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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독립군 키운 최운산 장군이 봉오동전투의 진정한 영웅이죠”

독립투사 정신을 기리고 역사왜곡을 바로 잡는 비영리사단법인

기사입력 2022-01-06 23:05:53

▲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는 최운산 장군의 독립투쟁정신과 애국애족사상을 계승·발전시키고 연구 부족으로 인해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는 활동을 펼치는 비영리사단법인이다. 사진은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최성주 상임이사(아래)와 김미경 이사 . [사진=남충수 기자] ⓒ스카이데일리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아직 최운산 장군의 존재조차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는 자신보다 민족을 위한 숭고한 삶을 택하고 실천한 최 장군의 삶을 기리고 전승하고자 하죠. 그의 삶을 귀감으로 삼아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그가 지녔던 공동체정신을 되살려 공존적 삶에 관심을 가지는 일에 앞장설 것이에요. 역사왜곡에 맞서 역사의 진실을 찾는 일에도 일조하고자 하죠.”
 
1920년 우리 독립군은 만주 봉오동·청산리전투에서 당시 아시아 최강이던 일본을 상대로 값진 승리를 거뒀다. 흩어진 독립군 부대를 하나로 단결하고 지형지물을 이용한 유인작전과 매복 및 기습공격을 펼치며 일본군을 궤멸시킬 수 있었다. 구한말 의병 수준과 확연히 달랐다. 이들은 북간도에서 오랜 시간 군사훈련을 받고 러시아로부터 박격포, 기관총 등 현대식 무기를 마련하며 정규군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즉, 봉오동전투는 준비된 승리였던 셈이다.
 
독립군의 무장과 보급에 크게 기여한 인물은 당시 만주 최고의 거부로 꼽히던 최운산(1885~1945) 장군이었다. 최 장군은 봉오동·청산리전투를 이끈 군무도독부와 북로독군부, 북로군정서 등 세 무장부대를 창설하고 독립군 연합체인 대한북로독군부 참모장으로서 활약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활약상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연대장이던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의 이름만 기억될 뿐이다.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는 최운산 장군의 독립투쟁정신과 애국애족사상을 계승·발전시키고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아 재조명하는 등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진실한 독립운동 역사를 연구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게 최종 목표다. 연초 서울 중구에 있는 한 모임공간에서 최성주 상임이사(65)와 김미경 이사(48)를 만나 사업회의 활동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미나 개최해 잊힌 독립운동가 재조명…역사적 진실 찾아
 
최성주 상임이사는 최운산 장군의 친손녀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 역사를 듣고 자랐다. 결혼 이후 서울로 온 그는 경실련, 언론인권센터,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시민운동을 이어가는 중에 만주를 거점으로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했지만 활동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할아버지의 역사를 찾아야 함을 생각했다. 역사학계에서 할아버지의 공적을 기록하는 걸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역사를 알고 있는 자신이 스스로 발 벗고 나서야 했다. 그리하여 2016년 비영리사단법인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만주지역 독립운동사는 저희 가족사이기도 해서 어릴 때부터 매일 들었어요. 할머니와 아버지께서 ‘그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늘 말씀하셨죠. 들을 때마다 만화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크고 나서 가족사가 독립운동사의 중심을 관통한다는 걸 깨달았죠. 다른 집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집안 증언이 곧 근현대사였던 것이죠.”
 
“후손이 영향력을 갖추고 있어야 선조의 업적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이 우스개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만주지역 독립운동을 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펼친 것으로 오해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신흥무관학교는 서간도에 있었고 봉오동·청산리전투는 북간도였죠. 봉오동에서 양성한 군인이 무잗투쟁의 주를 이루었고 신흥무관학교 출신 중 몇몇 분들이 북간도로 옮겨왔죠. 이처럼 잘못 알려진 역사가 있다는 걸 알고 이를 바로 잡고자 기념사업회 활동을 시작했어요.”
 
