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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만초천 물길 따라가는 길에서 만난 노포들

영천시장 꽈배기집·독립문 대성집‧청차동 양평매운탕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1-12 10:15:45

 
▲ 맛 칼럼니스트 유성호
만초천(蔓草川)은 무악재(길마재)에서 발원해 서대문사거리, 서울역, 서부역, 청파로, 아직은 미군기지이지만 시민 품으로 돌아 올 용산공원 그리고 원효로를 따라 흐르다 원효대교 밑에서 한강과 합수되는 7.7km에 이르는 하천이다.
 
대부분 구간은 죄다 복개돼 들여다 볼 수가 없고 다행히도 미군기지 안에 약 300m 정도가 남아 있다. 미군기지 쪽 수원(水原)은 남산쪽에서 발원한 줄기다. 청계천 만큼 인지도는 없지만 과거에는 용산팔경 중 하나로 경치가 아름다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1958년 만들어진 ‘지번입서울특별시가지도’를 보면 무악재부터 한강까지 이르는 만초천 물줄기 전체가 파랗게 그려져 있다. 붉은 점선 원은 미군기지 내부에 복개되지 않고 살아 있는 만초천이다. [사진=필자 제공]
 
 옛 만초천 변은 풀로 무성했을 것이다. 만초가 ‘넝쿨이 무성한 풀’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천변에 풀이 넝쿨째로 무성히 자라나서 일명 넝쿨내라고도 불렀을 정도다. 만초천이 발원하는 무악재 언덕 아래는 일제가 지어 놓은 서대문형무소가 있다.  서대문형무소를 포함한 일대를 서대문독립공원으로 만들었다. 이 곳에는 순국선열추념탑, 서재필 선생 동상, 독립관(순국선열 위패봉안소), 3·1 독립선언 기념탑, 독립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이진아기념도서관 등이 들어섰거나 인접해 있다. 독립관은 조선시대 중국사신을 맞이했던 모화관을 복원한 것이다. 내부에는 순국선열 위패 2327위를 모셨기 때문에 독립관이란 현판 앞에 별도로 현충사 현판을 걸었다. 다소 생뚱맞은 풍경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서울역쪽으로 내려오면 영천시장 북쪽 입구가 나온다. 영천시장은 주택가 인근에 있는 대표적인 골목형 전통시장으로 소생활권 중심의 소매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취급품목은 식료품과 농축산물, 생활용품 등 시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들이다. 영천시장은 특히 떡과 떡볶이가 유명했는데, 요즘은 꽈배기가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한끼 간식으로 손색없는 영천시장 꽈배기
 
▲ 영천시장은 떡과 떡볶이가 유명했는데, 요즘은 꽈배기가 간식거리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사진=필자제공]
 
한번은 필자가 꽈배기 스무 개를 사고 덤 하나를 달라고 했다가 냉정하게 거절당한 뼈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다. 이곳 꽈배기는 각종 TV프로그램에 앞 다퉈 소개되면서 시장 명소가 됐다. 싸고 푸짐해서 간식으로 제격이다.
 
영천시장은 1960년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만초천 주변에 있던 조그만 노점이나 점포가 복개 이후 시장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천시장의 뿌리는 영천장이다. 영천장은 독립문 인근에 존재하던 장터로 고양시 화천, 원당, 능곡, 일산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던 장이다. 돈의문 밖이던 이곳은 사대문 안에서 유통되는 물품과 경기 서북지역의 농산물, 땔감 등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됐다.
 
2011년 3월 인정시장으로 등록됐고 원래는 떡 도매시장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일반시장, 근린상권시장, 소형시장 등의 시장 특성을 갖고 있다. 떡이 많이 팔린 이유는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때문이었다는 속설이 있다. 현재 점포 70여개, 노점 60여 개 등 130여개가 공존하고 있다. 영천시장이 깔고 앉은 터 아래로는 보이지 않지만 만초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영천시장 맞은편에는 경희궁롯데캐슬 아파트가 있다. 개발되기 전에는 높지 않은 상가들이 대로변에 있었고 2선 골목에는 한옥채도 제법 있던 곳이다. 이곳에 있다가 개발에 밀려 지금은 독립문 사거리 대신중고등학교쪽으로 나온 것이 <대성집>이다. 60년이 훌쩍 넘은 도가니탕 전문점이다. 종로는 법정동이 참 많은 동네다. <대성집>이 속해 있는 동네는 행정동은 교남동이지만 법정동은 교북동이다. 옛날에는 ‘영천시장 건너편 약국과 사진관 사이 골목으로 50m 들어가서 우회전’해야 만날 수 있던 집이다.
 
