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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실성왕과 눌지의 극단적인 갈등

눌지 제거 실패가 불러온 최초의 군사쿠데타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7-02 11:15:13

 
▲ 정재수 역사작가
실성왕은 서기 415년(실성왕 14년) 눌지(訥祗)를 경주 도성에서 내쫓는다. 명분은 북로(北路) 시찰이다. 그리고 실성왕은 은밀히 고구려인에게 눌지를 암살하라는 밀명을 내린다. 그러나 눌지의 암살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삼국사기 기록이다. ‘고구려인이 눌지의 외모가 시원스럽고 정신이 고아해 군자의 풍모가 있음을 보고 도리어 고하길 “그대 나라 왕이 나에게 그대를 죽이라 했으나 지금 그대를 보니 차마 죽일 수가 없구나”하고 곧바로 되돌아갔다(麗人見訥祗 形神爽雅 有君子之風 遂告曰 爾國王使我害君 今見君 不忍賊害 乃歸).’ 고구려인이 실성왕의 밀명을 따르지 않고 눌지를 살려준 것이다.
 
태자가 된 내물왕의 적자 눌지
 
눌지는 내물왕의 직계아들이다. 내물왕은 보반(保反·미추왕 딸) 여왕을 통해 4명의 아들을 얻었다. 눌지(387년생), 보해(복호·390년생), 미해(미사흔·393년생), 실상(實相·395년생)이다. 특히 내물왕은 실성왕에게 왕위를 넘겨주며 보반여왕을 왕후로 맞이할 것을 유명(遺命)했다. 이에 따라 실성왕은 즉위하면서 곧바로 보반 여왕을 제1왕후인 상궁(上宮)에 봉했다.
 
원래 눌지는 내물왕의 8번째 아들이다. 하지만 보반 여왕이 낳은 첫 번째 아들인 까닭에 내물왕의 직계 아들 중에서는 가장 골품이 높은 적자(適子)가 된다. 삼국사기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신라사초에는 눌지가 태자에 책봉된 기록이 있다. 실성기’ 기록이다. ‘수호 원년(402년) 눌지를 태자로 삼고 초로를 태자비로 삼았다. 대개 내물이 남긴 유촉이다(水虎 元年 訥祇爲太子初老爲太子妃 盖奈勿之遺囑也).’ 눌지의 태자 책봉은 내물왕의 유촉(遺囑)에 따른 조치다.
 
특히 신라사초’ 실성기는 흥미로운 기록 하나를 남긴다. ‘보반후(여왕)가 신제(실성왕)에게 말하길 “내가 그대를 계부(繼夫)로 삼은 것은 그대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선제(내물왕)가 그대를 아꼈기 때문이다. 원컨대 선제의 자식들(遺兒)을 보호해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해달라”하니 제(실성왕)는 따르겠다(諾)고 말했다(保反后謂新帝曰 吾所以君爲繼夫者非君之美也 先帝愛君之故也 願保先帝遺兒以洽我心 帝曰諾).’ 보반 여왕은 실성왕의 왕후가 되면서 자신이 낳은 내물왕의 아들들을 특별히 보호해 달라 당부하고 실성왕 또한 이를 약속했다.
 
그러나 실성왕은 보반 여왕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눌지의 동생인 미해와 보해를 각각 왜(야마토)와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내물왕의 적자인 태자 눌지마저 제거하기로 마음먹는다.
 
눌지 제거는 태자 교체 시도
 
그렇다면 실성왕은 무슨 이유로 눌지를 제거하려 했을까? 단순히 내물왕에 대한 복수심 때문일까? 신라사초는 또 다른 이면을 소개한다. 눌지천왕기이다. ‘실성이 고구려에 십년 동안 있으면서 속으로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다. 이에 돌아와 즉위하게 되자 내물의 아들들을 아끼지 않고 모두 볼모로 밖으로 내보냈다. 보반이 청연을 낳자 실성이 말하길 “청연은 너와 내가 함께 낳았지만 눌지는 내 소생이 아니다. 마땅히 청연에게 물려줘야 할 것이다” 말했다(實聖在麗十年 怨心內生 及歸卽祚 不愛奈勿之子 皆質于外 保反及生靑淵 實聖曰 靑淵爾我共生 而訥祇非我生也 宜傳于靑淵).’ 실성왕은 왕후 보반 여왕이 낳은 자신의 직계아들 청연(靑淵)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을 굳힌다. 그래서 눌지 제거를 계획했다.
 
이어지는 기록이다. ‘당시 내류와 아로는 천왕(눌지)의 편이 되어 간하길 “눌지는 내물의 정골(正骨)입니다. 그를 폐하면 필히 신벌(神罰)이 있을 겁니다” 했다. 실성은 이를 듣지 않고 천왕으로 하여금 북로를 순시하게 하고 고구려인에게 밀명을 내려 잡게 했다. 천왕이 고구려의 군중에 있는데 신이한 광채를 지녀 고구려 장수 패세가 감히 핍박하지 못하고 그 딸을 바쳐 국경으로 나아가게 했다(時 內留阿老黨于天王以諫之曰 訥祇乃奈勿之正骨也 廢之則必有神罰 實聖不聽使天王出視北路 密令麗人得之 天王在麗軍 有神彩麗將沛世不敢窘之 以其女獻之使出境上).’
 
실성왕은 눌지를 태자에서 폐하려다 왕후인 내류(內留)와 아로(阿老)가 반대하자 아예 북로 순시를 명해 경주 도성에서 내쫓았다. 그리고 고구려 장수 패세(沛世)에게 암살하라는 밀명을 내렸다. 하지만 패세가 실성왕의 밀명을 받들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딸을 바치며 눌지를 살려준다.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눌지
 
 
▲ 보반 여왕의 가계도. [사진=필자 제공]
 
실성왕의 눌지 제거 실패는 단순히 실패로만 끝나지 않았다. 눌지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실성왕을 왕위에서 끌어내렸다. 눌지천왕기이다. ‘비열성주 호물(好勿)이 이에 눌지를 받들어 천왕(天王)으로 삼자 북로가 모두 귀부했다. 패세(沛世) 역시 그를 도와서 진격해 실성을 공격해 꺾었다(比列城主好勿乃奉爲天王 北路悉附之 沛世亦助之 進攻實聖克之).’ 궁지에 몰린 눌지는 북로의 도움을 얻어 군사를 이끌고 경주 도성을 공격해 아예 실성왕을 무너뜨렸다.
 
군사쿠데타를 성공시킨 눌지왕이 남긴 말이다. “우리 조종이 나라(왕위)를 전해온 이래로 오직 선양(禪讓)만 있었을 뿐 상벌(相伐)한 일은 없었다. 과인의 시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불의(不義)를 정벌(征)했다. 과인의 잘못(過)이다(我朝宗傳國以來 唯以禪讓 未有相伐 至寡人之世 始征不義 寡人之過也).”
 
역사는 아주 오래전에 신라에도 군사쿠데타가 있었다고 분명히 전하고 있다. 눌지왕의 마지막 말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과인의 잘못이다(寡人之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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