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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풍경 낯선 여행] “너희들도 곧 오고 싶어진단다!” 요즘 어르신 핫플레이스 아산
입장료 4000원·수건이용료 500원
100년 전통 온양 ‘신정관 온천탕’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2-17 13:33:33
 
▲ 온양온천역에 내리면 뜨거운 온천수가 넘실거리는 족욕장이 길손을 반긴다. 게티이미지
 
세대마다 핫플레이스가 있다. 젊은이들의 핫플이 성수·홍대라면 요즘 어르신들의 핫플레이스는 온양온천역 일대다. 따뜻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데다 장거리 지하철 무임승차라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온천역은 신창역을 제외하면 1호선 지하철 라인 가장 아래쪽에 있는 역이다. 서울 중심인 광화문에서 출발하면 전철로만 2시간54분이 소요된다. 곧장 달려가는 게 아니라 수십 개 역에 정차하기 때문에 KTX 타고 부산 가는 것보다 더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이는 너무 오래 앉아 있으니 엉덩이가 아파서 그만 일어서고 싶어진다고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인내심!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느긋한 마음으로 출발해 보자. 마음의 양식도 얻고 알뜰 여행도 즐기는 보람찬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세종대왕이 온궁을 지었던 장소
 
▲ 온양관광호텔 내 영괴대는 영조가 온양의 온궁에 행차하였을 때, 함께 따라온 장헌세자(사도세자)가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 아산시
 
이름처럼 온양온천역 일대에는 온천이 밀집해 있다. 물론 신길온천역처럼 온천 없는 온천 역도 있다. 하지만 온양온천역에는 진짜 온천이 있다. 일단 온양온천역에 내리면 뜨거운 온천수가 넘실거리는 족욕장이 길손을 반긴다. 무료에다 델 듯 뜨겁기까지 하다.
 
국내법으로 온천이라고 부르려면 25°C가 넘는 용출수가 생성되어야 한다. 온양은 고온의 알칼리수가 솟아 나 백제 때부터 탕정이라 불렸다. 탕정이란 끓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최초의 기록으로 헤아려 보건대 이곳의 역사는 1300년이 넘는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세종대왕은 풍질(중풍) 치료차 온양을 찾았다가 온궁(溫宮)을 짓게 된다. 여기에는 온양 출신 맹사성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한다. 세종은 왕의 온천행이 백성에게 얼마나 큰 부담인지 잘 알았기에 온궁을 크게 짓지 말 것을 명했다.
 
또한 왕실 행차가 연례행사이다 보니 온궁을 비워두는 시간이 많으므로 평상시에는 왕실 전용 공간을 제외한 장소의 경우 백성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 1920년대 온양 행궁. 자료사진
 
당시 온궁은 온양현의 관아에서 서쪽으로 2.8떨어진 언한동에 있었다. 25칸 규모에 정무 공간 하나와 침실·탕실(목욕탕)이 각각 두 개씩 딸린 작은 궁궐이었다. 탕실은 여성 전용인 상탕자와 왕의 공간인 차탕자로 구분되었는데 전자가 후자에 비해 더 화려했다고 한다.
 
이후 세조·현종·영조·정조·순조 임금도 세종이 지은 온궁을 방문해 온천욕을 즐겼다. 온양온천은 왕의 온천이었던 것이다. 임금의 사랑을 받던 온궁은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온양 지역을 급습하면서 안타깝게 소실되었다.
 
조선 제18대 임금 현종에 이르러 온궁이 복구되었고 숙종·경종·영조·사도세자가 그 혜택을 입었다. 그러나 사도세자가 사망하면서 왕들의 온천행도 중단되었다. 어쩐 일인지 정조도 찾지 않아 온양 온궁은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었다.
 
