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고 베어 공간을 들이다… ‘루치오 폰타나’ 한국 상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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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4일~4월14일 강릉 솔올미술관서
루치오 폰타나와 그에 영향받은 곽인식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3-09 20:20:15

▲ 루치오 폰타나(왼쪽)의 1959년 작품에서 한발 나아간 곽인식의 1965년 작품. 솔올미술관

흔히 폰타나의 작업은 ‘찢긴 캔버스’로 지칭된다. 사정 없이 찢긴 캔버스는 평면이면서 입체다. 폰타나 전까지 미술계에는 2차원은 ‘회화’, 3차원은 ‘조각’하는 식의 구분이 있었다.

폰타나는 이런 구분을 벗어나 평면에 공간을 끌어들이는 시도를 했다. 회화면서 조형물인 그의 작업에는 ‘공간주의’라는 명칭이 붙었다.

강원도 강릉시 솔올미술관이 이탈리아 현대회화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 전을 개관전으로 준비했다.

뚫기와 베기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

▲ 공간 개념, 기다림(Concetto spaziale, Attese)/ 루치오 폰타나, 1964, 캔버스에 수성 페인트, 베기, 81x100 cm. 루치오 폰타나 재단

루치오 폰타나(1899-1968)가 공간주의 그룹을 창설한 게 1947년이다. 캔버스를 칼로 찢는 것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도자기와 돌멩이에 짖긴 자국을 내고, 캔버스를 잘라내는 데 이르렀다.

폰타나 공간주의의 맹아는 우연에서 싹이 텄다. 그림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화가 난 폰타나는 칼로 캔버스를 북북 찢었다. 그때 문득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찢긴 캔버스가 우주를 열어젖히는 틈으로 보였던 것이다.

폰타나의 작업은 뚫기(Buchi)와 베기(Tagli)를 통해 캔버스의 표면을 3차원 공간으로 밀어 올린다. 평면의 좁은 틈을 비집고 무한 확장된 공간은 그림의 배경에서 벗어나 주인공의 지위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폰타나가 단색화를 택한 것도 뚫리고 베인 자국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번 전시에는 19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소개되었던 ‘공간 환경’ 작품 6점을 선보인다. 공간 환경이란 형태·색·소리를 담아낸 공간에 감상자의 움직임을 더해 4차원으로 작품을 확장시킨 것이다. 폰타나의 공간주의 작품으로 초대된 감상자는 작품의 일부가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폰타나 전은 전시실 1 & 2에서 만날 수 있다.

물질성의 탐구 ‘In Dialog: 곽인식’

‘In Dialog: 곽인식’은 각기 다른 문화적 공간을 살아 온 루치오 폰타나와 곽인식 사이의 흥미진진한 대화를 엿듣는 시간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태어난 곽인식(1919∼1988)은 1930년대 일본 유학길에 올라 서구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경험했다. 곽인식은 초현실주의와 앵포르멜을 거쳐 폰타나의 공간주의를 적극적으로 탐구했고 그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미술언어를 찾아 나섰다.

재료의 물질성에 집중한 곽인식은 1960년대 초 화면을 변형하는 것에서 나아가 돌·유리·철판을 대상으로 과감한 실험을 감행했다.

곽인식의 작품은 때때로 루치오 폰타나의 공간주의 작업과 미학적 호응을 일으킨다. 다만 폰타나가 공간으로 작품을 확장시키는 데 집중했다면 곽인식은 철 구슬로 유리판을 깨뜨리거나 동판을 찢고 다시 봉합하면서 ‘물질성의 탐구’에 집중했다. “사물의 말을 듣는다”는 작가의 표현대로 재료 자체의 물성에 천착한 것이다. 곽인식 전은 3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KoRICA)과 루치오 폰타나 재단이 협력하고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과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이 후원했다. 폰타나·곽인식 전은 4월14일까지 진행된다.