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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세금(稅金) 씀씀이와 삼류 국가·국민

정상적 국가는 국민이 주인 행세, 반면 비정상적 국가는 국가가 일방통행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9-07 18:20:40

▲ 김상철 G&C Factory 대표
 올해보다 8.5% 늘어난 555조 8천억 정부 예산 안이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는 법정 마감 시한인 오는 12월 2일까지 심의를 거쳐 확정하게 된다. 그러나 시한 내에 심의가 끝난 적이 별로 없다. 여야가 예산을 두고 또 정치적 흥정을 할 것이고, 지역 이기에 혈안이 된 의원들의 쪽지 예산 주고받기 꼴불견 재연이 이미 예견되고 있기도 하다. 누가 봐도 초(超)슈퍼 예산이다. 코로나로 경제가 망가졌으니 재정 투입을 늘리려는 취지를 백분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이처럼 방만하게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과연 이성적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부 출범한 이후 4년 만에 국가 채무가 285조나 늘어나 2022년에는 1000조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구당 빚은 3900만에서 4600만으로 늘어나 미래 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안긴다.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어도 외견상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치권이나 언론, 일부 시민단체 등이 이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지만, 정작 국민은 애써 태연한 편이다. 마치 초월한 듯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한다.
 
보편적인 국가의 국민은 나라 예산에 매우 민감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의 바탕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자신으로 낸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감시와 감독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자 의무다. 그래서 정부 예산이 확정되거나, 집행된 예산의 감사 결과가 발표되면 그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반응을 한다. 당연히 정부는 국가 예산의 확정과 집행에 대해 매우 신중하며, 만약 방만하게 운영하거나 과정에 비위가 노출되기라도 하면 엄중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특정 국가에 거주하는 외국 주재원들도 해당 국가의 예산 내용을 엄밀히 분석해 협력과 사업 기회를 발굴하기 위해 자국 기업에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가. 권위주의 정부 시절부터 막강한 국가 권력에 주눅이 들어서 그런지 일반 국민은 국가 예산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세금 내는 것에만 충실한 나머지 선량해 보이지만 꽤 어리석다.
 
현 정부 들어서 세금 인상이 만만치 않다. 소득세와 법인세를 꾸준히 인상하고 있다. 법인세는 OECD 37개 국가 중 10번째 높은 국가로 올라섰다. 21개국이 법인세를 내렸지만, 우리만 가파르게 올렸다. 소득세도 지난 10년간 소득세를 가장 많이 올린 국가가 한국이다. 기업과 고소득자가 정부 세수(稅收)의 봉이 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기준 상위 1% 소득자가 전체 소득세의 42%를, 상위 1% 기업이 법인세의 78%를 부담하고 있다. 이 정도 되면 과세 형평성이 지나치게 왜곡돼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집단들이 국가로부터는 가장 괄시를 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봉급 생활자들의 소득은 유리알 지갑이라고 할 정도로 속수무책으로 세금에 노출돼 있다. 국가 운영을 위해 세금의 징수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세금을 집행하는 정부의 투명성 혹은 도덕성은 이보다 더 상위 개념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국가 구성원들의 알력이 심화되고 궁극에는 국가의 존립 기반이 위태로워진다.
 
국민이 세금에 민감하지 않으면 국가의 투명성·도덕성 방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국가와 세금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근대 국가 탄생의 이론적 배경이 된 18세기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합의체다. 국민이 세금을 내고, 국가가 정한 법에 따르는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고, 법에 명시된 국민의 자유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민은 법에 복종할 의무가 없으며, 국가라는 대리인이 주인을 해치는 심각한 계약 위반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대체로 이러한 사회적 계약을 근간으로 국민과 국가 간의 암묵적 계약이 성립되고, 이를 지탱하기 위해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국가의 운영 형태를 보면 위험 수위에 근접하고 있다는 걱정을 지우기 어렵다. 계약의 주체인 국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국가가 강압적으로 세금을 징수하고, 일방적으로 지출을 결정해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또 하나의 지구촌 열등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인가.
 
안타깝게도 현 정부나 집권 여당은 고집불통에다 무소불위다. 때때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해 이들이 과연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인지 어리둥절하게 한다. 부동산 가격은 내려가지 않을 것이고, 세금만 열심히 내면 된다고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더 황당한 것은 2045년 이후의 미래 정부는 돈 많이 안 쓸 것이며, 나랏빚도 감소한다는 주장을 편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갈수록 곳간은 비어 가는데 이 정부는 계속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비겁한 소리만 연발한다. 2030년 이전에 건강보험, 2055년 전후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지는데 면피 작전으로 일관한다. 저출산·고령화, 지방 소멸 등 우리 앞에 놓인 미래 난제가 절대 만만치 않다. 필연적으로 국가 재정이 늘어날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빚으로 버티고, 빚으로 투자하는 ‘대한빚국’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국가, 기업, 개인 모두 빚쟁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전염병은 국가 재정의 중요성을 새삼 각인시켜 준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국가 채무를 줄여나가는 것이 상식적이다. 반면 채무가 지속해서 늘어나면서도 구조개혁 실패로 국가의 기능이 후퇴한 국가도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전자는 독일, 후자가 일본이다. 벌써 대한민국이 제2의 일본, ‘일본化(Japanization)’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가 재정 건전성이 위협을 받으면 세출(歲出)을 보수적으로 줄이는 것이 현명한 정부의 도리다. 다음 정부야 죽을 쑤던 무시하고 선심성 포퓰리즘을 남발한다면 계산된 정치적 행위라는 비아냥을 면하기 어렵다. 내년 예산만 보더라도 복지고용 200조, 세금 일자리 103만 개, 공무원 1만 6140명 충원 등이 포함돼 있다. 꼭 필요한 것도 있겠지만 불요불급한 것도 많다. 국민이 저항하지 않으니까 정부의 독주나 횡포가 더 기승을 부린다. 포퓰리즘이 횡행하면 국가 예산에 눈독 들이는 좀비들이 더 설친다.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후유증으로 돌아와 엄청난 국가적 낭비와 갈등이 재연되면서 공회전을 한다. 국민 세금에 도전하는 정권의 재창출은 지구촌 어디에도 보기 힘들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세금에 눈을 부릅뜨지 않고서는 삼류 국민, 삼류 국가의 오명을 씻는 것이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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