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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고구리에게 항복하고 식민지가 된 왜나라

비문징실에서 확인 가능한 호태왕의 왜 토벌 내용

일제의 역사왜곡으로 호태왕비문 내용 일부 훼손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1-21 09:40:29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이유립 선생이 집필한 《대배달민족사》에 수록돼있는 계연수 선생이 남긴 ‘광개토성릉비문결자징실(廣開土聖陵碑文缺字徵實)’ 일명 ‘비문징실’의 문구 중 아래 적색부분이 왜 관련 내용인지라 일제가 훼손시켰음이 분명하다. 이를 복원하면 호태왕비문의 원래 내용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원문) 十年庚子敎遣步騎五萬往救新羅從男居城至新羅城倭滿其中官軍方至倭賊退官兵由新羅躡踵追來背急迫至任那加羅從拔城城即歸服安羅人戍兵拔新羅城都城倭寇大潰城大被我攻盪滅無遺倭遂以國降死者十之八九盡臣率來安羅人戍兵滿假改慮倭欲敢戰與喙己呑卓淳諸賊謀再擧官兵制先直取卓淳而左軍由淡路島到但馬右軍經難波至武藏王直渡竺斯諸賊悉自潰分爲郡國安羅人戍兵”
 
“(해석) 10년(경자년)에 보병·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라는 교지를 내렸다. 남거성부터 신라성까지 왜인들이 그 가운데 가득 있다가 관군이 도착하자 왜적들이 모두 퇴각했다. 관병은 신라를 따라 바짝 추격해 임나가라(任那加羅)에 이르기까지 배후에서 급박하게 줄줄이 성을 공략해 안라사람으로 지키게 했다.
 
신라성과 도성을 공격하니 왜구가 모두 패해 달아났다. 성을 크게 정비하고 우리가 공격해 남김없이 쓸어 없애자 왜가 드디어 나라를 들어 항복해왔으며 죽은 자가 열에 여덟아홉이요 남은 신하들을 데리고 오매 안라사람으로 지키게 했다. 왜가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했다가 마음을 바꿔먹고 감히 싸우려고 훼, 기탄, 탁순의 여러 도적들과 다시 일어나려고 모의했다.
 
관병이 먼저 이를 제압하고자 탁순을 아우르고 좌군은 담로도를 거쳐 단마에 이르고 우군은 난파를 지나서 무장에 이르자 왕께서 직접 배로 축사를 건너시니 모든 도적들이 다 스스로 무너졌다. 이를 나눠 군국(郡國=식민지)을 만들고 안라사람으로 지키게 했다.”
 
위 비문징실의 주 내용은 신라 구원을 위해 출동한 5만의 고구리 보·기병이 퇴각하는 왜적들을 본토까지 추격해 쓸어버리자 80~90%의 병력이 죽은 왜가 나라를 들어 항복(國降)했다. 이후 왜가 변심하니 호태왕이 직접 출전했고 결과 모두 고구리의 식민지(郡國)가 됐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의 근거가 되는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해 조선을 지배하려던 일제가 임나일본부설과 정반대되는 내용이 새겨져있는 호태왕비문을 그대로 둘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치스러운 내용은 없애버리고 세칭 신묘년기사까지 왜곡시켰던 것이다.
 
‘비문징실’로 복원된 호태왕비문의 내용은 『고구리사초략』에 “10년(400) 경자 2월 왜가 신라에 침입했다는 보고를 듣고는 서구와 해성에게 5만의 병력을 이끌고 가서 구원해 왜를 물러나게 했다. 임나·안라·가락 등 모두가 사신을 보내 입조했다. 남방이 모두 평정됐다”고 간단히 기록돼 있다.
 
게다가 “12년(402) 임인 9월에 동명대제(東明大祭)를 거행했다. 왜·신라·진(秦)·연(燕)·진(晉)·맥(㹮)·백제·가야 등 여덟 나라의 여인들이 춤사위를 올리고 곡을 불어 바쳤다. 나라가 있어 온 이래 처음으로 있었던 성대한 의식이었다. 상이 왜의 사자에게 이르기를 ‘너희 나라는 멀리 물 가운데 있으면서도 성심으로 공물을 가져오길 백년이 지났음에도 한 점 변함이 없었으니 충성스럽다 할 것이며 (중략) 돌아가거든 너희 왕에게 딸을 후궁으로 바치고 아들을 보내 학문하게 하라고 말하고 영원한 신민(臣民)이 되어 너희나라에 널리 짐의 교화가 미치도록 하라. 뿐만 아니라 (신라왕) 보금(宝金)은 짐의 고굉지신이고 그의 처가 짐의 딸이거늘, 너희 왕이 아신과 더불어 혼인하고 보금을 도모함은 결단코 불가하다. 이날 이후로 보금과 화친하며 서로 혼인해도 좋다‘라 했더니 왜가 미해(美海)를 사위로 삼고 화친했다. 미해는 겨우 10살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보금은 신라 내물왕의 조카로 훗날 실성(實聖)왕이 된다. 어릴 때 고구리에 볼모로 보내졌고 내물왕이 죽었을 때 아들이 어려 신라왕으로 봉해졌다가 훗날 내물왕의 아들 눌지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삼국사기』 “실성이사금 원년(402) 3월 왜국과 우호를 맺고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왜왕의 사위가 되는 미해가 바로 미사흔으로 눌지왕의 동생이다.
 
고굉지신(股肱之臣)이란 다리와 팔과 같은 신하란 뜻으로 왕이 가장 믿고 중하게 여기는 신하를 비유하는 말이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순(舜)임금이 우(禹)에게 “신하들은 짐의 팔과 다리요, 눈과 귀가 되어야 하오. 내가 백성들을 보살피려 하면 그대는 (날개가 되어) 옆에서 도와주고 내가 사방을 위해 노력하면 그대가 함께 해 주시오”라고 말했다는 데서 유래됐다.
 
위 ‘고구리사초략’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왜국은 고구리의 제후국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과연 왜가 정말로 항복했는지, 또 식민지가 됐다는 내용에 대한 다른 기록은 없을까. 보다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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