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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주도의 ‘핵안보 정상회의’는 강력한 핵 억지력으로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든다는 다소 모순된 명분을 갖고 출범했다. <사진=뉴시스>
내달 26~27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 정상회의’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관심이 가는 행사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양립하는 행사이지만 지금까지는 긍정적 측면만 홍보되고 있어 언론의 편견이 우려스럽다.
핵안보 정상회의의 부정적 측면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주지하다시피 핵무기가 없는데서 나아가 비핵화를 국가의제로 채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위협은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가장 심각하게 받고 있다. ‘핵안보’는 민족과 국가의 사활이 걸린 중대 사안이라는 것이다.
▲ 우리나는 미국의 요청으로 핵안보 정상회의를 두번째로 개최하는 국가가 됐다.
이번 행사는 전 세계 주요 50개국의 정상들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26개국이 참여한 G20 정상회의 보다 규모가 배 이상 크다. 수행원과 기자 등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인원도 8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보여 G20의 2000명 보다 네 배나 많다. 여기에 유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국제원자력기구, 유럽연합 등의 4개 국제기구까지 회의에 참여한다.
혹자는 이 같은 큰 행사이니 만큼 ‘단군이래 최대 국제행사’, ‘2012년 핵 월드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이 회의를 주관하는 한국은 앞으로 핵문제에서 주도적인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착시효과라는 점을 적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핵안보 정상회가 태동한 배경과 회의의 성격부터 따져보자. 이 회의를 만든 산파역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2009년 4월 5일 프라하 연설에서 ‘핵테러리즘을 국제안보에 대한 최대의 위협’(most immediate and extreme threat)이라고 지목했다.
▲ 핵안보 정상회의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프라하 발언으로 시작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후 4년 내에 전 세계의 ‘취약한 모든 핵물질’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적 노력을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더불어 2010년 중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계획을 발표했다. 이 발언에 대한 후속조치로 미국은 2010년 4월 12~13일 양일간 워싱턴에서 제1차 핵안보 정상회의를 가졌다. 첫 회의에서 50개국 정상들은 12개 조항으로 돼 있는 ‘워싱턴 핵안보 정상회의 정상성명’을 공동으로 채택했다.
따라서 이 회의는 누가 봐도 미국이 주도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모순된 핵정책으로 전 세계 국가들을 반 강압식으로 끌고 가는 문제가 수면 하에 잠복돼 있는 부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미국이 핵무기 없는 세상을 깃발로 든 것은 언뜻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국의 핵무기는 나아가 성능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하고 아울러 전 세계 어디든 가장 빠른 시간내에 가장 정확하게 핵 타격이 가능한 기동성과 네트워크를 갖췄다. 미국이 이를 포기한다면 미국이기를 포기하는 것이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핵안보 정상회의 성격은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결국 미국의 외견상 의도는 ‘핵테러 위협’을 사전에 철두철미하게 막자는 데 있다. 핵과 핵물질 등이 범죄자, 테러리스트 등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속된말로 단돌이를 강화하자는 게 미국의 궁극적 목적이다.
1차 정상회의 정상성명 서두에 보면 범죄자나 테러리스트 외에 ‘여타 권한이 없는자’도 핵테러 잠재위협 대상으로 명시돼 있다. 그런데 ‘권한이 없는 자’의 범위가 불분명하다. 그것은 미국의 주도에 의해 지목되는 이른바 ‘불량국가’가 해당될 것이다. 따라서 회의체는 미국 핵패권의 확장된 수순이다.
▲ 미국은 2010년 4월 12~13일 양일간 워싱턴에서 제1차 핵안보 정상회의를 가졌다.
물론 핵전쟁을 예방하고 핵테러를 억지하자는 것이기에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회의체다. 하지만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북한과 이란이 백악관의 정조준 좌표에 올라 있다. 미국과 핵 보유국들의 핵패권에 반기를 드는 국가들을 향한 강한 연대회의체가 핵안보 정상회의의 진짜 모습인 것이다. 나아가 비핵국가들에게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강력히 묶어두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염두에 둔 흔적이 있다.
미국이 두 번째 회의 개최지로 한국을 선택한 것은 그런 점에서 반가운 일이 못된다. 미국 주도의 핵안보 정상회의는 북한과 이란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속된말로 미국의 핵패권 ‘꼬붕’이라는 뒷말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미국과 중국이 이란 핵과 경제제재에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만큼 서울회의는 우리와 중국 간에 미묘한 대립각을 만들어지게 할 개연성이 높다. 정치적 이익은 보겠지만 경제적 이득에서는 중국에 양보하는 상황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중요하게 리뷰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발전 비중이 대단히 높은 국가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모범적인 국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핵패권에 선봉대 역할을 한다면 이 같은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상쇄될 수 있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여전히 핵문제와 관련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를 취하고 있다. 미국이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해야만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소위 ‘핵 억지력’ 명분이다. 가장 무서운 명분임을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미국이 핵패권을 강력하게 행사하면 할수록 핵을 보유하려는 국가들이 더 늘어날 뿐 작아지지 않는다. 잠재된 핵무기가 증가하고 핵기술 및 핵연료 불법거래가 더 횡횡할 수 있을 가능성까지 많아진다.
통제가 안 되는 핵무기가 확산될 우려가 큰 것이 미국식 핵패권 전략의 허점이다. 이를 50개국 정상들이 손을 잡고 강력히 통제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상적인 희망사항일 뿐이다. 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국가들조차 겉으로만 비핵국이지 내막적으로는 핵무기 보유에 버금간 국가나 욕심을 내는 국가들이 적지 않다. 일본은 이미 핵보유국에 버금간 지위를 갖고 있다.
미국식의 핵무기 없는 세상 연대는 위험한 발상이다. 나아가 그 위험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핵전쟁 가능성을 억지만 할 뿐인 형식적인 핵안보 정상회의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회의체에 우리가 두 번째 개최지 주관자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왠지 찜찜하다. 핵보안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주도적 위치로 앞장설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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