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전문가칼럼
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찹쌀떡 같이 쫄깃한 숙성회에 해넘이는 덤
인천 북성포구 자연산 횟집 ‘강화불음도회집’
사이좋은 시누올케가 합심해 만든 숨은 맛집
유성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4-23 09:32:29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이달 10일 인천 옹진군 장봉도에 이어 18일엔 중구 월미도를 다녀오는 등 근래 서해 바다 쪽으로 발길이 잦다. 서해 쪽은 서울서 가까운 곳에서 바다와 야트막한 산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거리 때문에 그동안 격조했다. 서울 시내 이동만도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곳이 많은데 구로역에서 인천역까지는 급행 덕분에 불과 46분밖에 걸리질 않는다. 구로역에서 신이문역까지 가는 시간과 같다. 그만큼 인천은 행정구역이 나눠져서 멀게 느껴질 뿐 가까운 곳이다.        
 
인천을 다시 찾은 이유는 지난 2월 제물포구락부를 방문했다가 만난 인천산림조합 최태식 자문위원과 ‘원조밴댕이’에서 이번 만남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최 자문위원이 소장으로 근무했던 월미공원을 둘러보고 숨겨 놓은 ‘맛집’도 탐방하기로 두 달 전에 일찌감치 약속을 해 놓은 것이다. 벚꽃 개화시기에 맞춘 약속이었지만 꽃은 이미 다 지고 영산홍, 철쭉들이 대신 반겼다. 기후 변화로 인해 열흘 이상 일찍 벚꽃이 피고 졌다. 이처럼 기후 위기는 어느새 우리 일상 가까이서 경고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인천시민의 웰빙 휴식처 월미공원
 
▲ 섬이던 월미도는 육지와 이어진 육계도가 되고 공원으로 새 단장해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사진=필자제공]
 
인천역에서 버스를 타고 5분이면 월미공원 입구에 다다를 수 있다. 월미공원은 월미산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으로 과거 해군 2함대가 주둔하고 있던 것을 2001년 인천시에서 매입 후 시민들을 위한 녹지공간으로 만들었다. 간척으로 통해 육지와 이어진 육계도로 행정구역상으로는 중구 북성동 1가 산2-1번지 일대다.     
 
공원면적은 58만8099㎡(178만평), 공사기간은 2000년부터 10년이 걸렸으며 보상비와 공사비를 합쳐 1051억원이 들어간 매머드 공원이다. 주요 시설로는 월미문화관, 월미전통정원, 전망대, 월미성, 한국이민사박물관, 다목적운동장 등이 있다.     
 
월미공원사업소 최정화 씨와 문화관광해설사 안내로 월미문화관을 둘러놨다. 이곳에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인천과 원미도의 역사가 한눈에 전시돼 있었고 궁중문화와 궁중음식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며 놨다. 물론 지금은 체험이 전면 중단됐지만 상당히 공을 들인 흔적과 함께 방문객들에게 인기도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     
 
병자호란 때 말을 탄 몽골 병사들이 강화도 피란길을 막아 남한산성으로 몽진을 해야만 했던 조정은 1656년(효종7)에 제2의 피난길을 개척할 때 중간 기착지로써 월미도에 월미행궁을 지었다는 문헌 기록이 있다. 그래서 궁중문화 체험 콘텐츠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월미공원안내소 앞에서 월미공원 명물인 물범카를 타고 안내소를 출발해 돈대삼거리를 지나 정상광장에 다다랐다. 물범카는 전기로 운행되며 평균 시속 7km로 천천히 이동하기 때문에 주변 경치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중식시간 1시간(12~13시)을 제외하고 2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짐칸이 있어서 캐리어, 유모차 등을 싣고 탈 수도 있다.     
 
