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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는 반도체와 더불어 한국의 부품 산업을 이끌어오는 쌍두마차다. 중국은 이 두 가지 부문에 대해 한국을 따라잡으려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덤벼든다.
2025년 중국이 첨단 제조 강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으로 간주한다. 비록 시장에서 공급과잉이 되더라도 한국 기업을 우선 따라잡은 후 궁극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평정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이 절반의 성공을 거두면서 우리를 추격하는 중국의 기술 혹은 상품이 계속 사정권 안에 진입하고 있다.
반도체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디스플레이 부문에서는 격차를 거의 좁혔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중국 LCD의 역습이라고 한다. 궁여지책으로 우리 기업들은 OLED 패널 쪽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으나, 이 또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재 스마트폰에 사용하는 OLED 패널의 경우 삼성디스플레이가 전 세계 시장의 98%를, TV용 대형 OLED 패널은 LG디스플레이가 98%의 압도적 점유율을 갖고 있다. 아직은 조금 여유가 있지만 중국 업체들의 OLED 추격도 점진적으로 가시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해외 시장에서는 일본 주력상품의 경쟁력이 살아나면서 우리 상품의 샌드위치적 지형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근자에 우리 원화가 점진적으로 평가절상 되고 있는 것에 반해 일본 엔화 가치의 안정적 유지도 경쟁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일시적으로 엔화 강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아베노믹스가 시작한 2012년 말 이후 엔화는 무려 20% 이상 평가절하 되었다.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이 10% 하락하면 우리 수출이 4% 줄어든다고 한다.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중국마저 조선, 자동차, IT에 이어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주력산업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양상이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계획경제라는 툴을 통해 국가가 모든 것을 주도하면서 강한 승부수를 건다.
과거에는 일본의 품질·중국의 가격에 밀리는 신세에서 이제는 중국의 품질·일본의 저가 공세에 고전하는 ‘신(新)샌드위치’로 형태와 내용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자동차·스마트폰·가전·디스플레이·조선 등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 두고 호두를 양쪽으로 눌러 까는 호두까기 기계에 비교하여 곧잘 ‘넛 크래커(Nut-Cracker)’에 비유하기도 한다. 선진국과는 기술 경쟁에서, 신흥국과는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 현상을 말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저임금의 중국과 앞선 첨단기술을 보유한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경제의 상황을 두고 처음 대두된 표현이다. 4차 산업혁명과 미·중간의 무역 전쟁에서 시작된 보호무역으로 한국이 ‘뉴 넛 크래커’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 다시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KOTRA가 발표한 AI 등 12개 신산업 제조업 5대 강국(한국, 미국, 독일, 일본, 중국) 경쟁력 평가에서 모두 일본에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의 격차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스마트 선박·전기차·자율차·드론 등은 오히려 중국에 뒤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우리의 현주소가 더 초라해진다.
물론 이러한 평가가 나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해법은 잘 나오지 않고 있고, 기업 현장의 한숨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중국·일본 등 경쟁국은 날고뛰는데 우리는 여전히 절름발이다
글로벌 무역환경의 급변이 우리 같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에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적으로 나온다. 중국이 엄청난 자금력과 정부의 강력한 백업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신산업에 대해 빠르게 치고 올라오면서 우리 핵심 산업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일본은 소니, 도요타, 파나소닉 등 ‘올드(Old)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끝내고 확실하게 약진 중이다.
반면에 한국에는 중국과 같이 신생기업은 잘 보이지 않고 강자들은 오히려 노쇠하고 있다. 연간 영업이익 1조원 이상 기업을 일컫는 ‘1조 클럽’ 3국 경쟁에서도 한국 기업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불리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신세다.
2016년 기준 1조 클럽 기업 수는 중국이 120개, 일본이 117개인 반면 한국은 35개에 그쳤다. 이런 기업이 늘어나는 속도를 보더라도 2011년과 비교해 중국은 49개, 일본은 29개인데 우리는 고작 9개만 늘었다. 1조 클럽 가운데 4차 산업혁명과 연결되는 IT 기업의 수가 일본 15개, 중국 6개인 것에 비해 우리는 가장 적은 5개다.
2012년 말에 시작된 중국의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그들의 안중에는 한국이 없다. 우리만 중국이 뒤에서 추격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듯하다. 비슷한 시기에 집권한 일본의 아베 체제는 강한 일본의 부활을 천명하고 나섰다. 일본 경제의 고질병인 속도감과 실천력을 높이면서 존재감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미래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에 반해 우리 현재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 고질적 환부인 경제 양극화는 갈수록 태산이다. 10대 그룹을 제외한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의 매출은 11%나 줄어 갈수록 간격이 더 벌어지고 있는 추세다.
수출이나 내수의 과실이 일부 대기업에만 지나치게 편중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보다 산업화에 뒤늦게 시작한 중국을 쫒아가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부활에 대해서는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기업에 재갈을 물리는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서 움직이지 않거나 뒷걸음질을 치기 일쑤다.
대기업이나 가진 자들에 대해서는 기득권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이 좀비기업 혹은 불로소득자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선 관대하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러한 편견을 떨쳐버리고 반대편에 있는 무리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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