60년 전통의 도가니탕‧수육 전문점 <대성집>
 
▲ 대성집 도가니 수육과 도가니탕. 수육에 소주 한잔 걸치고 탕으로 마무리 하는 선주후탕(先酒後湯) 하기 좋은 노포다. [사진=필자제공]
 
옛 <대성집>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집의 무쇠솥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마당에다가 무쇠솥 4개를 나란히 걸고 푹푹 끓이고 삶는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전라도 남원이 고향인 이춘희 씨가 이 집을 물려받은 것은 1978년으로 알려졌다. 원 주인이 나이 들어 점포를 물려 줄 사람을 선택한 것이 이 씨였다. 10년 동안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잘 따라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역이 개발되면서 <대성집>은 대로변으로 나왔다. 마당에 걸렸던 무쇠솥은 이제 실내 주방으로 들어 왔지만 고기를 다루고 손님을 맞는 일은 변함이 없다. 김치, 깍두기, 마늘, 초간장 등이 나오는 기본 찬에도 살짝 변화는 있다. 과거에는 갓김치가 나온 적이 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갓김치는 보이지 않는다.
 
<대성집>에 와서 100% 도가니를 찾으면 곤란하다. 이 집은 도가니 외에도 힘줄 부위인 스지도 함께 쓴다. 스지가 들어가면 국물이 농후해지면서 식감도 오드득거리는 것이 물컹이기만 하는 도가니보다 낫다는 사람이 많다. 도가니 수육 한 접시에 소주 한잔 하고 도가니탕으로 마무리하는 선주후탕(先酒後湯)하기 좋은 노포다.
 
미쉐린가이드에서도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으로 인정하는 빕 구르망으로 선정했다. 미쉐린은 ‘뽀얗고 맑은 국물에 고기가 붙은 도가니와 쫄깃한 힘줄이 풍성하게 들어 있는 대성집은 해장국집으로 시작해 현재 도가니탕 전문점이 되었다. 진한 국물 속에 가득 담겨있는 도가니에서 소박한 여유와 정감을 느낄 수 있다. 김치와 함께 밥을 가득 말아 특제 간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이곳은 돈의문 뉴타운 개발로 독립문 옆의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국내산 식재료만을 고집했지만, 수량이 모자라 현재는 미국산을 조금 섞어 사용한다. 늘 문전성시를 이루며, 선택에 따라 포장도 가능하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영천시장을 나와 1916년 세워진 석교교회를 지나 서울금화초등학교 앞에 다다랐다. 강북삼성병원 입구 우측에 들어서 있는 경교장이 이름을 차용한 경교가 있던 곳이다. 또 경기중군영, 청수관이 있던 곳이다. 경기중군영은 조선 후기 경기 순영에 지휘관인 중군이 있던 곳이다. 청수관은 도성 밖 서지(西池) 서쪽 가에 있던 정자다. 18세기 중엽 세워진 경기 감영 부속 건물로 사용됐던 곳이다. 1880년에는 일본의 하나부사가 이곳을 영사관으로 삼아 최초의 외국 공관으로 기록되지만 1882년 화재로 소실됐다. 
 
물은 곧게 흐르지 않는다. 만초천도 완만하지만 구불구불한 물길을 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위에 지어진 집들의 위치와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초천 복개지 위에 건설된 서소문아파트는 마치 하얏트호텔 모양으로 곡선 형태로 지어졌다. 휘어서 흘러가는 물길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홍제천 물길 위에 지은 유진상가, 종로 도로 위의 낙원상가(낙원아파트) 등이 대지지분이 없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서대문아파트에서 서소문고가도로 아래를 통해 서소문역사공원에 다다랐다. 신유년, 기해년, 병인년 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바티칸 교황청으로부터 천주교 성지로 인정받았다. 이 곳은 천주교인을 박해하기 이전 조선 초기부터 죄인을 참수하는 형장으로 사용됐던 곳이기도 하다.
 
