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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원조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미 달러 기반의 글로벌 경제 키를 쥐고 가면서(세계은행) 여차하면 역시 달러를 통해 ‘목숨’(디폴트)을 좌우하는(IMF) 패권을 유연하게 행사하고 있다. 유엔이 미국의 대형좌판이라면 세계은행과 IMF는 소형좌판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차기 세계은행 총재에 김용 다트머스대학 총장(왼쪽에서 두 번째)을 지명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티머시 가이트너(오른쪽) 재무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왼쪽)이 동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핵안보 정상회의’ 참석차 서울로 향하기 이틀 전 한국에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세계은행(World Bank) 총재에 재미 한국인 교포를 지명한 것은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있는 포석이기는 하지만 일단 반가운 소식이다.
김용(미국명·Jim Yong Kim) 다트머스대학 총장은 코리안 드림이라는 한국인의 미국 이민사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1959년생, 5살 때 이민)으로 꼽힌다. 그가 총장으로 있는 다트머스대학은 미국 동부에 있는 아이비 리그(Ivy League) 8개 명문대학 중 하나다. 김 총장이 지난 2009년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에 오른 것만 해도 한인은 물론 아시아 최초였다.
김용 총장에 대한 미국의 세계은행 총장 지명은 사실상 확정된 코스의 전 수순이다. 세계은행은 지분이 가장 많은 미국이 주도해 창설·운영돼 오고 있는 ‘대주주 오바마’라는 성격을 가진 기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은행 이사회가 미국이 지명한 총재 후보를 거부하거나 내친 전례가 단 한번도 없었다.
김 총장은 이에 대해 “저는 미국 정부가 저에게 준 책임을 다할 것이다”고 밝혔다. 세계은행 총재직을 수락하는 의지표현이다. 미국도 김 총장 카드는 기가 막힌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양 당사자가 호흡을 잘 맞춘 셈이다.
미국은 총재 자리를 미국이 독식하고 있다는 신흥국들의 반발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미국 후견인’ 내지 ‘오바마 사람’을 심어야 했다. 더욱이 오바마 주도로 창설된 ‘핵테러 안전클럽’이자 또 다른 ‘핵패권 기구’인 핵안보 정상회의 두 번째 개최국인 한국에는 후한 답례를 하는 모양새까지 그럴듯하게 갖추게 됐다. 김 총재 카드는 이처럼 여러 가지 정황에서 매우 절묘했다.
우리나라는 이제 걸출한 글로벌 인물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고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한승수 전 유엔총회 의장 등에 이어 또 한명을 배출하게 됐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국가위상으로 이뤄지고 있기에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은행이 IBRD(국제부흥개발은행)를 통해 사업을 전개하는 장기금융기관이라면 국제통화기금(IMF)은 단기 국제금융기관이다. 미국 주도의 이들 두 개의 금융국제기관은 세계경제의 질서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큰 위상을 갖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경제지배 전략은 이들 두개의 컨트롤 타워에 의해 은밀히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세계은행이 신흥국 지배권을 행사하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면 IMF는 고금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달러 패권’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 신흥국들은 이 같은 미국의 주도권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가 형성되고 있는데 대한 연대 비판 움직임마져 있다.
원조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미 달러 기반의 글로벌 경제 키를 쥐고 가면서(세계은행) 여차하면 역시 달러를 통해 ‘목숨’(디폴트)을 좌우하는(IMF) 패권을 유연하게 행사하고 있는 미국이다. 물론 미국의 이 같은 ‘글로벌 경제경찰’ 역할이 세계경제에 도움이 된 일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주도의 금융패권이 선진경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는 미국 독식의 부작용이라는 것이 신흥국들의 주장이다. 나이지리아 재무장관과 콜롬비아 전 재무장관이 일찌감치 총재 후보등록을 한 것은 그 배경이다.
이 상황에서 신흥국들은 미국인은 아니지만 법적 지위로 미국 사람이 엄연한 한국인이 세계은행 지휘봉을 잡는 것은 일면 불안한 일이다. 나아가 미국의 들러리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 신흥국들의 반감이 한국 외교가로 불똥이 튀길 우려가 없지 않다.
설사 잡음이 없다고 해도 한국 외교주권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있는 유엔도 따지고 보면 미국 좌판이다. 미국 외교의 한 중앙에서 한국인들이 역할을 하는 것을 꼭 나쁘게 볼 사안은 아니지만 우리 외교의 동선이 미국의 영향력 때문에 작아질 가능성이 있다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례로 러시아와 가스 및 기술 등 경제협력 사업을 능동적으로 벌이는 것과 한·중 FTA에서 우리는 독자외교를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다. 미국의 눈치와 암묵적 동의 내지는 협력이 전제돼야 할 일들이다. 이는 거꾸로 미국의 이익에 반하면 우리의 이익이 아무리 커도 행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환경이다.
김 총장은 내달 20일 세계은행 이사회의 회의를 통해 선출된다. 임기는 오는 6월부터다. 이사회 선출까지는 이제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이변이 없는 한 총재에 오르겠지만 문제는 이변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만약 신흥국들이 연대해 김 총장에 대해 반대의사를 피력하다면 신중해야 할 일이다. 지금은 미국의 절대파워에 의지하는 것이 틀리지 않겠지만 지나친 포옹은 한국이 ‘외교가의 외톨이’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흐름에서 미국의 지위가 예전보다 훨씬 고양된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거침없는 행보를 거부할 국가가 많지 않은 것은 신자유주의의 미국 기운이 전 세계 곳곳으로 스며든 것과 같다. 이런 대세를 거스를 수 없는 미국 중심의 외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도 ‘과연 미국은’이라고 자문해 봐야 한다. 미국은 언제든 낯을 가릴 때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북·미 독대는 그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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