김미경 이사는 방송 활동을 한 전직 언론인이다. 6년 전 제주에서 열린 한 영화제에서 최 상임이사와 인연을 맺은 뒤 기념사업회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기념사업회의 행사를 총감독하고 진행하는 역할을 펼치고 있다.
 
▲ 최성주 상임이사(오른쪽)는 최운산 장군의 친손녀로 2016년 비영리사단법인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를 설립을 주도했다. 김미경 이사는 한 영화제에서 최 상임이사와 인연을 맺은 뒤 기업사업회 활동을 시작했다. ⓒ스카이데일리
 
“최 상임이사님이 기념사업회를 만든다고 말하면서 할아버지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독립운동가의 손녀인지 전혀 몰랐죠. 언론개혁시민연대에서 공동대표를 맡으며 언론운동을 열심히 하신 분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어떤 독립운동가 분인지 물어봤죠. 그러자 저한테 ‘독립운동가들이 먹고 자고 입고 이동할 때 드는 비용을 누가 댔는지’ 거꾸로 물어보시더라고요. 모른다고 했더니 ‘우리 할아버지 최운산 장군이 그 일을 하신 분이다’고 말씀하셨죠. 실은 굉장히 놀랍고 당황스러웠어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숨겨진 이야기잖아요. 그 말을 듣고 나서 저도 기념사업회 활동에 참여하게 됐죠.”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의 활동은 크게 △최운산 장군 3형제의 애국정신과 독립활동을 기리는 제반 기념사업 △학술회의, 세미나 및 교육연수 개최, 연구간행물 발간 등의 학술사업 △최운산 장군 3형제 유적지 복원 및 보존사업 등으로 구분된다. 재작년엔 최운산 장군의 3형제 이야기를 담은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봉오동 현장으로 가서 역사적인 증거가 될 만한 흔적들을 찾아요. 독립군들이 일본군과 싸웠던 산에 직접 올라가서 참호를 발견하고 마을 어르신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기도 하죠. 또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해 최운산 장군 등 잊힌 독립운동가를 새롭게 조명하죠. 그 다음에 서거일에 맞춰 매년 7월 5일 독립기념관에서 추도식을 진행해요. 설립한지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은 조직력이 약해요. 다른 기념사업회와 비교해 예산도 부족해 행사를 열 때마다 각출하고 있죠.”
 
최 상임이사는 6년 간 활동하며 봉오동에서 독립군의 참호를 발견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산에 참호를 판다는 건 소규모 군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병력이 거기에 주둔했다는 방증이다. 대규모 독립군들이 한 달 전에 참호를 파놓고 일본군을 끌어들일 작전을 펼친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놀랐다고 설명했다.
 
“봉오동에 가면 산 지형을 따라서 참호가 파져 있어요. 봉오동 마을이장이 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산에 올라가서 탄피를 주워 오는 게 일이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탄피를 어른들에게 갖다 주면 먹을 것으로 바꿔줬다고 했죠. 세월이 흘러 그게 역사적 유물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어른들에게 다 갖다 줬던 걸 후회한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탄피를 많이 주웠던 장소도 제게 알려줬죠. 실제로 가보니 통로처럼 참호가 길게 파져 있었어요.”
 
“참호를 봤을 때 독립군들이 몸을 숨기고 일본군에게 총을 겨누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날의 긴장감이 확 느껴졌어요. 역사 현장을 가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죠. 역사가 제게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사학자들도 거기서 말을 못하더라고요. 지름이 1.5m 정도 되는 커다란 맷돌도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거기 살았다는 걸 보여주는 유물이었죠.”
 
독립운동 활동 직접 연구해 역사학자들에게 자료 전달
 
최 상임이사는 널리 알려지지 못한 최운산 장군의 업적을 설명했다. 최 장군은 1908년 부친 최우삼과 형 최진동, 동생 최치흥 등 일가족 4대가 봉오동으로 이주해 신한촌을 건설하고 1912년 봉오동사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무장독립전쟁을 준비했다. 1919년에는 대한민국의 독립군부대 군무도독부를 창설하면서 최진동 장군을 사령관으로 추대했고 청산리전투의 주역 부대인 북로군정서을 창설하는데 기여했다. 창설 초기 독립군의 식량과 군복, 무기 공급 등 군자금 일체를 자비로 감당했다.
 