온양의 가치를 알아본 일제
 
▲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는 온양온천 노선을 개통하면서 온양 일대를 유원지로 조성했다. 일제강점기 온양온천역 모습. 자료사진
 
일제강점기 초기 온양온천의 가치를 알아본 온양온천주식회사가 독점적으로 온천장 경영에 손을 댔다. 1926년부터는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가 온양온천의 운영권을 인수하여 대욕장에 숙박시설이 포함된 신정관(神井館)을 열게 된다.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가 온천사업을 시작한 것은 충남선(지금의 장항선)의 일부 구간인 천안~온양온천 노선을 개통하면서 온양 일대를 유원지로 조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온양온천을 조선의 파라다이스로 홍보하였고 그 결과 1935년에는 2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올 만큼 규모가 커졌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일본인이 운영하였던 신정관은 적산으로 분류되어 미군정청에 귀속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신정관이 완전히 불에 타 없어지는 불운이 닥친다. 교통부가 신정관 자리에 3층 규모의 온양철도호텔을 올린 것은 전쟁 직후였다
 
▲ 온양관광호텔 전경. 아산시
 
▲ 온양관광호텔 대중탕
 
▲ 온양관광호텔 인근에 자리한 현충사. 아산시
 
이후 민간이 호텔을 인수하여 온양관광호텔로 이름을 바꿨고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현충사 성역화와 맞물리면서 지금의 제주도 신라호텔·괌 롯데호텔 저리 가라 할 만큼 유명한 신혼여행 전문 리조트로 성장했다.
 
잘 나가던 때에 비하면 빛이 많이 바라긴 했지만 온양관광호텔은 현재 175개 객실에 대온천탕을 운영하고 있다.
 
온양온천 제1호 원탕 이용료 4000
 
▲ 온양온천 제1호 원탕인 ‘신정관 온천탕’. 아산시
 
온양관광호텔 서쪽으로 허름한 목욕탕 하나가 담장을 맞대고 오도카니 서 있다. 이 작은 목욕탕이 온양온천 제1호 원탕인 신정관 온천탕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인이 온양행궁 터에 세운 신정관 대욕장을 전신으로 한다.
 
원탕이라 함은 원수가 솟아나는 온정을 소유했다는 뜻이다. 많은 온천이 온천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지만 원탕을 소유한 업장은 드물다. 대부분 원탕에서 물을 끌어다 사용한다.
 
신정관 온천탕 건물은 1953년 온양철도호텔을 신축할 때 대중탕 용도로 함께 지어졌다. 이 대중탕은 신정관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100년 전통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의 역사로만 따져도 70년에 이른다.
 
또 신정관 온천탕은 1964년 시행된 공중목욕장업법시행규칙에 의거 1967년 아산군 제1호 목욕장업으로 등록했다. ‘신정관 온천탕의 역사는 온양온천 대중목욕탕의 역사인 셈이다.
 
이곳을 1973년 인수한 이가 고 문여근 씨다. 50년 가까이 목욕탕을 운영한 문여근 씨는 20224월 노환으로 타계하고 2011년부터 아들 문병일 씨가 가업을 잇고 있다.
 
▲ 아산온천 관광지 내 포토존. 한국관광공사
 
신정관 온천탕은 좌 여탕·우 남탕의 구조를 띤다. 목욕탕 이용 요금은 20232월 기준 성인(7세 이상) 4000원이다. 물을 데워서 제공하는 일반 목욕탕이라면 불가능한 가격이다. 원탕이기에 이런 파격적인 금액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수건 대여료 500원이 든다. 드라이어 이용료는 1100(자판기 방식)이다.
 
내부에 들어서면 1980년대 대중목욕탕을 방불케 하는 보관함이 눈길을 끈다. 물이 뜨거우므로 탕 속에 3분 이상 있으면 위험하다는 경고 표시까지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실제로 욕조에는 수온을 조절하는 장치가 없다. 원탕에서 끌어올린 50대의 온수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일반 목욕탕에서 볼 수 있는 한증막이나 사우나시설 역시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온천수·냉탕·샤워기가 시설물의 전부다. 이런 풍경은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도 흔한 게 아니다 보니 오히려 그쪽 사람들이 문화 체험차 많이 찾는다고 한다.
 
호텔 스파 같은 근사함은 없지만 뜨거운 물이 흘러넘치고 오래 앉아있어도 나가라고 재촉을 하지 않으니 더 무엇이 필요하랴. 인근 온양온천전통시장에 들러 주린 배를 채우고 상행선 열차에 몸을 실으면 또 그렇게 인생의 따뜻한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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