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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1인4역 프로골퍼 크리스티 커의 남다른 열정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15 10:09:04

 
▲박병헌 전 세계일보 체육부장
/프로 초반에 초고도 비만증으로 고생
/첫 우승 하자 무료 유방암 센터 건립
/와인회사 차려 수익금으로 기금 마련
/44세에 혼자 딸 키우며 필드를 누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24년째 활약하고 있는 크리스티 커는 열혈 워킹맘이다. 한국 여자골프의 레전드인 박세리와 1977년생 동갑이지만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필드를 누비고 있다. 박세리는 5년 전인 2016년 가을에 필드를 떠났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 골퍼 중의 한 명인 커는 LPGA 투어생활 24년을 하는 동안 벌어들인 상금만 해도 2000만달러(한화 약 220억원)가 훌쩍 넘는다. 커가 생활고에 쫓겨서 결코 투어생활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커는 깐깐한 선수로 유명하다. 무엇하나 쉽게 지나가는 일이 없는 원칙주의자다. 화려한 외모에 글래머러스한 몸매,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 화목한 가정 등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박세리와 LPGA데뷔 동기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커는 원래 왼손잡이였는데 오른손으로 골프를 배웠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베테랑 필 미켈슨과는 정반대의 경우다. 8세 때 아버지의 권유로 처음 골프를 시작한 커는 16세 때인 1994년 주니어 메이저 대회인 오렌지볼 인터내셔널 챔피언십과 이듬해엔 우먼스 웨스턴 아마추어에서 정상에 오르며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면서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고교 졸업 직후인 1996년 18세의 나이로 프로 전향을 선언한 커는 97년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 최종 예선에서 박세리와 함께 공동수석의 영예를 안았다. 그때까지는 비교적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LPGA투어의 초기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상금랭킹 50위 안에 드는 데 무려 3년이 걸렸다. 잘 나가던 박세리와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 2002년 롱스드럭스챌린지에서 첫 우승을 하기까지 무려 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커는 22세 때인 1999년 초고도 비만에 걸려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키가 160cm인 커는 당시 체중이 80kg에 육박했다. 과체중이 심해 걸음걸이가 시원치 않았고, 허리에 경련이 일 정도였다.
 
커는 규칙적인 운동과 눈물겨운 다이어트를 하며 23kg을 감량했고, 지금은 체중 57kg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이혼한 그의 부모는 모두 당뇨병 환자였다. 커의 어머니는 후유증으로 심장마비가 오기도 했다. 커는 감량에 성공한 뒤 외모도 나아졌고, 라식수술 덕분에 골프 실력도 급향상되었다.
  
LPGA 통산 상금 3위의 대선수
 
첫 우승을 신고한 뒤 매년 1, 2승씩을 쌓았고 2010년엔 메이저 대회인 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마침내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다. 2017년 10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사임다비 LPGA 말레이시아에서 투어 통산 20승째를 거뒀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딸뻘 되는 어린 선수들과의 우승 경쟁에서 이기고 있는 것이다. 자기 관리에 충실하며 훈련에도 열심인 것이 커의 롱런 비결이다. 커는 통산 2005만5723달러(한화 약 225억원)를 벌어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2257만 달러), 카리 웹(호주·2027만달러)에 이어 생애 통산 상금랭킹 3위에 올라 있으며, 미국 선수로는 가장 높은 순위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까칠한 성격은 그런 인생 역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LPGA투어에서 우승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커는 우승할 경우 마음먹은 게 한 가지 있었다. 골프를 통해 부와 명예를 얻었기에 다른 사람을 위한 기부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유방암 무료 센터 건립 이유는
 
그가 첫 우승을 했을 당시 그의 어머니 린다와 이모는 유방암에 걸려 오랜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2003년 유방암 환자를 돕기 위해 뉴저지주 허드슨 카운티에 자신의 이름을 딴 '크리스티 커 여성 건강 센터'를 설립했다. 그가 LPGA투어에서 첫 우승을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 건강 센터에서는 환자들의 인종과 가정 형편을 가리지 않고 유방암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 프로그램을 무료로 시행해오고 있다.
 
유방암의 생존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증상이 없을 때 조기 발견하는 것임을 경험칙상 누구보다도 잘 안다. 커는 유방암에 대해 노이로제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유방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자가 검진, 정기적인 진찰 등 무료로 유방암 진단 및 치료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투어를 뛰면서 어머니의 병간호를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유방암에 대한 어려움과 공포를 잘 알고 있었다. 버디 1개당 50달러, 이글 1개당 100달러씩을 적립했으며, 연례적으로 프로암 자선 골프행사를 개최해오면서 후원을 받아 유방암 퇴치 기금을 모으고 있다.
  
66억원의 거액 센터에 지원
 
모금 액수가 예상외로 크게 늘어나지 않자 커는 2006년 그간 투어에서 벌어들인 상금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에 있는 와이너리를 인수하며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와인 매니아인 커는 이 사업에서 번 돈 전액을 센터의 유방암 퇴치사업에 쓰기로 했다. 그 돈은 대략 600만달러(한화 약 66억원)를 넘어섰다.
 
커의 이러한 기특한 사연이 알려지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도움에 나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트럼프 내셔널 골프&리조트 등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미국 내 수 십 개의 골프장 및 리조트에 와인 납품 독점권을 커에게 내어줬다.
 
커는 장타자도 아니며 남들이 탐낼만한 교과서적인 스윙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골프연습에만 매달릴 만한 형편도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남편 사이에 딸 하나를 둔 맹렬 주부로서 골프선수, 와인회사 사장, 유방암 건강센터 이사장 등 1인 4역을 거뜬히 소화해내고 있는 셈이다.
 
한국으로 치면 펑퍼짐한 아줌마로 취급당할 나이의 커가 딸뻘 되는 20대의 팔팔한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오고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유방암 퇴치기금 마련이라는 집념과 아름다운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승에 늘 목말라 있는 커
 
그의 메인 스폰서사인 ‘뮤추얼 오브 오마하’라는 생명보험사는 커가 3위 이상의 성적을 내면 자선기금을 그녀의 재단에 쾌척하고 있다. 유방암 퇴치 기금 조성을 위한 것이라면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맹렬여성이다.
 
커가 2017년 20승을 거둔 이후로 LPGA투어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있음에도 많은 팬들의 성원과 격려를 받고 있는 이유다. 필드에서 늘 파이팅과 열정이 넘치는 커는 아직도 우승에 목말라 있다. 하지만 나이 탓인지 근래 들어 그의 성적은 탐탁치가 않다. 남을 돕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그의 강한 염원이 필드에서도 힘을 발휘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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