기도 하고 모임이 끝난 후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혼자 일을 마치기도 했다.
 
“창업 후 1년 동안 방바닥에 누워 잔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늦은 밤까지 책상에 앉아 상품을 기획하고 다음날의 스케줄을 조정하며 보냈어요. 부족한 잠은 출근이나 퇴근하며 전철에서 쪽잠으로 보충했죠. 한번은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다 보니 제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알고 보니 사람들이 모두 전철에 올라탄 거예요”
 
이런 부지런함 때문인지 김 대표의 회사는 창업 1년 만에 10억 매출이란 놀라운 성과를 이룩했다. 김 대표는 창업 후 지금까지 회사나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었던 이유로 의리와 부지런함을 꼽았다. 또한 고객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재 구매율을 높인 것이 주요했다고 강조했다.
 
“창업 초기엔 남편과 많이 싸웠어요. 때문에 더 일과 공부에 매달렸죠. 이젠 남편도 인정해주는 것 같아 고마워요. 이제는 오히려 더 회사를 키워보라고 응원까지 해주죠. 남편의 이런 말들이 상당한 응원이 되요. 이젠 그동안 많은 것을 양보해준 가정에 충실하려고 해요. 그래서 요즘에 매달 두 번씩 남편과 산행도 하고 남편의 조언에 귀 기울이며 살죠”
 
 
[이철규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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