물범카 이름 유래는 인천아시안게임 마스코트에서 따왔다. 지난 2014년 열린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마스코트가 물범 삼남매였다. 인천 백령도 두무진에서 즐겁게 살고 있던 점박이물범 삼남매를 마스코트로 스토리텔링 한 것이다. 정상광장에는 아시아경기대회 때 사용했던 마스코트 조형물을 옮겨와 세워 놨다. 별도로 제작했다면 수 천만 원 들어갈 것을 재활용하면서 예산을 아낀 모범적 사례다.       
 
서해대교 장관 볼 수 있는 월미전망대
 
▲ 물범카와 인천아시안게임 마스코트 물범 삼남매(왼쪽 위). 월미전망대서는 인천항 일대와 서해대교 전장을 모두 볼 수 있다. 월미공원에는 인천상륙작전 시 네이팜탄 폭격세례에도 살아남은 나무들의 이야기가 살아 있다. [사진=필자제공]
 
전망대는 월미도 일대 사방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인천항 갑문과 현대제철, 북항포구, 인천 시가지는 물론 서해 바다와 인천항 일대, 인천대교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최 자문위원은 가시거리가 좋은 날엔 서울 남산도 보인다고 했지만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 내부에는 노인 일자리사업으로 달빛카페가 운영됐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일시 폐쇄 중이다. 평상시는 야간에도 개장하기 때문에 차와 음식을 먹으면서 인천 야경을 볼 수 있다. 야경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싶다.     
 
전망대 맞은편에는 해발 108m 월미산 정상이 있다. ‘산과 바다를 품어라’는 문구가 적힌 전당 데크가 조성돼 있고 그 위에 서면 남청라와 영종도 사이 물치도가 보인다. 바닥은 월미산 정상으로부터 송도, 소래, 문학산, 마니산, 평양 등 전국 각지까지 거리를 나타낸 도로원표가 설치돼 있다. 정상은 일본군이 주둔할 때인 1908년 세운 아타고신사가 있던 터다.     
 
정상에서 내려와 예포대에 들렀다. 예포대는 예식용 대포로 외국 군함이나 국가원수, 고위관료 등이 입항할 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공포탄을 발포하는 것으로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각국 대사를 맞이하기 위해 월미도에 예포대를 설치했다는 기록에 따라 재현한 것이다. 하산 때는 물범카를 이용하지 않고 숲오름길을 통해 걸었다. 중간에 옛 탄약고를 개조해 만든 ‘탄약고쉼터’가 있다. 이곳에선 ‘인천둘레길사진전’이 열리고 있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탄약고쉼터서 조금만 내려오면 월미공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전통정원 사이트가 나온다. 이곳은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 양식을 재현하기 위해 조성했다. 가장 먼저 풍산 류(유)씨 입암고택인 양진당이 나온다. 양진당은 안동 하외마을에 있는 풍산 류씨 대종가다. 입암은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의 부친인 류중영의 호다. 당호인 양진당은 겸암 선생의 6대 손인 류영공의 아호에서 유래했다.  
 
풍산 류씨는 전서 류종혜가 13세기경 하회마을에 자리잡은 입향조다. 양진당은 입향 당시에 처음 자리 잡은 곳에 지어진 건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된 것을 17세기에 중수했다. 고려 말 건축양식과 조선중기 건축양식이 섞여 있다. 하회마을에서는 드물게 정남향이다. 99칸이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53칸이 남아 있다.    
 
웅장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문간채와 행랑채가 길게 이어져 있다. 口자 형의 안채와 북쪽 사랑채를 일자형으로 배치했다. 오른편 북쪽에는 2개의 사당이 있다. 정면 큰 사당은 입암 류중영, 작은 사당은 겸암 류운룡의 불천위 사당이다. 불천위는 공신이나 대학자 등 업적이 탁월한 사람에게만 영원히 사당에 모실 수 있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를 말한다. 불천위로 인정되면 4대조까지 올리는 제사 관행에 관계없이 대대로 제사를 올리는 가문의 영광이다.      
 