1920년 최 장군은 독립군 통합부대인 대한북로독군부를 창설해 봉오동전투에서 참모장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자유시참변으로 무장 독립운동이 주춤해진 뒤에도 나자구전투, 대황구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다. 이후 일본 관공서를 습격하고 비밀첩보 활동을 맡는 등 독립운동을 이어갔지만 안타깝게도 광복을 한 달 앞둔 1945년 7월 세상을 떠났다.
 
▲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해 최운산 장군 등 잊힌 독립운동가와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주최한 학술세미나의 모습. [사진제공=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최운산 장군은 북간도에서 오랫동안 독립군을 양성하며 봉오동·청산리전투 승리의 기반을 닦으신 분이에요. 봉오동은 독립군의 기지였죠. 봉오동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도 일본이 독립군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였어요. 누구나 두만강을 건너 봉오동으로만 오면 군사훈련을 받아 독립군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훗날 봉오동·청산리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죠. 한 번 툭 던져서 싸웠던 게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준비하고 일본군의 공격을 예견하고 대응했던 전쟁이었어요.”
 
독립운동에 기여한 부분이 상당했지만 최운산 장군은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역사학계가 독립운동사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연구에도 소극적인 것에 그 원인을 찾았다. 방법은 하나였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듯 후손들이 선조들의 독립운동 활동을 직접 연구해서 관련 자료를 학자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역사학계는 세부적으로 나눠진 전공분야가 있어서 각각 세부적인 연구를 하더라고요. 독립운동사는 그 중에서도 마이너라서 연구하는 학자들의 숫자가 적어요. 역사학자들이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정리하길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오리무중이었어요. 대학원에 진학해서 논문을 써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됐죠. 일반적으로 연구를 할때 논문을 쓰면서 기존 논문만을 재인용하니 기존의 오류가 계속 재생산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역사적 사료를 발견하면 역사학자를 찾아가 연구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죠.”
 
‘최운산 정신’에 대해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선구자다. 북간도 지역에서 성냥·비누·콩기름 등 생필품 공장을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은 최운산 장군은 오늘날 화폐가치로 수백억에 달하는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부었다. 수천 명에 이르는 독립군을 먹이고 입혔으며 무장시켰다. 봉오동전투의 승리 요인으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선구자처럼 먼저 시작하는 분이셨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이 발생해 누군가는 나서야 할 때 먼저 앞장서셨죠. 할지 말지 망설이거나 누군가 싸울 때 경제적으로 뒤에서만 도와주지 않았어요. 시대에 필요한 몫을 자임하면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셨죠. 역사 속에서 그런 일을 하신 분들이 있잖아요. 그 중에 한 분인 것이죠.”
 
끝으로 최 상임이사는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의 최종 목표가 역사 재정립이라면서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밝혔다. 우선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북간도 무장투쟁에 대해 재개념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폭탄을 던진 몇몇 유명 인물들만이 아니라 수천의 우리 선조들이 목숨 걸고 일본과 싸웠다는 사실을 대중에 전달하고자 한다.
  
“역사를 공부하면 선조들처럼 우리도 각자의 몫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기회로 다가오죠. 지금도 어려운 일들이 많잖아요. 고쳐야 할 것도 많고 바꿔야 할 것도 많은데 그때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게 저희의 바람이나 목표라고 할 수 있죠.”
 
“또 하나 있다면 청년들이 독립운동사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대부분 봉오동·청산리전투에서 몇몇 사람들의 이름만 알 뿐 자신과 별개라는 식으로 역사를 외면하더라고요. 독립군의 희생으로 오늘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행사를 열거나 현장에 함께 가서 보여주고 싶죠. 또한 최운산 장군의 역사적 평가가 다시 써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에요.”
 

 [윤승준 기자 / sjyoon@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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