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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불온한 문화’가 사라진 나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3-17 10:00:20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전 정권 때는 최고 권력 날카롭게 비판하더니
/현 정권선 “문체부 장관 환영” 등 생뚱맞은 변신
/정치의 문화 장악 및 이용 속성 간과하지 말아야
/문화는 권력에 긴장관계 잃으면 생명력‧활력 위축
/“예술가 정신은 어떤 권력에도 아첨하지 않는 것” 
 
문화와 권력의 관계에 대해 시인 김수영(1921-1968)만큼 탁월한 정의를 내린 사람도 없다.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말 권위주의 정권 때 그가 일갈했던 이 말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도 보편적 울림을 갖는다. 권력자들은 문화를 어떻게든 길들이려 했고, 문화는 이에 맞서 때로는 순응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면 대결을 택하면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3년 9월 국립극단이 공연한 연극 ‘개구리’는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과감한 풍자와 비판을 가했다. 연극 대사 중 하나를 소개한다. “우리 딸 아이, 작년에 기말시험 본 걸 가지고 커닝했다, 점수 조작했다 그러는데 학교 때 커닝 페이퍼 안 만들어본 사람 있어? 부모 없이 혼자 자란 애라고 지랄 발광을 하고 있어요. 옛날 같으면 탱크로 확.”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대사 중에 ‘부모 없이 혼자 자란 애’는 대통령, ‘기말시험’은 바로 9개월 전에 치러졌던 ‘대통령선거’, ‘커닝 페이퍼’는 ‘선거 부정’을 상징한다. 박근혜정부가 갓 출범해 권력의 서슬이 퍼랬을 때, 그것도 정부 산하인 국립극단이 만든 작품이었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미술 작품이 나왔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세월호 구조를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도발적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공개되기도 했다. 연극 ‘개구리’를 만든 연출자는 정권 내부의 반발에 대해 “현재 권력을 가진 쪽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게 예술”이라고 대응했다. ‘불온한 문화’에 포용심을 잃은 박근혜 정권에 연극 ‘개구리’는 추후 정권 붕괴의 단초가 됐다.
 
어느 여권 국회의원이 “세상이 확 바뀌었다”고 규정한 문재인 정권 들어서는 사정이 어떨까. 지난달 취임한 황희 문화체육부 장관에 대해 한국예총과 민예총은 공동으로 “임명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예총과 민예총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단체로 꼽히지만 노선 차이로 인해 사이가 나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앙숙’들이 각자 성명을 발표하지 않고 함께 움직인 것도 의외였지만 성명을 내놓은 시점도 야릇했다.
 
청와대가 황 장관 내정을 발표한 날이 1월 20일이었는데 두 단체의 환영 성명은 바로 당일에 나왔다. 마치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후 황 장관의 ‘월 60만원의 뼈를 깎는 생활비’ ‘국회 빼먹고 스페인 가족여행’ 등 기상천외한 행적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치솟았다. 양대 문화단체의 체면은 단번에 구겨졌다.
 
타이밍이 이상한 것은 지난해 10월 5개 문인단체(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시인협회, 한국작가회의 등)가 발표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촉구 성명도 마찬가지였다. 한국문인협회 등은 국내 문단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이 성명의 발표는 10월 29일 이뤄졌는데 하루 전인 10월 28일에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있었다. 서해에서 우리 공무원이 사살 소각된 끔찍한 사건에 대해 “평화체제의 절실함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던 그 연설이었다. 북한을 끝없이 감싸는 정부에 대해 격앙된 여론이 분출했던 사건을 놓고 문인단체들이 맞장구치듯 정권 편을 든 것이다.
 
지난해 1월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에서 어느 원로 소설가의 ‘문비어천가’는 귀를 의심케 했다. 문 대통령을 주빈으로 해서 많은 문화계 스타들이 참석한 행사에서 이 소설가는 “우리는 마침내 공수처법을 갖게 됐다”며 “국민들은 70% 넘는 환영을 표하면서 그 법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다”는 등 문재인 정권의 ‘업적’을 늘어놓았다. 그는 이어 “이러한 모든 성과들이 이뤄지게 된 것은 겸양과 품격이 조화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국정을 이끌어온 대통령의 노고”라고 결론지었다. 정말 세상이 확 바뀌면서 문화도 통째로 달라졌는지 ‘불온한 문화’는 간 데 없고 ‘풀잎처럼 먼저 눕는 문화’만 어지럽게 펼쳐지고 있다.
 
문화에 대해 사람들은 우호적이다. 아울러 권력자들의 문화 지원에 대해서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르네상스 때 메디치 가문이다.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브루넬레스키 같은 거장들이 메디치의 후원을 받은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치기 쉬운 게 있다. 메디치 가문의 정치적 목적이다.
 
메디치 가문이 활동한 피렌체는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공화국 체제였다.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메디치 가문이 통치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고리대금업에 대한 사회적 적개심을 누그러트릴 필요가 있었다. 성당을 대대적으로 개축해 그 안에 벽화를 장식하고 인문학자들을 넉넉하게 대접하는 일은 효과적인 이미지 개선 수단이었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이 수리비용을 부담한 산로렌초 성당 내에 가족 묘지를 확보하고, 묘 앞에 ‘이 도시(피렌체)의 아버지’라고 새긴 것은 이들의 진짜 목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큰 손 후원자로서 메디치 가문의 아름다운 모습은 전체가 아닌 절반의 진실이다.
 
‘불온한 문화’를 주장한 시인 김수영은 ‘문화의 침묵’에 대해서도 중요한 말을 남겼다. ‘문화의 침묵’은 문화인의 소심증, 무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권력의 탄압이 더 큰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시대가 바뀌어 노골적인 탄압은 자취를 감췄지만 정교하고 어쩌면 사악한 형태로 문화를 동원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따라서 문화와 권력 사이에 일정한 거리와 긴장 관계가 사라지면 문화의 활력, 생명력은 위축된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공산주의 사회의 ‘박제된 문화’일 것이다.
 
50여 년 동안 시골에 은둔해온 일본의 원로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시인 김수영과는 다른 표현으로 문화의 본질을 설명한다. 그는 ‘국가는 국가에게 유리한 예술만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예술은 무시하고 배제한다’면서 ‘예술가의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권력에도 아첨하지 않는 정신’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를테면 권력과의 ‘사회적 거리두기’다. 이념과 진영을 떠나 ‘불온한 문화’는 소중하고 절실하다. 우리 삶에서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커진 오늘날에는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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