양진당을 지나면 벼농사를 짓는 초가집 민가, 습지원, 월휴정, 소쇄원, 국담원, 창덕궁 부용지, 애련지 등 전국 각지 정원을 본 따 만든 다양한 정원이 나온다. 월미도는 월미공원이 들어서기 전 기구한 운명을 가진 곳이다. 개화기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외국 군대에 점령되는 굴욕의 역사와 한국전쟁 때는 미군의 네이팜탄 폭격에 의해 섬 주민 다수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군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 역할이 컸기 때문에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때 물길을 통해 한양으로 올라가려는 인천에 접근한 이양선들의 기착지 역할을 했다. 일본, 청나라, 러시아가 조차 경쟁을 벌일 때 일제는 조정 허락도 없이 월미행궁 터에 석탄창고를 지었다. 청나라와 러시아도 월미도에 석탄 창고를 지으려고 기회를 엿봤다. 이때만 해도 열강들의 군함은 석탄이 동력원이었고 월미도에 저장하고 사용하기 적합했기 때문이다.      
 
임오군란으로 한반도 세력이 커진 청나라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월미도에 석탄창고를 짓겠다고 조정에 요청하고 부지까지 얻었으나 창고는 끝내 안 지었다. 청일전쟁 이후 일제가 그 부지에 군수물자 창고를 지어서 결과적으로 ‘죽 쒀서 개 준 꼴’이 됐다.     
 
러시아는 삼국간섭을 통해 일본을 견제하고 이를 틈타 조정은 러시아에게 월미도 부지를 일부 내준다. 러시아는 이곳에 부두, 석탄창고, 병원, 연병장, 사격장까지 세웠다. 미국 석유제품 회사 타운센드는 조선의 석유 제품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월미도에 500만 갤런 규모 석유저장고를 건설하는 등 1800년대 후반 열강의 각축장이 됐다. 그러다가 러일전쟁 발발 직후 제물포해전에서 일제가 승리하면서 완전히 그들의 병참기지와 유원지가 됐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의 네이팜탄으로 약 120가구 600여명이 살던 마을이 불바다가 됐다. 미군이 네이팜탄 95발(43톤)을 쏟아붓는 바람에 월미도 주민 상당수가 죽었고 이후로는 미군의 주둔 때문에 고향에 정착하지 못했다. 미군이 떠난 후에는 우리 해군이 주둔하는 등 오랫동안 군사적 기능을 하다가 20여년 전에서야 시민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일제는 월미도에 벚나무 1만5000그루, 상록수 11만 그루를 식재하려고 했고 석탄 창고  뒤 공지 약 1000평에 큰 운동장을 만들고 포플러와 아카시아를 심을 계획을 세우는 등 유원지 녹지화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네이팜탄에 의해 거의 불타 민둥산이 됐다. 최 자문위원은 그때 살아남은 수령 50년 이상 된 수목을 찾아 ‘월미 평화의 나무’라고 이름 붙였다. 이때 수령은 국립산림과학원 강진택 박사가, 스토리는 오경희 박사가 담당했다.        
 
월미공원 남문 쪽만 빼고 얼추 둘러보고 처음 출발했던 공원안내소로 돌아왔더니 최정화 씨가 반겼다. 공원사업소에서 만든 굿즈를 살뜰하게 챙기고 일행을 배웅했다. 기분 좋은 월미공원 올레를 하고 나니 오후 1시간 훌쩍 넘었다. 일행과 함께 북성포구로 향했다. 월미공원 정문에서 십 여분을 걸어가다 보면 대한제분공장이 나오는 데 공장 뒤편이 북성포구다.     
 
북성포구 터줏대감 ‘강화불음도회집’
 
▲ 각종 해산물과 밑반찬으로 그득한 상이 비워질 때쯤 매운탕이 나온다. [사진=필자제공]
 
1883년 제물포 개항과 함께 인근에서 자연 조성된 갯벌 포구다. 점차 매립이 진행되고 있어서 언젠가 사라질 운명에 처해진 곳이다. 이곳 공유수면을 매립한 위에 회집과 새우젓, 수산물을 파는 상인들이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 서너 곳이 남은 회집 중 첫 번 째 집이자 최 자문위원 단골집인 ‘강화불음도회집’엘 갔다.        
 
