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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28>

김일연, 우리 역사 한반도 역사로 만든 자

중국 사서 ‘남제서’도 한반도 기록 한 줄도 없어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9-07 00:02:00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중국은 있지도 않은 역사를 조작하며 자기들 역사를 마치 중원의 주인같이 포장하나 세계의 석학(碩學)들은 이를 부인한다. 옛 소련(蘇聯)의 역사학자 시로코 코트르는 중국사에서 서기전 3000년경 동이족은 이미 황하·양자강·서강의 중류이동(中流以東)의 중간지역에 살았으며 지나족(支那族)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천자(東邦天子)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강회지방(江淮地方)에 진출했다고 했다.
 
당시 치우천황(蚩尤天皇)은 서기전 2707년에 즉위해 109년 간 배달국(倍達國)을 통치(統治)한 왕으로 전쟁의 신()으로 불리는 자로도 유명하다. 즉 배달국(倍達國) 14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皇)으로 당시 천하를 통일하고 호령한 것을 숨길 수 없다.
 
그런데 중국은 660년 백제가 패망하고 663년 백강전투에서 나당연합군과 백제·()의 연합군이 싸워 백제가 패하자 당()은 대륙에 있는 사로신라(斯盧新羅)를 당()의 계림도독부(鷄林都督府)가 만들고, 이후 중국은 동이(東夷)의 기록을 황해 동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삼국유사를 쓴 김일연(金一然)은 역사를 제대로 연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송(唐宋)이 우리 역사를 동으로 밀어내는데 동참(同參)해 우리의 대륙사(大陸史)를 반도역사(半島歷史)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실수를 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 왜곡의 효시(嚆矢)가 되고 있다.
 
장안(長安) 국가들은 우리 역사를 지나(支那)에서 지우려고 당()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왜곡하며 송()나라 때는 소동파(蘇東坡)역대지리지장도를 만들어 송나라 이전 한나라에서 당나라까지의 역사를 편찬할 때 18사 동이전 남제서58범위의 동이 흔적을 지우고 있다.
 
중국 18() 동이전(東夷傳)은 대체로 존재시키고 있어 오늘날에 와서도 우리 역사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가라(加羅고구려·백제에서 광복(光復)한 신라, 신라와 고구려 간에서 독립한 신라가 있었는데 남제서58지역에 있던 사로신라를 감추고, 고구려·백제·사로신라 기록을 지나(支那)대륙에서 황해 동쪽으로 밀어 내었다.
 
이것은 진()에서 당()까지, 대륙은 통일국가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백제가 패망한 곳을 밀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왜곡하고 조작해 우리 역사를 반도로 밀어내려고 해도 남제서58지역에 있던 동이 역사, 삼국사46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지배(支配)했던 강역은 신라가 당군(唐軍)을 몰아내기 위해 7년간 당()과 싸워 이를 몰아내고 이 강역(江域)을 신라(新羅)와 발해(渤海)가 차지했다. 그리고 동이(東夷), 고구려·백제·가야·신라가 중원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사실 역사를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은 당송(唐宋)이 제 아무리 우리 역사를 중원에서 반도로 몰아넣으려 하나 불가능함과 우리 역사를 왜곡하게 한 원인을 제공한 김일연(金一然)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김일연(金一然)唐宋의 역사왜곡에 동참한 자
 
김일연(金一然)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집필할 때 인용한 서목에서 김부식 찬(金富軾撰)삼국사(三國史)’는 필수고, 중국사기(中國史記)에서 오대사(五代史)’까지 지나(支那) 18사 동이전도 많이 인용했다. 지도로는 소동파의 역대지리지상도도 발해전(渤海傳)에 남겼다.
 
그런데 삼국사(三國史)’와 동이전(東夷傳)을 그대로 전수한 것이 아니라 동이전(東夷傳)을 한반도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취사선택은 물론, 동이전(東夷傳)까지도 각색(脚色)했다.
 
그 사례를 보면, 동이전(東夷傳)을 한반도에 맞추기 위해 최치원(崔致遠)상대사시중장(上大師侍中狀)’에서 삼한(三韓)을 취하고, 고구려·백제가 남으로 오월(吳越), 북으로 유연제로(幽燕齊魯)를 다물(多勿)한 사실을 외면하고, 숨기면서까지 삼한(三韓)을 한반도 역사로 만들었다.
 
660년 백제와 668년 고구려 패망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것으로 하기 위해 김유신(金庾信)에 대한 것을 삼국사와 달리 가락국기(駕洛國記)’를 소개했는데 삼국사(三國史)’ 41에 있는 수로왕(首露王) 이전을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가락국(駕洛國)을 한반도에 맞추어 버렸다.
 
그리고 삼국(三國)의 전전 역사인 구리(九黎)역사를 지워 버렸다. 그리고 유사 이전의 설화(說話)인 곰과 범 이야기로 단군이전을 비인간세계로 만들어 버린다. 이뿐 아니라 이 땅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낙랑국 항목을 낙랑군으로 덮어 기자조선과 위만조선과 한사군을 이 땅의 역사로 만들었다. 김일연(金一然)은 역사를 왜곡한 지울 수없는 대 죄인이 되고 있다.
 
