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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수사기록이 말하는 진짜 ‘서울의 봄’
지만원 시스템공학박사가 찾아낸 12·12의 진실
2009년 발간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2-04 23:03:05
▲ 1979년 12월12일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 ‘서울의 봄’ 스틸 컷 
 
이건 반칙이다. 전두환을 머리 벗겨진 미치광이 전두광(이름부터 광적이다)으로 등장시킨 것부터가 공정하지 않은 게임이지 않나. 생김새가 비호감이니 그가 어떻게 그려지든 관객들로선 우호적이 될 수 없다. 심지어 상대역인 장태완은 정우성이다. 정우성을 누가 이길 수 있으랴. 그러므로 서울의 봄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났다.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3일 기준 400만 관객을 넘어섰다. 개봉 11일 만에 이룬 쾌거다. 영화 서울의 봄19791212일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합수부장)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합수부장 전두광(황정민·실제 인물 전두환)에 맞서는 인물로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실제 인물 장태완)을 내세웠.
 
정승화는 희생양, 전두광은 미치광이?
 
▲ 합수부장 전두광(황정민·실제 인물 전두환)에 맞서는 인물로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실제 인물 장태완)이 등장한다. ‘서울의 봄’ 포스터
 
승부는 이미 결정 났다고 인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이 신뢰하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시해당한 197910·26사태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간다.
 
거두절미하고 시작한 영화인 만큼 본론에서는 전두광(전두환)이 정상호(정승화)를 왜 긴급 체포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정상호는 단지 희생양, 전두광은 집권 야욕에 불타는 열등감 가득한 육사 출신 장성으로 그려낼 뿐이다.
 
그 일이 있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나 여러 매체에서 진실 찾기 명목으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을 각기 인터뷰하였다.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자기들은 무고하고 아무 잘못이 없으며 모든 게 전두환 탓이라는 내용 일색이다. 당연한 대답이지 않은가. 본인 스스로 나 잘못했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차라리 진실에 대해 철저하게 함구한 최규하가 오히려 대인배로 보일 지경이다.
 
진실은 수사기록에 있다
 
가장 정확한 것은 사건 수사기록이 아닐까.
 
지만원 시스템공학박사의 저서 수사기록으로 본 12·125·18’에는 12·12사태의 진실이 담겨 있다. 전두환이 정승화를 의심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책은 12·12사태가 발발하기 50일 전인 10·26사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지만원 시스템공학박사의 저서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에는 12·12 사태의 진실이 담겨 있다.
이재전 경호실 차장에게 경호실 병력 출동금지를 지시한 것은 김계원만 취한 조치가 아니었다. 85분 경에 육군 B-2 벙커에 (김재규와 대동하여) 도착한 정승화 역시 거의 같은 시각에 이재전에게 전화를 걸어 경호병력 출동을 금지시킨 것이다. 김계원과 정승화는 서로 공모한 사이가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공모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사람에게 똑같은 지시를 내렸다. 이것이 육군참모총장 정도를 지낸 사람들의 상황 조치 수준이요 일종의 상황처리 공식인 것이다. 정승화(1926년생)는 현역 참모총장이었고, 김계원(1923년생)은 그로부터 10년 전인 1969년경에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똑같은 사람에게 취한 조치가 똑같다면 이 두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을까? 김재규가 있는 것이다.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48).
 
경호실 병력의 출동을 금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경호실 병력이 사건 현장으로 출동하여 진실을 밝혀내는 것을 방해하고 범인을 체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47·48).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하던 1026일 오후 740분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지시에 의해 사건 장소였던 궁정동 안가에 대기하고 있었다. 몇 발의 총성이 들린 후 김재규가 정승화 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피 묻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정승화는 김재규의 비서인 박홍주가 그에게 새 옷과 구두를 내주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김재규로부터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말을 들은 정승화는 그와 동행하여 육본 B2 벙커로 이동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승화는 대통령 시해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김재규를 조금도 범인으로 의심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198037일 정승화내란방조사건 제2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노재현 역시 전화로 비상소집 연락을 받던 당시 정 총장에게서 아무 말도 전해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당위성 측면에서 보면 정승화는 바로 이때 국방장관에게, 김재규로부터 전화를 받고 궁정동에 가서 식사를 했던 사실, 김재규와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있었던 행동들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승화는 그런 사실을 숨겼다. 위 사실을 상급자인 국방장관에게 보고하는 것은 군에서 일생을 보낸 육군총장으로서는 생리와 같은 의무였다. 생리를 자제하면서까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으로 속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위직에 있을수록 그래서 행동은 투명해야 하며, 투명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억울하더라도 의심과 의혹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한 지 1시간 만인 840분 합참의장·연합사 부사령관·공군총장·해군총장 등이 도착하자 김재규가 나섰다.
 
대통령이 유고이니 이 사실을 3일간 비밀에 부치고 즉각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정승화는 이들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상황처리에만 몰두했다. 군 수뇌들을 호출한 것은 육군총장이고, 수뇌들에게 비밀을 지키고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는 지시를 한 사람은 김재규인 것이다(이상 54쪽에서 발췌).
 
