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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옥의 열사일침(烈士一鍼)]
만일 그들이 없었다면… 두 번째 이야기
정창옥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03 11:32:25
 
▲ 정창옥 길위의학교·긍정의힘 단장
계란이 왔어요. 계란이.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 70세를 바라보는 여성이 소형화물차를 몰고 계란을 팔러 다닌다. 그의 남편은 목사이고 아들은 의사다. 윤선희(65) 씨가 계란을 파는 이유는 가족이 운영하는 외국인 쉼터 운영비를 보태기 위해서다. 외국인 쉼터는 이주노동자들의 의료·임금체불·산업재해 해결과 다문화가족을 위해 마련된 쉼터다.
 
시력을 잃은 외국인,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빈곤국가 노동자들, 난민이 되어 세상을 떠도는 디아스포라 수백 명이 이곳을 거쳐 갔다. 지금도 캄보디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민주화투사 가족을 돌보며 망명정부를 개척 중에 있다. 목사인 김영수 원장은 불우 외국인의 아버지로 불린다.
 
1991년 흑인 로드니 킹은 마약을 하고 질주하다 캘리포니아 순찰대에 체포되었다. 경찰에 무차별 폭행을 당한 킹은 다리뼈가 부러졌고 1년 동안 진행된 재판은 폭행 경찰 4명은 무죄로 선고했다. LA폭동 사건의 방아쇠였다. 흑인들은 분노했고 거리는 무법천지였다. 건물은 불탔고 성난 폭도들은 닥치는 대로 상점들을 털었다. 정부는 주방위군과 해병사단·공수부대 등 13500명에 달하는 사단급 군대를 투입해 1주일 만에 폭동을 진압했다. 그 결과 사망 58, 부상 2300여 명, 1300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LA의 대표적 흑인 게토인 컴턴은 코리아타운과 토랜스의 한인타운 사이에 끼어있다. 유대인들이 과거 정육점·슈퍼·세탁소 등을 운영하던 곳에 한국인들이 대신 들어와 악착같이 일했다. 백인지역에 살며 돈은 흑인지역에서 번 것이다. 흑인들은 한인들을 돈벌레로 여겼다. 인종 간 불신이 싹텄고 그 화살이 코리아타운으로 향한 것이다. 상생보다는 자신만 잘살면 된다는 한국인의 태도는 백인 사회에선 모범시민으로 받아들여졌지만 흑인 사회에선 무례함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폭동이 한창일 때, 주정부 헬리콥터가 항공촬영 중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선 광경을 생중계했다. 생필품을 무료로 나눠 주는 홍정복 씨의 벤네스마켓 앞에 늘어선 줄이었다. 평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흑인과 히스패닉을 도와준 선행으로 마마(MAMA)’라는 별칭을 얻은 그의 가게는 흑인들과 갱단이 지켜 줬다. 그러나 그는 7년 후 무장강도에게 살해당한다. 흑인갱단은 범인을 처형시키겠다는 경고문을 거리마다 붙였다.
 
지난해 12월22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바다의 길, 사돈의 나라 한·베트남 수교 3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주최자는 의외로 민간단체였다. ·베수교기념한국위원회와 전직 대사협의회, 코리아글로벌국제학교였다. 민간이 주최하고 외교부와 대사관이 협찬하는 전형적인 선민후관(先民後官) 민간외교의 현장이었다
 
1만 명의 대학생들 중 한국어학과 학생이 600명에 이르고 베트남 전체로 확대하면 2만 명이며 기업에 취업할 경우 월급여가 2배 높을 정도로 한류바람이 뜨거웠다. 그런데 얼마 전 한·베트남을 이간질하는 가짜뉴스가 유튜브에 퍼졌다. 배후는 중국·북한으로 의심되었다. 그러자  비행기·숙박·음식 등 모든 비용을 자부담하며 실무를 담당한 김석우 공동대표·조형곤 단장·김석규 이사의 저인망 민간외교가 베트남 구석구석을 챙겼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빈민촌과 플라멩코 걸인촌 공동화장실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조금 떨어진 공동우물은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집이라곤 낡고 허물어진 벽에 양철지붕만 덜렁 올려놓은 것으로 그 안에서 검은 아이들이 퀭한 눈으로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동은 부모가 에이즈로 사망했다. 전몽월 목사는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화장실과 공동우물을 깨끗이 정비하고 탁아소와 학교·새 집을 지어 주었다. 며칠 전 563번째 집이 완성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녀는 케냐와 부르키나파소에 고아원을 설립하고 애국·애족·효 정신을 바탕으로 남아공 컬리쳐 빈민아동을 시작으로 가나·인도네시아·볼리비아·우간다 빈민아동들을 지원했다. 230여 명의 아동이 새 삶을 찾았고 심장병 치료로 새 생명을 얻은 아동도 7명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담임목사로 있는 교회는 돈이 없어 작은 개척교회를 전전한다. 교회랄 것도 없이 사무실 한켠에서 더부살이 하는 것이다. 30년 동안 목마른 자들에게 한 바가지의 마중물로 사랑을 적셔 주는 사랑의 옹달샘, 전 목사가 운영하는 사단법인 나누리의 작은 몸짓이다.
 
1972년 한국에서 최초로 인권운동을 시작한 국제엠네스티는 출범 50년을 맞는다. 낙태와 양심적 병역 거부자·성소수자는 물론 자유와 평등·기후위기·비차별 등을 젠더 기반의 확대경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한국은 세계 인권단체가 앞다퉈 진출하고 싶어 하는 국제무대의 블루오션이다.
 
만일 윤선희·김영수 목사 부부가 없었다면 디아스포라는? 만일 홍정복 씨가 없었다면 흑인 사회와의 갈등은? 만일 김석우·조형곤·김석규 씨가 없었다면 시민단체의 위상은? 만일 전몽월 목사가 없었다면 빈곤국가의 아동들은? 초지일관 어두운 그늘에서 뜨겁게 응시하는 이들의 눈빛이 형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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