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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명치유신 전후로 본격 제기됐던 ‘정한론’
정한론 실현시킬 목적으로 우리 역사서 소각했던 일제
일제, 조선침략·식민지배 대의명분으로 정한론 제시해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1-12-13 10:10:33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일제가 조선에서 많은 역사서들을 약탈하고 20만권이 넘는 책을 소각한 건 아시아의 등불인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학습하면서 숨기고자 하는 목적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정한론(征韓論)을 실현시켜 한국을 영원히 식민지로 지배하려 했던 목적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한론은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 시대에도 제기됐지만 1868년의 명치유신(明治維新)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이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유업을 계승해 대륙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그 교두보가 되는 조선을 정벌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에서는 1863년 대원군이 “서양 오랑캐(洋夷 양이)의 침략에 맞서 싸우지 않는 자는 매국노”라는 내용의 척화비를 전국 각지에 세우고 척사척양(斥邪斥洋)의 쇄국정책을 천명해 병인·신미양요 등이 일어났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도 양이와 같은 무리로 포함돼 배척했다. 
 
1867년 3월초 일본인 야도는 광동성에서 발간된 중외신문에 “조선국왕이 5년에 1번씩 에도로 와서 쇼군을 알현하고 공물을 바치는 것이 예부터의 예의였지만 이를 폐한 지 오래됐으므로 일본은 군함 80척으로 조선을 정토할 뜻이 있다”는 노골적인 정한론을 예고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1869년 초엔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정한론이 제기됐는데 외교관 사다 하쿠보(佐田白茅)는 “조선은 불구대천의 적으로 반드시 정벌해야 하며 정벌하지 않으면 천황의 위엄이 서지 않는다. 30개 대대병력을 동원해 네 길로 나누어 공격하면 50일 내에 정복이 가능하다”며 즉시 출병을 주장했다.
 
그리고 7월 외무대승 야나기하라(柳原前光)는 “북으로는 만주에 연하고, 서로는 청과 접해 있는 조선이 우리 영역으로 된다면 황국보전의 기초로서 장차 만국경략진취(萬國經略進取)의 기본이 된다. 만약 다른 나라에게 선수를 빼앗기면 국사는 이에 끝난다”며 조선을 선점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내정이 불안했고 아직은 구미열강에 비해 힘이 약하니 내치에 충실해 더 힘을 비축하자는 이유로 조선으로의 출병을 연기했으나 일본 외무성은 출병에 대비한 준비를 계속 진행했다.
 
조선에서는 1873년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하면서부터 쇄국정책에 변화가 일어났다. 일본은 정한론의 일환으로 1875년 운양(雲揚)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의 개항을 관철시켰다. 대륙 진출의 교두보가 되는 조선침략의 첫 단추를 꿴 것이었다.
 
이어 청일전쟁에서 승리했고 조선 진출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명성황후를 제거했다. 러일전쟁에서의 승리 후 을사늑약을 체결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고 가츠라·테프트 밀약으로 무풍지대가 된 대한제국을 합병해 정한론이 실천됐다.
 
이러한 정한론의 이론적 근거가 바로 임나일본부설이고 그 모태는 일본의 전신인 왜의 신공왕후가 고구려·백제·신라를 정벌해 복속시켰다는 아래 《일본서기 신공기》의 섭정전조 기록이다. 일본은 이러한 임나일본부설을 위해 호태왕 비문까지 변조했다.
 
▲ 고구려·백제·신라가 신공왕후에게 정벌됐다는 그림. [사진=필자 제공]
 
“이에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 왕은 신라가 지도와 호적을 바치며 일본국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몰래 그 군세를 엿보았으나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영외로 찾아와 머리를 땅에 대고 ‘지금 이후 영원토록 서쪽 제후라 일컫고 조공을 그치지 않겠습니다’고 말했다. 이것이 소위 삼한이고, 황후는 신라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여러 기록으로 미뤄보아 신공왕후의 삼한정벌은 완전 허구임이 분명해진다. 신공왕후의 아들이라는 15대 일왕 응신(재위 390~399)의 재위년도가 고구리 광개토호태왕의 통치시기(392~413)와 겹치고, 백제의 전성기인 근초고·근구수 대왕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런데 호태왕 비문에 “영락 14년(404) 갑진년에 왜가 대방의 경계에 침입해와 (중략) 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하니 왜구가 무너져 패했는데 목 베고 죽인 적이 헤아릴 수가 없었다”는 문구가 있어 위 신공왕후의 삼한정벌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허구의 기록임이 밝혀졌다.
 
고구려와 백제의 최전성기에 신공왕후가 삼한을 정벌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럼에도 광개토호태왕 비문을 조작해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을 정한론으로 발전시켜 조선침략의 대의명분으로 삼아 우리를 식민지배 했던 일본제국주의의 행태야말로 가증스러움 그 자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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