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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이의 도시인문학
광장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광화문, 지나치는 곳 아닌 머무르는 공간으로
다양한 삶이 만나는 광장엔 사람의 향기 가득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8-17 08:48:17
 
▲ 유영이 도시공간문화 전문 칼럼니스트
 광화문 광장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걸어서 만날 수 있는 면적이 넓어지고 지하 공간과 연계되어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능한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되어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광복절 연휴에 찾은 광화문 광장은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광복 77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와 함께 ‘위드 코로나’ 시대,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만날 수 있다. 서울, 나아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넓은 마당인 광화문 광장에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낮에는 더운 여름 날씨에 어울리는 분수대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 물기둥이 아치를 그리며 솟아오르면,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광장을 메운다. 한쪽에선 바닥분수에 아예 드러누운 아이가 눈에 띈다. 
 
광장이 순식간에 작은 수영장이 되고 물놀이하는 공원이 되었다. 옛 물길을 따라 만들어진 잔잔한 물가에는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차가 다니던 광장을 걸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물을 흘려 주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머물며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광화문 광장을 방문한 날, 바닥분수 한쪽에는 돗자리를 펴고 물놀이를 나온 한 가족이 눈에 띄었다. 공원에 나들이 간 것과 광장 나들이는 다를 바가 없지만 광화문 광장과 돗자리의 조합이 새삼 낯설게만 다가왔다. 차도에 둘러싸여 섬처럼 느껴졌던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돗자리는 걸어서 통과하는 너른 마당이 아닌, 더 많은 시간을 머무르는 장소로 광장이 변화했다는 증거처럼 다가왔다.
 
공공 공간에 어떤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인가. 설계가들이 도시의 공원이나 광장을 접할 때 만나는 물음이다. 공공 공간은 말 그대로 ‘개방의 정도가 높아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한 물리적 공간’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불특정 다수, 즉 모두(public)를 위한 공간이라는 뜻을 갖는다. 특정 계층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장소이다.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인 광장의 프로그램은 매우 자유롭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모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공공 공간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 시민의 공간으로 학습된 장소에서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 것인가. 중세 시대에는 도시의 중심에 있는 광장을 사용하기 위해 교회의 허가를 구해야 했다. 이에 비하면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전혀 다른 질문을 마주하게 한다.
 
▲ 차도에 둘러싸인 섬에서 도보로 이어지는 너른 마당이 된 광화문 광장이 우리의 일상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 © 서울시
  
광장과 비슷한 성격의 공공 공간인 공원의 경우 서울의 공원 사이트에 따르면 생태·공예·농사·가드닝·역사·환경·생활체육 등 교육 분야 프로그램과 탐방·문화행사 등 프로그램을 분류하고 있다. 공공 공간이 시민들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공간으로 여겨져 프로그램이 기획·운영되고 있다. 광화문 광장도 공간 그대로가 아닌 축제의 현장처럼 무언가 지속적으로 기획되고 운영되어야만 하는 시스템을 갖춰 나가야 할 것인지 의문이 생겨난다.
 
공공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도시를 향유하는 시간을 다채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방문할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과 벤치나 조형물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찾으며 공간을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를 갖게 된다.
 
광화문 광장은 설계안의 주제 ‘Deep Surface(과거와 미래를 깨우다)’처럼 공간적·내용적으로 다양한 층위를 엮어 내고자 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특히 수직적으로 쌓여 있는 여러 시대의 이야기를 켜켜이 담고 지하공간과 지상을 엮어 광장을 이용하는 다채로운 시각을 열어 주고자 노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너른 마당으로서 작동하는 광장을 표면적으로 구성하면서도 개인마다 다르게 공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한 점도 인상 깊다. 광장의 프로그램에 관하여 설계 참여자의 인터뷰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건넨다. “광장이라는 게 무언가 설계는 해야 하지만 광장이기 때문에 비워야 해서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무와 바닥 포장에 집중했고 패턴에 시민 개개인의 다양성을 반영하며 벤치에 ‘ㅕ’와 ‘ㅑ’를 새겨 야당과 여당 의원들이 화합을 이루는 벤치를 만들었다고 한다. 나아가 개인적인 기억을 위해 훈민정음 28글자를 여러 장소에 숨겨 놓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필자가 광화문 광장을 찾은 주말 저녁 해질 무렵 광장에 아름다운 음의 선율이 울려 퍼졌다. 광복 77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리고 계단과 벤치에 앉은 시민들은 음악회를 감상하며 광화문 광장을 박수 소리로 가득 채웠다. 
 
공연이 끝난 후 야간 조명이 멋들어진 광화문과 주변 건물의 미디어 파사드를 감상하며 여름밤의 추억을 만드는 이들이 광장을 수놓았다. 낮에 들렸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밤에 들린 박수 소리가 교차하며 공공 공간에서의 프로그램은 바로 사람들의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를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광장은 도시를 담고 세상을 마주한다. 광장의 안과 밖은 자연스레 보고 보이는 관계를 갖는다. 광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광장과의 물리적인 접점을 통해 나와 다른 삶을, 혹은 시각을 만난다. 보고 보이는 수많은 관계 속의 도시에서 광장은 언제나 무대와 관중을 등장시키는 장소로 작용한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 모습이 우리가 누려야 할 공공 공간에서의 프로그램이 아닐까. 사람의 향기가 가득한 광장이야말로 도시를 상징하는 넓은 앞마당으로서의 자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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