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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잘못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피해구제법, 가습기살균제 사업자에게만 책임 전가는 잘못
원료물질 사업자와 정부도 동등 책임 부담하는 법 개정 필요
이동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10 10:22:55
▲ 이동호 변호사
필자는 6월29일자 본지 칼럼(인혁당 손해배상 판결, 하급심·대법원 왜 오락가락했나)에서 다음 회에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해 살펴보겠다고 한 바 있다. 인혁당 사건은 국가의 불법행위가 분명하니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하게 하기보다 국가가 특별법을 제정해 배상했어야 한다. 반면에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배상책임자나 배상 비율이 아직 명확히 가려지지 않은 사건인데 이런 사건은 섣불리 특별법을 제정해 배상을 ‘강요’하기 보다는 우선 소송으로 인과관계와 기업의 책임 여부가 밝혀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필자가 이렇게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주목한 계기는 가습기살균제 관련 9개 기업이 참여한 가습기살균제 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을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인 레킷벤키저(옥시)와 애경산업이 거부했다는 지난 4월경의 보도였다. 그런데 필자가 이 사건을 다뤄보겠다고 예고한 후 공교롭게도 JTBC가 8월 초부터 가습기살균제 참사 11주년 기념 탐사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이 사건을 다룰 시의성은 충분히 갖춰졌다고 보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신속하게 구제하자는 ‘좋은 명목’으로 제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피해구제법)이 피해구체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2011년 이후 박근혜정부 말기였던 2016년에 국회 차원에서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리고 피해자와 유족들을 우선 신속하게 구제한다는 목적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의 가습기살균제 피해보상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이 마련되어 2017년 2월8일 드디어 피해구제법이 제정되었다. 이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시기로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도 맹활약했었다. 쉽게 말해 적폐 청산이 본격화되던 때에 이 사건 해결도 급물살을 탔던 것이다.
 
피해구제법의 핵심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신속한 구제를 위해 2000억원 범위에서 특별구제계정을 설치하되 이 중에 1250억원은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관련 기업들이 피해구제분담금 명목으로 출연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었다.
 
사실 가습기살균제가 문제된 폐질환 등을 정말로 유발했는지는 여전히 과학과 의학 영역으로 법적 다툼이 있어서 배상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자칫 위헌의 소지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피해 유발의 개연성이 있는 것은 분명했고 가습기살균제를 가장 많이 판매했던 옥시도 책임을 인정했었다. 그래서 피해구제법의 취지와 선의는 충분히 공감이 갔다.
 
그런데 가습기살균제 사건에는 원료 물질인 PHMG와 CMIT/MIT를 제조한 원료물질 사업자와 원료 물질의 안전성 검사를 통과시켜 준 정부, 그리고 원료물질로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사업자 등 세 부류의 책임자가 있다.
 
우선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의 최초 제조자는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었다. 유공이 이 원료물질을 첨가한 가습기살균제를 1994년에 출시해 히트를 치자 동양화학그룹 계열사였던 옥시도 이 물질을 구입해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팔았던 것이다. 옥시는 외환위기 이후인 2001년에 영국의 글로벌 기업 레킷벤키저에 인수되었다. 
 
그런데 이 원료물질은 정부의 안전성 검사를 그 당시 통과하거나 면제받았다고 한다. 물론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정부의 안전성 검사가 허술했거나 안전 기준이 느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시판 중이고 정부 안전성 검사도 통과했으니 옥시는 안전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고 변명할 여지도 없지 않다.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을 개발해 판매한 이런 역사를 보면 폐질환 유발 등 불법행위에는 분명히 3개 부류의 ‘공동’ 불법행위자가 있다. 그렇다면 일단 위 3개 행위자들에게 동등하게 ‘1:1:1’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구제분담금도 동일한 비율로 출연하게 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맞다.
 
그런데 피해구제법은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해당 가습기살균제 사업자가 그 피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하여 배상책임자를 가습기살균제 사업자로만 국한시켜 버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원료물질 사업자와 정부가 배상책임에서 제외되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원료물질 사업자에게도 가습기살균제 사업자가 납부하는 분담금의 25%를 납부하게 했다. 물론 2008년 8월에 정부도 기금을 출연하는 것으로 법이 개정되었지만 책임 비율도 없고 출연 시기도 정해진 게 없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배상책임이 가습기살균제 사업자에게 있다고 하면서 원료물질 사업자에게도 분담금을 납부하게 한 것이다. 이 부분은 자칫 위헌 소지도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 비율이 고작 25%라서 오히려 원료물질 사업자에게 특혜를 준 면이 크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원료물질 사업자의 책임을 제일 크게 봐도 무리가 아닌데 그 책임이 4분의 1로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대체 무슨 근거로 원료물질 사업자의 분담 비율을 25%만 인정한 것인지를 찾아보았다. 당시 국회 환노위 회의록에 보니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인 한정애 의원이 그렇게 발표한 사실만 확인되지 비율을 산정한 근거 자료는 찾아지지 않았다. 의원들의 질의조차도 없었다. 즉 결론만 있지 근거나 기준은 물론 논의 내용도 없는 쉽게 말해 ‘깜깜이 분담비율이 책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원료물질 사업자의 책임은 곧 수면으로 부상되고 말았다. 그래서 2017년 12월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SK(유공)에 면죄부를 준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발표했었다. SK측 임직원들이 대거 기소되기도 했었다. 최근 활동이 종료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도 지난 6월9일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있어서 SK케미칼 등이 원료 물질에 위해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했는데도 안전성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제품을 출시했고 정부도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음을 밝혀냈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었다.
 
피해구제법 제정 당시 환노위 법안소위위원장이었던 한정애 의원은 문재인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이 되었고 그가 조정위원회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 조정은 실패하고 말았다. 피해구제법이 정한 잘못된 배상 비율을 그대로 밀고 갔으니 옥시와 애경산업이 동의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 본다. 정부의 책임을 질타하는 피해자 단체들도 있는데 이렇게 책임을 져야할 정부가 빠진 조정이 귄위를 갖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3개 주체가 동등한 책임을 지도록 피해구제법을 전면 개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피해자들이 신속하게 구제받을 수 있는 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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