김일연(金一然)이 역사를 신중히 취급했더라면 김부식(金富軾) () ‘삼국사(三國史)’를 재현하려고 하였다면, 고구려와 백제가 남으로 오월(吳越), 북으로 유연제로(幽燕齊魯)를 다물(多勿)한 사실을 찾고, 오월과 사로(斯盧) 사이에 사로국을 찾았다면 우리 역사는 제대로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일연(金一然)은 대륙의 사로신라의 선덕여왕 때 보천(普天), 효명태자를 둔 정신대왕이 다스린 서라벌의 거칠부(居柒夫) 이후의 신라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낙랑국이 고구려에 다물이 되고 500년의 가한(可汗) 또는 마립간(麻立干)시대를 통일 고구려로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김일연(金一然)은 백제와 고구려가 망한 후 신라와 고려가 만주(滿洲)를 통치한 사실을 밝히지 못해 삼국사와 통일 이전의 공통부분을 한반도 역사로 조작해 버렸다.
 
이는 일연(金一然)의 역사연구 부족에서 나온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이승휴(李承休)제왕운기(帝王韻紀)’에 의해 우리 조선역사사관(朝鮮歷史史觀)은 반도사관(半島史觀)으로 우리 역사를 보게 되었고, 조선학자(朝鮮學者)들에게 무시당하고 신채호(申采浩)에 의해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秒)’라는 괴변(壞變)으로 삼국사(三國史)’동이전을 한반도 역사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우리역사는 밝혀지지 않고 의혹(疑惑)만 점점 불어만 갔는데도 여기에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이를 답습하며 우리역사를 더욱더 망가트리고 있다. 이는 우리역사를 한반도에 맞추려는 연구에만 매달리고 제대로 된 사서(史書)들을 외면하기 때문이라 본다.
 
우리 역사인 대륙역사를 재현(再現)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고, 한반도에 맞추려는 학노(學奴)들에 의해서 지극히 평범한 논리를 망각하고 우리 조상을 삼국사(三國史) 후예들이 하나로 보는 사관(史觀)이 정립하지 못하고 다른 민족으로 보는 시각에서 헤매게 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삼국사46남제서58 내용 확인하고 말해야
 
우리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역사를 한반도에 맞추려고만 하지 말고 우리가 중원을 호령한 삼국사(三國史)’ 46남제서(南齊書)’ 58의 기록을 확인하고 말해야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쓴 김일연(金一然)은 우리역사에 지울 수없는 대 죄인(罪人)이 되고 있음을 제대로 알고 말을 하라는 것이다. 즉 우리 역사가 한반도 내로 한정한다면 단군(檀君)도 우리 조상이 아니고 거란족이나 여진족으로 보는 결과가 되는 결과를 가져 오게 했다.
 
우리는 환국 이래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고려(高麗) 이전을 나타내는 김부식(金富軾) () ‘삼국사(三國史)’ 46과 중국 사서인 남제서(南齊書)’ 58의 기록을 확인하면 우리민족이 대륙 중원(中原)을 지배한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헌데 이를 연구하지 않고 말함으로 현혹하게 했다.
 
우리 역사가 삼국사와 중국 ‘18에 삼국 이전의 우리 역사가 없다고 생각하고 고조선에서 삼국이전까지를 메우려 한데서부터 18사 동이전을 한반도의 역사로 만들려고 한 것이 잘못되었다.
 
고구려와 신라가 만주를 다스린 것도 모르기 때문에 신라가 631년 이전부터 고구려가 장성 이남을 다스린 것을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광령에서 길림 이동은 신라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역사를 쓴 일연은 송령에서 상성 이남을 고려가 통치한 것도 모르고 역사를 쓴 과오를 범했다.
 
일연(一然)은 송나라부터 9세기 이전 기록을 한만(韓滿)으로 내려온 역사를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낙랑국(樂浪國)과 낙란군(樂浪郡)도 구별하지 못하했으며 가라(加羅고구려·백제에서 광복한 사로신라와 고구려에서 독립한 서라벌신라도 구분 못한 역사 왜곡의 원흉이 되고 있다.
 
그는 가라(加羅고구려·백제의 패망을 한반도의 사실로 만들어 버린 과오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삼국사(三國史)’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동이왜인(東夷倭人)의 비미국(卑彌國)이 한()78제후국 중 하나인 것도 몰랐고 왜()를 일본 열도로 알고 기록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 역사를 망가지게 했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하려면 삼국유사보다 먼저 나온 삼국사도 검토하지 않았고, 우리 민족이 대륙을 지배한 사실을 모르면서 역사를 쓴 과오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일연은 우리 역사를 뒤엎어지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우리 역사의 시작을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쓰고서도 우리 역사의 시작을 단군조선으로 해 역사를 그르쳤다. 또한 우리 고대사를 나타내는 사서(史書)에는 삼국유사(三國遺事)’보다 먼저 김부식이 찬()삼국사(三國史)’가 있고, 또한 삼국사와 같은 범위를 나타낸 사기(史記)에 중국의 오대사(五代史)’지나18()’ 동이전(東夷傳) 등이 있다.
 
