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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와 일반 예술대학들이 한예종 관련 법안의 국회 상정을 두고 막느냐 뚫느냐의 한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이 세 번째다. 1999년과 2004년, 2021년에 각각 ‘한예종 설치법’이 발의되면서부터다. 논란의 핵심은 한예종에 석·박사 학위과정을 두겠다는 것이다. 전국 44개 예술대학은 ‘한예종 설립 취지에 맞지 않고 편법적인 특혜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며 법안의 본회 상정을 저지하고 있다.
한예종은 교육부의 관리를 받는 정식 대학이 아니라 문화부의 관리를 받는 ‘각종 학교’로 분류된다. 대학 졸업생과 같은 학력을 인정받기는 하지만 대학교와는 다른 실기 전문 교육기관이다. 노태우정부 때인 1991년 설립된 한예종은 영재교육을 위한 콘서바토리 역할을 하자는 것이었다. 성악·기악·미술 등 예술분야 영재들을 위한 전문교육 기관으로 설립됐다. 영재교육을 위해서는 외국의 전통 있는 교육기관에 유학하지만 상당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여건이 좋은 경우라면 유학비를 감당하겠지만 대부분은 재능이 있어도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
한예종은 한국예술종합학교설치령이 통과됨에 따라 1991년 12월30일에 설립되었다. 1993년 3월에 음악원이 처음으로 개원했고, 연극원(94년 3월)·영상원(95년)·무용원(96년)·미술원(97년)·전통예술원(98년)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영재를 집중 교육하는 미국 줄리어드 스쿨을 모델로 삼았다. 서울 석관동의 본원 외에도 대학로와 서초동에 별도의 캠퍼스를 두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설치령이 제정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교육기관 설립 및 운영을 주무하는 교육부가 타 부처인 문화부에 권한을 넘겨주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다른 부처들도 모두 해당 분야의 전문 고등교육기관을 갖고 싶었기 때문에 문화부만 이런 예외적인 권한을 받는 걸 견제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설치령은 국무회의에 상정된 뒤에도 한참 동안 계류됐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이어령은 이러한 부처 간 알력을 돌파하기 위해 교육부를 압박했고, 결국 1991년 12월30일 개각 직전 마지막 국무회의에 이 안건을 상정했다. 예상대로 타 부처 장관의 반대가 있었으나 이 장관의 뜻대로 설치령이 통과됐다. 실세 장관의 위세에 다른 장관들이 눈치를 보는 분위기였다.
부처 밖에서는 한예종이 영재교육을 한다면서도 연극원·영상원을 포함한 것을 두고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종합예술대학 구색을 갖추기 위한 시도가 아니냐는 이견이 있었다. 음악·미술·무용·전통예술원 등은 개인을 발굴하는 영재교육이 가능하지만 연극·영화는 연출·연기·촬영·극작 등 하부 전공이 세분화된 종합실기 성격이 강하다. 한두 명의 재능이 특출나다고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재능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문화예술 10개년 계획을 발표했고, 초대 문화부 장관에 임명된 이어령은 재임기간 중의 치적으로 내세우기 위해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한예종 설립을 밀어붙였다. 기형적인 구성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예술영재 교육기관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한예종은 일반 대학과 달리 교육부 관리를 받지 않으면서 일반 대학이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넉넉한 예산과 교수 요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 음악원 24명, 연극원 31명, 영상원 26명, 무용원 17명, 미술원 22명, 전통예술원 17명 등 모두 137명의 전임교원을 확보하고 있다. 국공립·사립을 막론하고 일반 대학은 꿈도 꿀 수 없는 수준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지원자 수 감소·등록금 동결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예종은 학생 수에 관계없이 문화부 예산으로 교육시설·기자재·교원 등의 확보가 가능하다. 올해 예산도 815억7289만 원을 쓰고 있다. 학생들 개별 등록금은 일반 대학의 절반 수준이다. 수도권 소재 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이 500만 원 내외인 데 비해 한예종은 250만 원 수준이다.
교육부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 문화부 예산으로 시설·기자재·교원 등을 필요한 만큼 확보할 수 있고, 등록금도 절반 수준으로 낼 뿐이다. 손발을 묶은 선수와 글러브도 끼지 않은 선수가 싸우는 격투기 시합이나 다름없다. 처음부터 경쟁은 언감생심이다. 한예종이 예술영재를 발굴·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 교육을 독과점하며 왜곡시키는 주범이라는 비난까지 나오는 이유다.
음악·무용 등 일부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뒤집어 보면 그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도 겨우 그 정도의 성과를 자랑하느냐고 핀잔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한예종 출신 중에서 고만고만한 성과를 낸 경우는 있지만 세계를 압도할 만한 스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설립 30년의 역사를 자랑하기에는 초라한 성과다. ‘한예종 설치법’은 부자가 더 많이 갖겠다며 ‘부자지원법’을 만들어야겠다고 우기는 격이다. 설립 취지에도 맞지 않고 공정의 상식에도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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