성삼문, 허균 등이 이 언저리에서 처형됐고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김개남, 안교선, 최재호 등이 효시된 곳이다. 사람들 왕래가 잦은 곳에서 경각심을 주기 위한 처형이 이뤄졌기 때문에 시장 근처 널찍한 이 곳이 선택됐다. 서울역의 서쪽 서부역 이면 도로는 중림동부터 한강합수 지점인 용산구 이촌동까지 도로를 청파로라고 한다. 2010년까지는 남영역에서 한강합수지점인 원효대교 북단까지를 용호로라고 불렀다. 지금도 두산백과 같은 곳은 청파로를 중림동에서 남영역까지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
 
청파동 삼거리 50년 터줏대감 <양평매운탕>
 
▲ 빠가사리, 메기, 잡고기 매운탕 세 종류를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민물새우를 듬뿍 넣어서 육수가 시원하고 얼큰한 게 특징. 물김치도 맛을 완성하는 데 한몫 하는 집이다. [사진=필자제공]
 
한편 청파로 삼일교회 건너편 언저리에는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민물매운탕집 <양평매운탕>이 있다. 창업주인 함흥안 사장은 지금 자리보다 원효로 쪽으로 100m 정도 아래에 점포를 냈다. 함 사장의 사촌이 제기동 한방프라자 자리에 분점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2대 며느리 양미숙 사장이 운영 중이다. 시어머니 손맛을 이어받아 양평서 잡은 민물고기로 맛을 내 유명세를 탔다.
 
빠가사리, 메기, 잡고기 세 종류 매운탕을 특‧대‧중‧소 다양한 크기로 내놓는다. 빙어튀김도 곁들여 먹는 메뉴로 인기가 좋다. 필자는 과거 이 근처에 있는 신문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신문사로 식사 손님이 찾아오면 늘 이곳으로 데려갔다. 그러면 백발백중 식사에 만족하고 돌아갔다. 한마디로 ‘믿고 찾는 곳’이다.
 
다만 문제는 낮부터 술을 부르는 메뉴라 늘 취해서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반찬은 물김치 단 한가지. 시원함과 알싸함이 매력적인 맛이다. 물김치만 따로 팔아도 되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정리된 맛이다. 매운탕과 물김치라는 양대 축이 이 집의 맛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반찬이다.
 
청파로 밑으로 흐르는 만초천의 다리 중에 소의교라고 있었다. 다리가 시작되는 곳에 다리 이름을 새겨 세워 놓은 것을 교명주라고 하는데, 청파로 하수관거에서 소의교 교명주가 발견됐다. 이는 서울역사박물관 야외 전시실에 아현, 홍제, 서대문 고가도로 교명주와 함께 전시돼 있다.
 
만초천에는 ‘주교’라는 다리도 있었다. ‘놀다리’ 또는 ‘배다리’라고도 불렀다. 청파동 1가와 동자동의 경계가 되는 곳에 놓여 있었다. 이 다리를 중심으로 배다리골이라 불렀는데, 주교동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 ‘한경지략’에 따르면 1592년 임진왜란 때 숭례문 현판이 사라졌는데 광해군 때에 이르러 이곳 청파 배다리 밑 웅덩이에서 서광이 비춰 팠더니 현판이 나왔다는 일화가 전한다.
 
청파로로 흐르던 만초천은 용산전자상가로 휘어든다. 그 전에 용산 미군기지내에는 남산에서 흘러 내린 물줄기가 만초천 본류와 만나는 흔적이 보인다. 이 곳은 아직 복개되지 않은 유일한 구간이다. 1958년 만들어진 ‘지번입서울특별시가지도’를 보면 무악재서부터 한강까지 이르는 만초천 물줄기 전체가 파랗게 그려져 있다. 만초천의 복개는 1967년부터 이뤄졌기 때문이다.  용산전자상가를 지난 물줄기는 원효대교 아래로 흘러 한강으로 합수되면서 이름도 함께 사라진다.
 
만초천이 청계천처럼 복원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우리가 밟고 지나가는 발 아래 어떤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지 알면 삶이 풍성할 것 같다. 만초천 물줄기 변에는 오래된 노포가 즐비하다. 그 중 <대성집>과 <양평매운탕> 집은 한번 씩 이전을 했지만 가까운 곳으로 옮겨서 단골들 발길을 붙잡아 둘 수 있었다. 이들 노포들이 오래도록 열려 있는 ‘백년가게’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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