그리고 김일연(金一然)의 삼국유사를 들 수 있는데 그가 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우리 역사를 축소하고 왜곡하고 있다. ()와 동시대에 단군(檀君)을 설정함으로 삼국사(三國史)’나 사마천의 사기(史記)’보다도 더 역사를 축소하고 있을뿐 아니라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최치원(崔致遠)상대사시중장(上大師侍中狀)’의 삼한(三韓)을 취하고 고구려, 백제를 숨겼다.
 
즉 최치원이 말한 상대사시중장(上大師侍中狀)’에서 삼한(三韓)은 인용하여 취했으나, 고구려와 백제가 남으로 오월, 북으로 유연제로를 다물(多勿)한 사실을 외면하고 삼국사아시아사임에도 한반도 역사로 만들기 위해 역사를 축소하고 숨겨 버렸다. 이는 역사 살육이다.
 
삼국유사를 보물로 지정한 것 수정해야
 
김일연(金一然)은 우리 역사를 왜곡(歪曲)한 시조가 됨으로 용서할 수없는 큰 죄인이 되고 있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1381~1383년에 나왔다고 하는데 김일연(金一然)은 우리의 역사를 그릇되게 한 그 장본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고대 고구려·백제·신라·가라(加羅);(伽倻)와 왜()가 어느 곳에서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는지 당시 국경도 모르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삼국시대 중원(中原)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한 사실을 제대로 알지도 몰랐고 백제, 고구려, 패망한 후 만주(滿洲)를 신라(新羅)와 고려(高麗)가 통치한 것도 모르고 있었고, 1370년의 고려(高麗) 이성계(李成桂)장군이 요양과 심양을 평정(平靜)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는 소동파(蘇東坡)의 지도에 낙양동쪽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는 것을 지웠기 때문이라고 말 할지 모르나, 그는 남제서 권58과 삼국사 권46의 기록을 봤다. 그런데 그는 중국의 왜곡된 역사와 소동파가 왜곡하기 위해서 만든 조작된 지도(地圖)이기 때문이라 하기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한 가락국기(駕洛國記)’가 유일하게 삼국유사(三國遺事)’에만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사대주의적(事大主義的) 역사관으로 조선총독부 마지막 총통 아베 노브유키(安倍信行)도 말한 것 같이 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한 역사를 가진역사를, 망가트리고 지우는데 기여한 원흉이 되었다.
 
김일연(金一然)은 지나18사 동이전 남제서(南齊書)’삼국사를 외면하고 우리가 중원을 정벌하고 지배하여 장안의 근심거리라고 한 기록을 보고 알았음에도 이에 관한 기록을 한 줄도 남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백제·고구려 패망을 한반도로 가져오기 위해 역사를 감추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최치원(崔致遠)상대사시중장(上大師侍中狀)’을 입증하는 사서가 중국의 남제서권58’에 있고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나, 오대사(五代史)에 우리 역사를 감추려 한 역사에서도 보듯 우리는 엄연히 대륙에 있었음에도 김일연(金一然)은 이를 숨겼다.
 
여기서 오대사(五代史(907~953)? 후양(後梁) 216(907~922), 후당(後唐) 412(923~936), 후진(後晋) 211(936~946), 후한(後漢) 24(947~950, 후주(後周) 35(951~953)을 말하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김일연(金一然)이나 강단 학파라는 학자들까지도 안타깝게도 우리 단군세기(檀君世紀)’가 유라시아 역사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김일연(金一然)은 백제 패망을 한반도로 가져오기 위해 김유신(金庾信)과 수로왕(首露王) 이전의 조상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수로왕(首露王), 증조부 구해(仇亥)며 부친 서현(舒玄)도 삭제한 자료를 남긴 일연은 역사를 잘못되게 한 것만으로도 그 죄과는 너무 막중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역사 왜곡의 글을 쓴 김일연(金一然) 저서인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보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잘 못된 것이라 사료된다. 어느 때까지 위대하고 찬란한 우리 역사를 참담하게 왜곡하고 숨긴 장본인이 쓴 삼국유사를 보물로 할 것인가! 참으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김일연(金一然)은 백제 패망을 한반도로 가져오기 위하여 김유신(金庾信)과 수로왕(首露王) 이전 조상,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수로왕(首露王), 증조부구해(仇亥)며 부()서현(舒玄)도 삭제한 자료를 남긴 일연은 역사를 잘못되게 한 것만으로도 그 죄과를 치러야 한다.
 
따라서 역사서가 아닌 삼국유사를 역사서 같이 포장한 것을 그대로 보물 지정한 것은 타당치 않다고 본다. 자기 나라 국경도 모르고 만주를 신라와 고려가 통치한 것도 모르고 백제와 고구려가 패망 후, 만주가 신라 땅이고 고려 땅인 것을 기재 않은 책을 보물로 한 것은 취소되어야 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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