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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민주주의의 표상인 지방자치의 위상 재정립이 시급하다. 1991년 지방의회·1995년 단체장 직선제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도래했다. 민선 지방자치 30년이다. 우리 지방자치는 다수 단체장들의 위민행정 실천과 함께 지방의원들이 입법 활동·예산 심의·행정사무 감사 등에 힘써 ‘동네일꾼’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했다.
그런데 일부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의 윤리도덕성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일부 단체장은 캠프 출신 위주 인사 및 지역 토호 배려 공사 배정을 버젓이 하고 있다. 예산이 각종 사업 집행이라는 명분으로 부풀려지는가 하면 잦은 설계 변경으로 불필요한 재정이 추가 투입되고 있다. 공직자들과 관급공사 수주업체들 간 뒷돈 주고받기 관행 및 지역 축제위원장 같은 관변 인사들의 ‘정실(情實) 예산 집행’ 등 혈세가 허비되고 있다는 지역 여론의 지적도 적잖다.
특히 일부 단체장 친인척과 측근 공무원들의 부패상은 내밀화·지능화되고 있다. 단체장은 공무원 승진과 인허가·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서 뇌물을 받고, 단체장 측근들은 각종 이권 사업은 물론 공무원 인사에까지 개입해 한몫을 챙기는 행태가 드물지 않은 현실이다. 그렇게 축재한 일부 인사는 가당찮게 여의도 입성을 노리기도 한다. 단체장들의 화려한 ‘업적 홍보’ 뒤편에는 부패비리의 썩고 문드러진 냄새가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의회는 또 어떠한가. 의장단 나눠먹기 자리다툼·거짓말·도박·부패 비리·성매매 및 유사성행위 의혹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의원들이 끊이지 않는다.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연수 기간 추태’는 뉴스거리도 아니다. 주민을 위해 집행부를 상대로 정책과 예산 등을 꼼꼼하게 세우고 감시해야 할 지방의원이 오히려 주민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방의원들의 책무 방기요 본말전도다.
선출직 단체장과 의원은 주민을 위한·주민에 의한·주민을 위한 행정을 펴야 한다는 본령을 되새길 때다. 21세기형 지방자치는 지역사회를 둘러싼 제반 환경변화에 능동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곧 저출산·고령화·생산인구 감소 등과 같은 인구적 문제·도시 밀집과 농촌 과소(過疏)의 공간적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난 30년과는 다른 지방자치의 모습이 필요하다. 미래 지방자치의 방향이 기존의 단체와 제도 중심에서 주민 중심의 생활자치로 그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함은 자명하다. 뚜렷한 치적이나 발전 없이 주민의 세 부담만 증가하고 말이나 구호만 무성한 지방자치를 쇄신해야 하고 주민과 지역을 위해 거듭나는 계기가 마련돼야 마땅하다.
청백리의 표상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 200여 년 전 지방관을 비롯한 관리의 올바른 마음가짐 및 몸가짐에 대해 기록한 행정지침서 ‘목민심서(牧民心書)’를 통해 쏟아 낸 외침이 지금도 쟁쟁하다. “백성을 위해 행정을 잘하는 자는 반드시 인자해야 한다. 인자하게 하려는 자는 반드시 청렴해야 하고, 청렴하게 하려는 자는 반드시 검소하고 아껴 쓰니 절용이란 곧 목민관이 먼저 힘써야 하는 것이다(善爲牧者 必慈 欲慈者 必廉 欲廉者 必約 節用者 牧之首務也).”
지자체의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공직자들은 국민 혈세를 아껴 써야겠다. 이제 공직자들은 30년에 걸쳐 경험한 바를 자양분 삼아 주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새롭고 알찬 설계를 하고 실천의지를 다질 때이다. 주민 참여로 만들어 가는 생활 자치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지방자치가 분노와 자괴의 동의어가 돼선 안 된다는 절박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물론 지방자치가 정착되려면 중앙정부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특히 지방재정 자립도 제고에 힘써야 한다. 현재 지방재정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방재정의 압박 수준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화돼 일부 자치단체의 경우 재정 압박의 정도가 위기 단계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방재정 압박 수준이 높아져 가는 현상은 여러 가지 지표에서 드러난다. 1990년대에 60%대를 유지하던 전국 평균 순계규모 재정자립도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2012년에 52.3%·2017년 53.7%·2020년 50.4%까지 떨어졌다. 지방자치단체별 총계규모 재정자립도를 살펴보면 특별시·광역시는 60.9%, 도 39.4%, 시 33.5%, 군 17.3%, 자치구 29.0%로 지방자치단체 간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1년 전 ‘지방자치 분권 및 지역균형 발전에 관한 특별 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고, 국회 통과를 거쳐 지방시대위원회가 7월 출범한 만큼 어디에 살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힘쓰길 기대한다. ‘지방자치의 날(29일)’을 보내면서 품는 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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