김재규의 눈치를 본 정승화
 
▲ 김재규의 눈치를 보느라 4시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정상호로 등장한다. ‘서울의 봄’ 포스터
 
결국 정승화 덕분에 누구에게도 김재규가 범인인 것이 알려지지 않은 채 4시간이 흘렀다. 1140분이 되어서야 김계원 비서실장이 정승화·노재현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김재규가 범인임을 알렸다. 김계원은 김재규의 범행을 진즉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일이 이렇게 지체된 것은 정승화가 김재규의 눈치를 보느라 4시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정승화와 김계원은 김재규의 쿠데타가 성공할 것으로 믿고 그에게 시간을 벌어준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
 
노재현은 정승화에게 김재규를 체포할 것을 명령하고, 정승화는 전두환에게 지시해 김재규를 중구 정동 소재 보안사 안가에 정중히 모실 것을 지시했다. 원래는 수사분실로 데려가야 옳은데 말이다.
 
김재규의 내란음모는 이렇게 끝을 마감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시각까지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안 사람은 정승화·최규하·노재현이다. 정승화는 김재규가 바라는 대로 군을 움직였고, 최규하는 사실을 알고도 김재규가 체포되는 순간까지 4시간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노재현은 조건반사적으로 즉각 체포할 것을 명령했다. 더구나 최규하는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입을 굳게 다물고 회의를 주재하다가 1027일 새벽 0025분에 김재규가 있는 국방장관실로 가서 김재규에게 중간보고까지 했다. “비상계엄은 2704시를 기해 선포하기로 했습니다.” 한 다리 걸치는 식으로 행동한 것이다. 이것이 최규하의 진면목이었으며, 침묵했던 다른 국무위원들 역시 떳떳한 입장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67).
 
영화에서 선의의 피해자로 나오는 최규하 대통령 역시 실제로는 떳떳한 입장이 아니라는 게 당시 수사기록이 또렷이 말해준 바다.
 
감독님, 선인과 악인이 바뀐 것 아닙니까?
 
▲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뀐 게 아니라 선인과 악인의 자리가 바뀐 게 아닌가? ‘서울의 봄’ 포스터
 
영화는 재미있다. 정우성(이태신·장태완)은 여전히 잘생겼고 황정민(전두광·전두환)은 놀라울 정도의 메소드 연기를 펼친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후 이상하게 전두광의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남는 것은 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우성(이태신·장태완)이 악인 같고 황정민(전두광·전두환)이 선인 같다.
 
, 너거한테 선전포고다 인마! 난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
 
장태완(이태신)이 자신을 회유하려 드는 전두환에 외쳤다는 이 말, 이 비인간적인 발악이 오히려 그를 악마처럼 보이게 한다.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이 말에는 당사자만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영화에서 그는 합수부를 겨냥해 포탄을 날리기로 결정한다. 코 앞에서 쏘는 것도 아니고 남산에서 북악산 기슭으로 포탄을 날리는 게 말이 되나. K-9 자주포가 등장한 게 1999년의 일이다. 아무리 정밀타격을 한다고 해도 1980년대 포탄 제조 기술로는 합수부(삼청동 소재)만 수저로 떠내듯 날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모르긴 몰라도 포탄이 발사되었으면 광화문 일대를 포함해 민가인 북촌·서촌도 무사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감독이 이 장면을 넣은 것은 과욕으로 보인다.
 
영화 말미에 이태신이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는 장면이 나온다. 포탄 발사 30초를 남겨두고 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난 그가 뒤늦게 시민을 발견하는 이 씬,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시민을 너무 늦게 발견했지 뭔가. 왜 권력을 빼앗긴 뒤에야 시민이 눈에 들어오냔 말이다.
 
감독은 전두광의 비정함을 드러내기 위해 그가 시민을 이용하는 것처럼 그렸지만 시민은 진즉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을 외면한 것은 이태신이었다. 김성수 감독의 의도와 다르게 결국 영화는 자기 갈 길을 갔다. 전두광은 이태신보다 빛났고, 전두환은 장태완보다 뛰어났으며, 황정민은 정우성보다 멋있었다.
 
12·12사태는 아직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건을 다룰 때는 사려 깊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튼 그렇다.
 
지만원 = ‘수사기록으로 본 12·125·18’(2009)의 저자. 1942년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나 한영고를 거쳐 1966년 육사 22기를 졸업했다. 1974·75년 미해군대학원 경영학 석사, 1977~80년 미해군대학원 시스템공학 박사, 1967~71년 월남전에 참전(관측장교·작전장교·포대장)했으며 1972~74년 합참정보국 해외정보 수집장교, 1976·77년 국방 PPBS 도입 연구원, 1981~87년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1987년 육군 대령 예편 후 1989년까지 미해군대학원 교수로 있었다. 1998·99년 서울시 시정개혁위원과 국가안보정책연구소 자문위원을 지냈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시민단체 국민의함성 대표이다. 저서로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 ‘추락에서 도약으로, 시스템요법’ ‘국가개조 35’ ‘한국호의 침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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