멀리 목재 찌는 김을 내뿜는 대성목재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마치 선상처럼 느껴지도록 물 위에 가건물을 지었다. 매립되지 않고 물이 들어왔다면 배 위에서 회를 먹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특히 대성목재 뒤로 넘어가는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뷰포인트다. 북성포구 자체가 서해 낙조 작품사진을 건질 수 있는 곳이라서 출사를 많이들 나오는 곳이다.     
 
앉자마자 홀을 담당하는 반연숙 씨가 작은 접시에 주꾸미 삶은 것을 담아 내왔다. 시누인 강분순 씨가 주방을 지키고 올케인 반 씨가 손님을 맞는 구조다. 불음도는 반 씨의 시댁이다. 강 씨가 먼저 이곳에서 40여 년 전에 식당을 열었다. 반 씨는 여고생 때 해군2함대 타이피스트로 들어가 오랜 기간 군무원으로 일했다. 반 씨는 제철 음식으로 주제를 바꿔 말을 이어갔다.     
 
“봄이 한창일 때인 지금은 주꾸미, 소라가 가장 맛있을 때고 5월엔 갑오징어와 병어회가 제철이죠. 바지락도 지금이 제철이고 가을엔 낙지, 전어, 바닷장어, 대하가 좋을 때죠”. 미리 전화를 해놓은 탓에 회를 썰어서 1시간 정도 숙성을 시켰다. 두 번째 쟁반에는 자연산 광어와 생물 꼴뚜기, 밴댕이, 준치회와 멍게가 담겨 나왔다. 뒤 이어 산낙지, 꼬마 게 삶은 것과 깍두기, 파김치, 김치, 새우볶음 등 밑반찬으로 상이 꽉 찼다.  
     
▲ 매운탕에 라면을 넣어 먹거나 이 식당 별미인 해물칼국수로 입가심하는 것도 좋다. [사진=필자 제공]
 
회는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날그날 잡힌 것 시가’라고 써 붙여 놨을 뿐이다. 그렇다고 고가가 아니다. 가성비가 좋은 곳이다. 매운탕과 칼국수, 주류까지 모두 포함해 1인당 3만원정도에 서해 바다를 누릴 수 있다. 자연산 광어는 마치 찹쌀떡처럼 찐득찐득 찰기가 돌았고 달근한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모두 자연산 회만 취급하기 때문에 식감이나 맛만큼은 양식 회와 차이가 크다. 멍게는 최근에 맛본 것 중에서 가장 살이 도톰할 뿐 아니라 향이 살아있어서 한 접시 더 달라고까지 했다. 밑반찬 중 깍두기 맛이 일품이라 레시피를 물었더니 옆자리 앉아서 친절하게도 알려준다. ‘달근매콤’ 깍두기의 비밀은 뉴슈가에 있었다. 기회가 되면 꼭 담아보리라. 해물칼국수에는 커다란 바지락이 넉넉하게 들었고 살이 꽉 찬 갯가재도 맛을 더했다. 이곳도 명색이 바닷가란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북성포구를 갈 때면 물때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도 하루 한번 배가 들어오고 한 달에 두 번 있는 사리 때를 맞춰 오면 사이드반찬(쓰케다시)가 풍성하니 좋다고 조언한다. 또 평일과 저녁에 서비스가 더 좋아진다고 ‘스마트 외식법’을 귀띔했다. 북성포구는 1월 10일경부터 3월 초까지, 7월 20일 경부터 한 달간 겨울철과 금어기에 문을 닫는다.      
 
▲ ‘강화불음도회집’서 바라본 한낮과 낙조 모습. 멀리 대성목재 공장 뒤로 붉은 노을이 아름답게 펼쳐진다.[사진=반연숙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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