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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지금 전해지는 <삼국사기>, 김부식이 저술했을까

중국 사서 베낀 부분 많아…조선 유학자들에 각색·편집된 듯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4-20 13:10:00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현재 사학계에서 정사서로 인정하고 있는 삼국사기를 인용·참조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 과연 이 책을 김부식이 썼을까하는 의혹이다. 그런 가장 큰 이유는 삼국사기에는 광개토태왕 비문의 내용이 거의 없으며, 설사 언급되었더라도 그 내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편집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솔직히 이 기록을 믿어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곤 했다
 
실제로 삼국사기는 중국의 사서를 그대로 베낀 부분이 아주 많은데다가 고구려·백제도 마치 신라처럼 중국의 제후같이 묘사했기에 항간에서는 김부식이 모화사대주의에 입각해 역사서를 저술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고구려의 건국 년도가 신라보다 늦는 등 너무 신라 위주로 역사를 기술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삼국사기의 표현문구는 김부식의 원래 저술이 아니라 조선왕조 유학자들에 의해 각색편집된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중국의 임금을 황제로 표기하면서도 삼국의 임금은 왕이라고 기술한 점과 수시로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칭신했다는 등 굴욕적인 문구 등은 100% 조선 왕조의 작품이지 고려 당시 그랬을 리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 금 태종 앞에서 양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송 휘종과 흠종. 모화사대주의일까 [사진=필자 제공]
   
모화사대주의자는 김부식이 아니라 삼국사기를 각색·편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왕조 자체였을 것이다. 내용을 각색해놓고 원래 편찬자 김부식의 이름을 조선왕조가 그대로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한 추정은 삼국사기의 연혁에다가 당시의 정치상황을 대입해보면 더욱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부식은 대학자인 동시에 정치가였다. 묘청의 난 진압 이후 승진을 계속하다가 나이가 들어 관직을 사임하고는 인종의 명에 따라 삼국의 역사서를 편찬해 3년 후인 1145년에 50권을 바쳤다. 그러나 김부식 생전에는 출간되지 못하고 원고상태로 있다가 얼마 후 일어난 정중부의 난때 원고가 소실되고 흩어져버려 다른 사람이 다시 편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려 때 얼마나 출간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 때 최초 출간은 태조 3(1394)인데 그 원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그 뒤로는 중종 7(1512)에 출간되었는데 현재 옥산서원에 그 간본이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고려본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태조본이 단 한 권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역사책 출간 및 보관은 국가가 관리하는데도 말이다. 그 사연을 추리해보도록 하겠다.
 
▲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기자조선을 찬양했다 [사진=필자 제공]
   
위화도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웠으나 대의명분이 약해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하다보니 스스로 강력한 외부세력인 명나라의 속국임을 자청하고는 불교 대신 유교를 국교로 정했다.
 
국호 조선을 하사받으면서 국조 단군의 조선이 아닌 기자조선을 본받는 것이라 했다. 당시 명나라는 여진·몽골 등 이민족 지배로 의기소침해졌던 한족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삼국연의> 등과 같은 역사소설을 보급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조선에서 명나라에게 정치적 사안에 대해 승인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1398년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집권한 후 1400년 태종으로 즉위하고, 이후 세자가 양녕대군에서 충녕대군으로 바뀌고 1418년 세종이 보위에 오른다.
 
얼마 후 1421년 명나라는 남경에서 북경으로의 천도 이후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때 산서성 남부에 있던 유주(幽州)와 갈석산이 북경부근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이러한 명나라의 의중은 그대로 조선조정으로 전해져 1454년 반도사관으로 점철된 세종실록지리지가 완성되기에 이른다. 옮겨진 지명과 관련 있는 나라의 기록도 같이 고쳐야 했기 때문이다.
 
1453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는 정변이 일어났는데, 상국인 명나라로부터 승인 받는 일이 그야말로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추인을 받기 위해서는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명나라의 뜻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명나라는 자기네 기준에 맞춰 조선에게 스스로 역사를 말살하라고 압박을 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 쿠데타로 집권하고 조카를 끌어내린 세조를 명나라가 순순히 승인했을까. [사진=필자 제공]
   
드디어 우열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세조는 3년 뒤인 1457년 팔도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대변설, 조대기, 주남일사기, 지공기, 표훈삼성밀기, 안함노·원동중 삼성기등의 100여 권과 동천록, 마슬록, 통천록, 호중록, 지화록, 도선한도참기등의 문서는 마땅히 사처에 보관해서는 안 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하고, 자원하는 서책을 가지고 회사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에 널리 효유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이어 즉위한 예종도 1(1468) 비슷한 어명을 예조에 내렸다. “주남일사기, 지공기, 표훈천사, 삼성밀기, 도증기, 지이성모하사량훈, 문태와 옥거인과 설업 세 사람의 기() 100여 권과 호중록·지화록·명경수및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집에 간수하고 있는 자는 도성에서는 10월 그믐날까지 승정원에 바치고, 외지의 가까운 도는 11월 그믐날까지, 먼 도는 12월 그믐날까지 거주하는 고을에 바치라. 바친 자는 2품계를 높여 주되 상 받기를 원하는 자 및 공사천구에게는 면포 50필을 상으로 주되, 숨기고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진고를 받아들여 진고한 자에게 위의 항목에 따라 논상하고 숨긴 자는 참형에 처한다. 그것을 중외에 속히 유시하라
 
다음 보위에 오른 성종도 1(1469) 팔도관찰사에게 전일에 주남일사기, 지공기, 표훈천사, 삼성밀기, 도증기, 지리성모, 하소량훈문태와 왕거인과 설업 3인이 쓴 100여 권과 호중록·지화록·명경수무릇 천문·지리·음양 등 여러 서책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도성으로 올려 보낼 일을 이미 하유했으니, 위 항목의명경수이상의 9책과 태일금경식·도선참기는 전일의 하유에 의거하여 도성으로 올려 보내고 나머지 책은 다시 수납하지 말도록 하고, 이미 수납한 것은 돌려주도록 하라는 교서를 내렸다.
 
이는 조선왕조가 국조 단군과 삼국에게 저지른 실로 엄청난 역사테러로 위 세 임금이 즉위하자마자 그런 어명을 내렸다는 것은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이민족인 명나라로부터 압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고서적들은 주로 아시아대륙을 지배했던 단군조선과 삼국의 역사서로 환단고기에서 많이 인용된 서적들이다.
    
부도덕한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쥐면 항상 뭔가 이상한 짓을 저지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만고의 진리인 것 같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엄청난 사건이 얼마 후 일어났으니 그것은 바로 중종반정이다. 그때 삼국사기도 분탕질을 많이 당한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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